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1954년작 <이창>의 포스터
화상 강의, 화상 회의, 화상 세미나 등이 보편화되고 있다. 주로 ‘줌(zoom)’이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이것으로 온라인 강의를 하다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누구나 배경, 즉 집 안 모습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집에서 강의를 하고 집에서 강의를 듣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게 집 안 일부가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집 안의 가구가 보이고 벽지가 보인다. 몸에 붙어 있어서 나와 함께 타인의 시선에 드러나는 옷과 가방, 구두, 시계는 남의 눈을 의식해 구입한다.
반면 누구를 초대하지 않는 한 보여줄 일이 거의 없는 가구를 비롯한 집 안 물건이란 기본적으로 자기만족의 대상이다. 자기만족의 대상이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으므로 디자인보다는 가격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이제는 옷만큼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얼마 전 실시간 온라인 학술 세미나에 참여한 적이 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접속해 보는 온라인 강의는 실제 강의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강사뿐만 아니라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정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강의 듣는 사람의 배경 역시 눈에 들어온다. 강의에 참여한 사람은 그래픽 효과로 자연이나 도시 풍경 또는 아무것도 없는 배경을 합성해 사생활의 노출을 방지하기도 한다. 아예 비디오 금지 기능을 선택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이런 기능들이 있다는 건, 사람들이 내 모습과 내 집이 드러나는 걸 꺼린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가 디자인한 라운지체어
본능이란 일종의 변형된 관음증
사람은 누구나 나는 숨어 있는 채 다른 이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본능을 따른다. 그런 본능이란 일종의 변형된 관음증이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1954년작 <이창>은 다리가 부러져 하릴없이 집 안에 묶이게 된 한 사진가가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이웃집 안을 훔쳐본다는 내용이다. 그는 맞은편 아파트의 여러 세대가 살아가는 모습을 매일 관찰하며 그들의 삶을 알아가는 재미에 흠뻑 빠진다. 이 영화는 ‘훔쳐보기의 욕망’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사실은 영화 감상 자체가 훔쳐보기의 욕망을 합법적으로 실현해주는 현대의 미디어다. 영화와 TV, 그리고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훔쳐보기의 욕망이 없다면 결코 발전할 수 없는 미디어다.
타인의 삶이 전시되고 그것을 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생활 양식의 일부가 되자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 또한 생겨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제한이 있다. 즉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가이자 예술비평가인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서양 유화의 핵심적인 내용은 ‘소유물의 자랑’이라고 주장했다. ‘유화’라는 미디어의 특징은 대단히 사실적·촉각적으로 대상을 재현하는 데 있다. 많은 돈을 주고 그것을 화가에게 주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왕족, 귀족, 아니면 신흥 부자인 부르주아였다. 서민은 절대 그런 사치스러운 미디어를 주문하거나 소유할 수 없었다.
그들이 유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정신적인 만족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이 소유한 것이 얼마나 근사하고 탐낼 만한지를 이미지로 영구적으로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과 이웃에게 그것을 자랑한다. 결국 예술은 그것을 소유한 자의 권력과 지위, 재산을 전시하고 타인의 부러움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탄생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그토록 많은 정물화가 그려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물화란 소유물이 얼마나 비싼 재료로 만들었는지, 얼마나 뛰어난 장인의 솜씨로 마감되었는지를 과시하는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표현하는 데 유화만한 미디어가 없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빌렘 칼프가 그린 정물화

▶덴마크의 디자이너 폴 헤닝센이 디자인하고 조명 브랜드 루이스폴센에서 생산되는 PH 조명
특별한 경험과 소유물의 과시
오늘날 이와 똑같은 기능을 하는 미디어가 있다. 바로 사진이다. 그리고 사진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온라인 미디어다. 예전에는 유명한 임스의 라운지체어를 구입해도 손님을 초대하지 않는 한 그걸 자랑할 수가 없었다.
1990년대 중반 월드 와이드 웹(동영상이나 음성 등 멀티미디어를 이용하는 인터넷)이 대중화되었고, 곧 ‘블로그’라는 새로운 표현의 장을 통해 개인이 의견이나 경험을 여러 사람과 공유했다. 그다음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강력한 누리소통망(SNS) 미디어가 차례로 선을 보였다.
각 미디어의 차이는 짧은 생각의 표현(초기 트위터는 사진 기능이 없었다), 긴 문장과 사진의 조합(페이스북), 마지막은 사진 전시(인스타그램)다. 이런 누리소통망으로 개인의 사진조차 순식간에 전 세계로 공유하고 ‘좋아요’를 이끌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누리소통망으로 자신의 멋진 경험과 소유물을 과시한다. 과거 유화와 부잣집의 갤러리가 했던 일을 현대에는 사진과 누리소통망이 하는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예술평론가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에서 사진은 현대인의 “경험을 포착해두려는 심리를 가장 이상적으로 이뤄주는 의식의 도구”라고 말했다. 그 경험이란 평범한 것을 넘어선 것이다. 먹음직스러운 음식, 가보고 싶은 여행지, 잘생긴 얼굴과 몸, 외모를 빛내주는 의상, 귀여운 아기와 사랑스러운 애완동물, 그리고 근사한 집 안의 가구와 조명 등이 그것이다. 그것을 포착한 뒤 공유하는 일이야말로 현대인의 핵심적인 라이프스타일이 되었다.
‘훔쳐보기의 욕망’과 거기에 부응하는 ‘특별한 경험과 소유물의 과시’는 각종 온라인 미디어가 발전하는 핵심적인 동기다. 인스타그램에서 잘생긴 영향력자(인플루언서)의 사진을 보았다. 만화 같은 얼굴을 하고 있고, 얼굴 옆으로 천장에 매달린 루이스 폴센의 조명이 보인다. 과시의 동기가 폭발하는 장면이다. 과시하려는 의도와 관계없이 코로나19 이후 이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공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래서 더 깔끔하게 집 안을 정리하고 자기 집 안의 노출에 신경을 쓴다. 이제 집 안의 물건들조차 자기만족을 넘어서 옷이나 자동차처럼 과시의 대상(또는 최소한 부끄럽지 않을 대상)이 되는 시대다. 덕분에 요즘 가구업계의 온라인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한국의 가구 디자인이 발전할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