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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그날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외출했다. 바이러스의 단계가 낮아졌고 평일이라 아이가 하교하자마자 유원지로 출발했다. 유원지에 간다는 말을 들은 아들은 신이 났고 아내도 오랜만의 나들이에 즐거운 표정이었다. 두 사람은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창밖의 풍경이 예쁘다는 말과 나오니 정말 좋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비수기라 유원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놀이기구들은 대부분 멈춰 있고 이용객이 없어 아예 비닐로 덮어놓은 놀이기구도 있었다. 몇몇 놀이기구만 한두 명의 이용객을 태운 채 운행 중이었다. 그중 하나가 비행기에 사람을 태운 채 위아래로 흔들리면서 빠르게 회전하는 ‘슈퍼점프’라는 놀이기구였다.
유원지에 가자마자 슈퍼점프를 탄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아이는 유아용 공중그네에 탔다. 공중그네는 놀이터의 그네 여러 개가 회전하는 놀이기구인데 지난번에 놀러왔을 때는 소리도 지르고 웃으며 재미있게 탔다. 그런데 공중그네를 타는 동안 아이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엄마 아빠를 생각해서 즐거운 척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네에서 내린 아이에게 재미있었느냐고 물으니 나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아이가 시시했다고 대답한 것은 아내와 내가 다시 한번 재미있었느냐고 물었을 때다. 우리는 아이가 생각보다 훨씬 컸다는 걸 깨달았고 유아용 놀이기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좀 더 크고 좀 더 스릴 있는 놀이기구가 필요했다. 그때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이 슈퍼점프였다.
슈퍼점프에 탄 네 사람은 머리를 휘날리며 연신 비명을 질러댔고 그중 한 사람은 아들보다 조금 커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아들과 엄마가 같이 탄 모습을 보고 용기가 났는지 아내는 아들과 함께 슈퍼점프를 타겠다고 했다.
그다음 이용객은 우리뿐이었지만 슈퍼점프는 출발했다. 아이는 기대감과 설렘에 가득찬 표정이었고 아내는 좀 긴장한 듯했다. 아내와 아이를 태운 비행기가 위아래로 흔들리며 돌기 시작했다. 아이는 즐거운 듯 웃고 소리를 질렀는데 아내의 비명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공포가 서려 있었다. 두 바퀴를 돌고 난 아내는 관리하는 분께 세워 달라며 소리를 질렀다.
“재미있게 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엄마가 미안해.”
뒤집어진 속을 달래려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동안 아내는 아이에게 몇 번이나 사과했다. 아이는 아쉬워하면서도 엄마가 아픈 것을 걱정하며 괜찮다고 했다. 엄마 걱정을 하는 아이가 기특해서 아이의 생애 첫 바이킹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랑 바이킹 타러 가자.”
아이는 활짝 웃으며 좋아했고 아내는 그러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말렸고 아들의 첫 바이킹을 함께하고 싶은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내가 원래 바이킹 잘 타잖아.”
나중에 아내는 딱 3분이라고 했다. 바이킹이 움직이기 시작해서 완전히 멈출 때까지 걸린 시간이. 거짓말 같았다. 예전에도 3분보다 훨씬 길게 느껴지는 3분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처럼 3분이 길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바이킹이 살짝 흔들릴 때부터 속이 울렁거렸고 나는 모든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높이 올라간 바이킹이 엄청난 속도로 떨어질 때마다 아내의 말을 들을 걸 그랬다고 생각했고 어쩌면 운전을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내가 함께할 수 없는 아이의 처음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바이킹에서 내리자 아내는 내게 달려와 괜찮은지 물었다. 아이는 재미있었다면서 또 타고 싶다고 말하다가 내 얼굴을 보고는 괜찮은지 물었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바이킹을 또 타고 싶다는 아이를 보며 말했다.
“미안한데, 오늘은 그냥 집에 가야겠다.”
우리는 다시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속을 달랬다. 힘들었지만 아이가 첫 바이킹을 탄 날이자 내가 인생의 마지막 바이킹을 아이와 함께 탄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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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식 소설가_ 2012년 한겨레문학상 수상. 소설 <굿바이 동물원> <두 얼굴의 사나이> <리의 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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