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강의는 어떤지 몰라도 문학 수업은 강의실에 모여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눈을 맞추고 목소리를 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읽은 소설과 에세이의 인물과 문장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려면 모이는 게 맞는 방식이라고 여겼다.
코로나19 세계적 유행 이후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동안 강의를 멈추거나 개강을 미루고, 마스크를 쓰고 강의실 내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대면 강의를 이어왔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단계가 나아질 때까지 휴강하거나, 강의를 이어가려면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새로운 해에도 바이러스가 종식되지 않는다면 비대면으로라도 수업을 이어가는 게 맞다는 생각에 나는 온라인 수업을 선택했고, 몇 주 동안 모니터 위에 떠오른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소설의 기법과 문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뿐 아니라 온라인 수업을 처음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두려움과 의심 속에서 모니터 앞에 앉았지만, 한 달쯤 지나자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수업을 듣는 일에 익숙해졌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자신에게 익숙한 장소에서 편한 차림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한결 부드럽고 여유가 넘쳤다.
처음에는 화면에 얼굴이 안 나오고 소리가 안 들린다고 하고, 오디오 연결이 서툴러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비디오와 오디오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수업을 들었다. 이동 중이나 출장지에서도 결석하지 않고 수업에 참여하면서 출석률이 더 좋아졌다. 집이 멀어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수업을 들으러 오던 분들은 이동하는 시간과 수고를 덜게 되었고 해외에 거주하는 분도 시차만 맞으면 함께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수업 전에 미리 접속해서 준비해 둔 차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생각해 보았다. 바이러스의 재앙이 비대면 시대를 만들었지만 기술의 발달 위에서 우리는 새롭게 이어지고 편리를 경험한다. 모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지만 얼굴을 보며 이야기 나눌 수 있고, 이야기는 나눌 수 있지만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손잡을 수 없고 어깨에 기댈 수 없다.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강의실에 모여 수업하던 때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고 온라인 수업이 편해서 이후에도 계속 온라인으로 수업을 이어가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다.
선생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누군가 물었을 때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좀 복잡한 문제였다.
마스크를 쓰고 강의실 내 거리두기를 하며 수업하던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타인을 경계하고 날카로워질 수 있는지 경험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누군가 너무 자주 마스크를 내리고 물을 마신다고, 누군가 쓴 마스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누구의 기침 소리가 신경 쓰인다며 나에게 혹은 고객센터에 항의했다. 수업을 쉬면 불만스러워했고 휴강하지 않고 이어가면 불안해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표정을 볼 수 없으니 소설에 대한 의견을 나눌 때 오해가 생겼다. 그때 나는 수업을 하며 처음으로 마음을 다쳤고 이대로라면 앞으로 더 이상은 수업을 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온라인 수업은 그런 점을 해소해 주었다. 마스크를 써서 표정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수업을 해야 한다면 온라인으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내가 흔쾌히 온라인 수업의 편을 들지 못한 것은, 모여서 함께 수업하던 날들의 왁자한 유쾌함과 따뜻함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표자가 말할 때 모두가 음 소거를 하고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따라 비디오를 정지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강의실 안에서 둥그렇게 앉아 눈을 맞추며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고 가끔은 커피와 빵도 나누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지만 나는 그렇게 다시 모이고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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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 소설가_ 2007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두 권의 소설집과 여섯 권의 장편소설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