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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티: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멘토:돈으로 따질 수 없는 육아의 투자가치
Q:사람들이 결혼하면 아이를 낳으라고 합니다. 솔직히 취업도, 결혼도 힘든데 거기에 아이까지 낳으라는 건 정말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까지는 하겠는데 제가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거기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A:충분히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돈도 많이 들지만 더 많은 시간과 희생이 따릅니다. 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결혼 전 내 모습은 부끄럽다. 공부를 좀 하는 거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공부 좀 한다는 것에 장남이란 이유로 난 모든 것에서 제외됐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내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았다. 당연히 이부자리 한번 갠 적 없고, 밥 먹은 그릇 한번 개수대에 둔 적 없다. 어릴 때는 청소나 잔심부름 정도는 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공부를 잘하는 것으로 내 모든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의무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다. 제 딴에는 잘났다고 폼 잡고 다녔지만 사실 나밖에 모르는 철부지였던 사람이다.
그런 무자격 상태로 결혼했고 처가에서 1년을 지내다 유학을 갔는데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가뜩이나 경제적, 정신적으로 힘든데 아이까지 생긴 것이다. 참 사는 게 만만치 않았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고 돈도 없는 상황에서 공부를 해야 했다. 어린 아내는 돈을 벌겠다고 가게에 나가 일하고, 시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내가 많은 시간 육아를 했다. 보통 사람에게도 육아는 힘든 일인데 평생 아무 일도 안 하고 살아온 내게 육아는 죽음이었다. 그저 먹이고, 기저귀 갈고, 목욕시키고, 칭얼거리는 애 재우고, 놀아주는 일인데 내겐 너무 힘들었다.
나밖에 모르면서 결혼해 아이 낳았는데…
게다가 큰아이는 까탈스러워 잠도 잘 못 자고 자주 깼고 깨면 안아달라고 보챘다. 잠시도 내 곁에서 떠나지 않으려 하는 껌딱지 같은 존재였다. 정말 답답하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또 말이 통하지 않으니 애한테 뭐라고 얘기할 수 없어 갑갑했다. 뭐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만만치 않음을 아이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위대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인간은 신 앞에서만 겸손해지는 게 아니다. 난 아이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성숙했다.
결혼한 지 35년이 넘었다.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가장 잘한 일은 스위트 홈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내겐 그게 가장 잘한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가끔 혼자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결혼은 해도 자식을 낳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결혼하고 애를 낳았어도 그들과 사이가 나빠 소 닭 쳐다보듯 했다면 어땠을까? 혼자 벌어서 혼자 쓰면 부자가 되었을까? 잔소리하는 사람, 책임질 가족이 없어 자유로웠을까? 그래서 난 행복했을까? 전혀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아내가 없을 때 내 행동으로 미루어보면 난 틀림없이 게으르고 더럽고 추한 독거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생전 청소도 안 하고, 라면만 끓여 먹고, 운동도 안 해 살이 뒤룩뒤룩 찐 욕심 사나운 아저씨가 되었을 것이다. 난 가족 덕분에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하게 된 것 같다. 아내의 잔소리와 자식들 눈치가 나를 성장시켰다고 생각한다. 내 평생 가장 잘한 일은 좋은 여자와 결혼하고 예쁜 딸 둘을 낳아 잘 키운 것이다. 그 딸들이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또 자기 자식을 낳은 것이다.
아이가 부모를 키우는 스승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비용이 많이 들고 힘든 일이다. 경제적으론 투자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일이다. 요즘 결혼하지 않고, 결혼해도 애를 낳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인 이유인데 과연 그게 진실일까? 육아에는 투자가치가 없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엄청난 투자가치가 있다. 경제적으론 손해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다른 가치가 크다. 자식을 키우는 재미와 보람을 자식이 없는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자식의 자식인 손자를 안고 노는 즐거움을 없는 사람들은 헤아리기 어렵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가 팔을 벌리고 안아달라 하고, 침으로 가득한 입으로 내 볼에 입 맞출 때의 짜릿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최근 내가 존경하는 홍익희 선생의 페이스북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보고 격하게 공감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 “육아는 고비용 고수익 활동이다. 아이는 경제적 가치는 없지만 정서적으로 무한한 가치를 지닌 존재다. 육아는 힘겨워도 부모는 아이 덕에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초월적 경험을 한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를 겪으면서 비로소 부모가 된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다. 아이가 부모를 키우는 것이다.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아이를 부모의 종속물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대한다. 아이 옆에서 늘 아이와 눈을 맞춘다. 이들은 하나님이 자녀를 13세 성인식 때까지 부모에게 맡겼다고 생각한다. 성인식 때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고 여긴다. 성인식을 치르고 나면 비로소 자녀 교육의 책임에서 벗어나고 그 뒤 인생에 대한 책임은 본인과 하나님에게 있다고 여긴다. 아이를 인격체로 보느냐, 부모의 종속물로 보느냐는 중요한 차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고, 아이가 우리를 키우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다.
한근태_ 핀란드 헬싱키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리더십센터 소장을 역임하고 기업 경영자, 청년들을 상대로 리더십과 성공 노하우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세리CEO의 북리뷰 칼럼을 15년 넘게 연재했고 《DBR》 <머니투데이> 등에 칼럼을 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누가 미래를 주도하는가> <한근태의 인생 참고서> <경영의 최전선을 가다> <청춘예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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