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앤북 서점의 입구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려 시청 방향으로 나가려다 우연히 ‘아크앤북’이라는 서점을 발견했다. 193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아르데코 스타일의 입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본 전형적인 서점 분위기와 전혀 다른 디자인이었다. 서점 안에 식당과 카페도 있었다. 책을 진열하는 방식은 기능적이라기보다 미적이었다. 가장 흥미로운 공간은 아치형의 천장을 책으로 채운 복도였다. 아치의 천장을 채운 책은 그러니까 장식이었다. 나는 서울서촌의 어느 카페에서도 이처럼 책을 장식용으로 활용한 인테리어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책을 장식으로 치장한 가장 뛰어난 사례는 삼성동의 별마당 도서관일 것이다. 이곳에는 무려 13m 높이의 서재가 그 위용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렇게 높은 책꽂이에 꽂힌 책은 그저 관상용일 뿐,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읽어야 하는 책을 읽지도 못하는 장식용으로 전용하는 것은 낭비인가? 나는 그런 비난을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오히려 책은 어느 시대에나 가장 훌륭한 장식품이었음을 전하려 한다. 문자를 기록하기 시작한 역사시대 이후 책은 늘 최고의 사치품 중 하나였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하기 전, 책 한 권의 제작 기간은 때로는 집을 짓는 것보다 길었다.
▶삼성동 별마당 도서관의 거대한 장식용 책장과 책들│한겨레
전형적 서점과 전혀 다른 디자인
중세의 책은 필경사가 손으로 일일이 써서 완성했다. 중세에는 이젤화가 없었다. 당시 화가들은 대부분 책에 그림을 그렸다. 따라서 책은 당대 최고의 장인인 필경사와 화가들이 정성을 들여 완성하는 공예품이었다. 그렇게 만든 책은 가격을 정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금박과 군청색 등 값비싼 재료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책은 말 그대로 “빛이 나는 손으로 쓴 책”이라는 뜻으로 ‘채식 필사본(illuminated manuscripts)’이라고 불렀다. 수년이 걸려야 완성되는 그런 책은 읽는 것이라기보다 그 자체가 성스러운 물건이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뒤 책값은 엄청나게 내려갔고 대량으로 생산되어 유통됐다. 그렇다고 오늘날처럼 싸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종이의 가격이 비쌌고, 책의 이미지는 수작업으로 제작됐으며, 당시 인쇄술은 지금보다 훨씬 덜 기계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쇄술이 발명된 뒤에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인구는 여전히 2~3%에 불과했다. 그나마 책은 라틴어로 쓰였으므로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유럽 인구의 1%도 되지 않는 극소수의 성직자와 학자, 권력자였다.
대다수의 무지한 민중에게 책은 그림의 떡이었다. 값비싼 책을 살 수도 없을뿐더러 어찌하여 책을 구하더라도 읽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들에게 책은 어떤 존재일까? 책은 정보를 담은 기능적 도구가 아니다. 책은 신 또는 권력, 부를 상징하는 신성한 물건이었다. 오늘날은 어떤가? 20세기 이후 종이는 더욱 싸지고 인쇄술은 첨단화해 책 가격이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싸졌다. 오늘날 가정은 최소한 책 100권 정도는 쉽게 소유하고 있다. 이는 중세의 대학이 가지고 있던 책의 권수와 맞먹는다. 하지만 책만큼 쓸모를 다하지 못하는 물건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책은 좀처럼 읽히지 않는다.
▶아크앤북 서점의 아치 지붕을 장식한 책들
“이 책들 다 읽었어요?”는 의미 없는 질문
책을 무지하게 좋아해서 수천 권, 수만 권을 모은 독서광, 수집광이라고 해도 자기가 소유한 책의 일부만 읽었을 뿐이다. 책 많은 집에 간 손님이 주인에게 꼭 하는 질문이 있다. “이 책들 다 읽었어요?” 사실 이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책이 많아질수록 읽은 책의 비율은 낮아진다. 그러니 책만큼 공간을 낭비하는 집 안의 물건이 있을까? 의자와 침대, 장, 책꽂이, TV, 냉장고, 세탁기, 냄비와 그릇, 컵 등은 모두 열심히 일을 하므로 차지하는 공간이 결코 낭비라고 할 수 없다. 반면 책은 어떤가? 아무리 책을 좋아하고 독서량이 많은 사람이라도 동시에 책꽂이에 있는 모든 책을 읽을 수는 없다. 하루에 한 권을 읽는다면 대단한 독서량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책은 그냥 책꽂이에 꽂혀 있을 뿐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 안은 늘어나는 책으로 공간이 조금씩 줄어든다. 그들은 왜 읽지도 못할 책을 끊임없이 살까? 그것은 사물의 가능성 때문에 어떤 물건도 절대로 버리지 못해 집 안에 쓰레기를 가득 채우는 저장강박증 환자와 동기가 비슷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읽을 것이다’ 또는 ‘최소한 언젠가는 참고할 것이다’라는 가능성 때문에 책을 사고 절대 버리지 못한다. 아니, 그런 정도의 책 중독자가 아니더라도 책은 집 안에 일정 정도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으며, 그들도 책을 잘 버리지 못한다. 이유는 비슷하다. 그렇다면 역시 책은 공간을 낭비하는 셈이다.
▶서울 서촌에 있는 한 카페의 인테리어 장식용으로 쓰인 책들
그러나 조금 생각을 달리해보자. 책은 과연 반드시 읽혀야 하는가? 아니다. 책은 일종의 ‘고귀한 물질’이다. 과거 채식 필경사와 달리 대량생산 되지만 여전히 책은 어떤 유용한 지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작은 공간에 그토록 밀도 높게 말이다. 인류 역사를 빛낸 위대한 사상은 모두 책에 있다. 그 책은 또한 심미안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들이 아름답게 시각화해놓았다. 종이에 깨알같이 박혀 있는 질서 정연한 글자들을 보라. 그 책의 내용을 압축한 표지는 또 어떤가? 위대한 사상과 지식과 정보가 질서 정연하게 아름다운 껍데기로 보호되고 있는 것이 바로 책이다. 그것은 더 이상 중세의 채식 필사본은 아니지만 여전히 광채를 발한다. 인류의 역사와 사상을 실어 나르는 매개로서 그것은 후세에 전달할 만한 가치가 높다.
그런 존재감 때문인지 집 안 거실이나 서재에 있는 책들은 벽에 걸린 그림이나 웬만한 장식품을 압도한다. 넓은 책장에 꽂힌 알록달록한 책들의 구성은 거대한 추상회화와 견주어도 꿀릴 게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그 지적인 아우라는 넘어설 수 있는 장식품이 없다. 1970년대 한국에 아파트와 양옥 주택이 널리 보급될 때 한창기 당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세일즈맨은 전 세계에서 그 전집을 가장 많이 팔았다. 그것도 번역되지 않은 원서를. 당시 백과사전 전집을 구매한 이들은 단지 거실 장식용으로 그것을 산 것이다. 앞으로도 책은 읽는 용도보다 장식용이라는 쓸모로 더욱 각광받을 것이다. 어쩌면 책의 진정한 목적은 장식품인지도 모른다.
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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