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생명다양성기관연합(KBIF)은 매년 초여름과 늦여름 두 차례씩 생태 조사를 합니다. 우리나라 해안 지대를 10개 권역으로 나눠서 조류, 곤충, 식물, 해양생물 등 각 분류군의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어떤 생명 종이 얼마나 있는지 조사하는 것이죠. 같은 곳을 10년마다 조사하므로 생명 다양성의 변화 추이를 알 수도 있습니다. 올해는 추자도에 두 번 다녀왔습니다.
제 전공은 생화학이지만 주로 조류나 곤충 전문가들을 쫓아다닙니다. 실제로 제가 관찰하는 대상은 조류나 곤충이 아니라 조류학자와 곤충학자죠. 척 보면 어떤 새, 어떤 곤충인지 알아내는 그들의 매서운 눈과 식견에 놀랍니다. 명랑하지만 아주 세심합니다. 미국의 보존 생물학자 소어 핸슨이 쓴 <깃털>을 보면 조류학자를 비롯한 자연학자들의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새 관찰의 진정한 경이로움은 깃털과 행동과 습관 등에 대한 세세한 사항을 찬찬히 살피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관찰 과정에 있다. 아무리 흔한 새라도 흔치 않은 행동을 보이며 모든 관찰은 한 번 흘낏 보고 체크리스트에 표시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나는 작은 것도 놓치지 않으려고 바싹 경계하는 편이다.”
이들은 대체로 냉정합니다. 탐사 도중에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마저 죽이죠. 보이지 않는 새소리를 들어야 하거든요. 특별한 새를 봐도 마음속으로만 감탄할 뿐 현장에서는 숨을 죽입니다. 또 새에 대한 묘사도 지극히 건조합니다. 그런데 자연학자들도 허풍에 가까운 묘사를 할 때가 있습니다.
“열 마리 또는 스무 마리 남짓의 깃털이 풍성한 수컷이 함께 모여 날개를 높이 올리고 목을 길게 뺀 채 아름다운 깃털을 세워 올려 계속 하늘거리며 흔들었다. (…) 그리하여 갖가지 동작과 자세를 보이면서 깃털을 하늘거리는 새들이 나무 전체를 뒤덮는다. (…) 날개는 등 위쪽에 수직으로 곧추세우고 머리는 숙인 채 앞으로 쭉 뻗었으며 긴 깃털을 위로 쳐들고 활짝 펼쳐서 두 개의 근사한 황금빛 부채 모양을 만들었다. (…) 웅크린 몸, 노란색 머리, 에메랄드빛 녹색 목 위로 하늘거리는 황금빛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새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뉴기니 지방의 극락조를 묘사한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챘을 겁니다. 맞습니다. 1858년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수컷 극락조가 구애 춤을 추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월리스가 말한 ‘근사한 황금빛 부채’는 큰 극락조입니다. 극락조에 대한 묘사를 보면 화려한 새를 무수히 봐온 월리스마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극락조는 42종이 있으며 각 종마다 독특한 구애 행동을 합니다.
월리스는 살아 있는 작은 극락조 두 마리를 영국으로 데려왔습니다. 아쉽게도 두 마리 모두 수컷이었습니다. 수컷이 특히 화려하거든요. 그는 영국 동물원에 비싼 값을 받고 새를 팔았습니다. 덤으로 동물원 평생 무료입장권도 받았죠. 가난한 월리스에게는 좋은 일이었습니다. 멋진 새를 전시하게 된 동물원에게는 큰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부유한 사람들은 너도나도 극락조를 원했습니다. 물론 살아 있는 극락조를 야생의 모습으로 영국까지 보낼 방법은 없었습니다. 뉴기니 부족민은 극락조를 잡아서 날개와 다리를 잘라버렸습니다. 영국인에게는 극락조에 대한 터무니없는 환상이 퍼졌습니다. 이 새는 날갯짓을 하지 않아도 창공을 떠다닐 수 있고 죽기 전에는 땅에 내릴 일도 없는 극락에 사는 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극락조가 되었습니다. 물론 새에게 날개와 다리가 없을 리는 없습니다. 주문을 받은 뉴기니 부족이 쓸모없는 날개와 다리는 잘라버리고 깃털만 거래했기 때문입니다. 극락조 깃털은 지금도 뉴기니의 소중한 무역 품목입니다.
영화로 유명해진 타이타닉호에는 별다른 귀중품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가격으로 환산하면 230만 달러의 보험에 가입된 화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40상자 속에 든 새 깃털이었죠. 당시엔 깃털보다 무게당 가격이 비싼 물건은 다이아몬드밖에 없었습니다. 깃털은 최상의 장식품이었거든요.
극락조를 비롯한 화려한 깃털을 소유한 새는 그 화려함으로 암컷을 유혹합니다. 하지만 그 화려함 덕분에 날개와 다리를 잘린 채 배에 실리곤 했죠. 이게 단지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현재진행형입니다. 2010년 뉴질랜드의 한 경매에서 후이아(Heteralocha acutirostri)라는 새의 꽁지깃 하나가 8400달러, 우리 돈으로 약 950만 원에 낙찰됐습니다. 덕분에 후이아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깃털을 가진 새가 되었지요. 아무리 깃털이 아름답다고 해도 너무 비싸지 않나요?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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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나중에 영국 왕이 되는 요크 공이 1902년 뉴질랜드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무심코 새의 깃털 하나를 모자에 꽂았습니다. 후이아의 꼬리 깃털이었지요. 후이아 깃털을 모자에 꽂는 것은 금세 영연방 신사 세계에 유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5년 후인 1907년 후이아는 공식적으로 멸종했습니다.
모자 장식 때문에 멸종한 새는 또 있습니다. 미국 동부에 살던 캐롤라이나앵무(Conuropsis carolinensis)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캐롤라이나앵무의 깃털이 도시인들에게 인기였습니다. 농부에게는 총으로 쏴 죽여야 하는 유해 조류였고요. 그런데 캐롤라이나앵무는 부상을 당하거나 죽은 동료가 있으면 주변에 몰려와서 함께 우는 습성이 있습니다. 덕분에 집단학살을 당했습니다. 1918년에 멸종했습니다.
뉴기니와 마주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에 살던 파라다이스앵무(Psephotus pulcherrimus)는 이름 그대로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새입니다. 깃털이 아름답고 우아하죠. 게다가 잡기도 쉽고 길들이기도 쉬워서 많은 사람들이 애완용으로 키웠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에 거주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개와 고양이도 늘었습니다. 사람에게도 쉽게 잡히는 새를 고양이와 개가 가만히 두었을 리가 없지요. 손쉬운 사냥감이었습니다. 결국 1927년 멸종되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워서 멸종한 후이아, 캐롤라이나앵무, 파라다이스앵무에게는 공통점이 또 있습니다. 바로 곶감으로 유명한 상주의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에서 멋진 박제표본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필자 이정모는 서울시립과학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생화학을 전공하고 대학 교수를 거쳐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지냈다. <250만분의 1>,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 <내 방에서 콩나물 농사 짓기> 등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과학도서와 에세이 등 60여 권의 저서를 냈고 인기 강연자이자 칼럼니스트로도 맹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