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나무가 떠오른다. 초록빛 잎사귀가 바람결을 따라 춤을 추고 풋풋한 나무 냄새가 코를 간질이는 상상만 해도 한결 위안이 된다. 나무 한 그루가 주는 힘이 이 정도이니 숲은 오죽할까. 셀 수 없이 많은 나무들이 한 번에 뿜어내는 상쾌한 공기와 서늘한 바람이 얼굴에 닿으면 몸 안에 들어찼던 화기가 눈 녹듯 사라진다. 숲은 존재만으로도 인간에게 위안을 준다.
도심에도 숲이 있지만 그래도 자연이 정성스레 만들어놓은 숲이 더 마음을 끈다. 부드러운 흙과 잔잔한 호수 그리고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 충북 괴산군에 있는 산막이옛길로 발길을 재촉한다. 괴산까지는 서울 어디에서 출발하더라도 세시간 이내에 도착한다. 서울, 경기도를 벗어나 충청북도로 들어서면 산들이 촘촘하게 겹쳐 있는 모습이 보인다. 충북 일대에서도 괴산은 산이 많은 지역이다. 괴산에 들어서자마자 도로 양쪽에 자리한 산이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다. 산막이옛길로 가는 길에도 온통 산이다. 끝을 모르고 펼쳐진 초록빛 병풍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산막이옛길 주차장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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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로 정상에서 바라본 산막이옛길의 전경 ⓒ한국관광공사
차에서 내리면 이제 두 다리가 움직일 시간이다. 주차장에서 산막이옛길 시작점인 관광안내소까지는 제법 가파른 길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걱정은 금물. 관광안내소까지 가는 깔딱고개만 무사히 통과하면 나머지 길은 평탄하다. 임산부가 걸어도 좋을 정도로 길이 좋아 ‘임산부 길’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길 곳곳에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담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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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년 산막이옛길에 새로 생긴 연하협 구름다리 2 소나무동산을 지나면 나오는 출렁다리 3 수령이 평균 40년에 달하는 소나무 군락지 소나무동산 ⓒ한국관광공사
산막이옛길은 말 그대로 산막이 마을로 가던 옛길을 복원해놓은 길이다. 사방이 산으로 막힌 ‘산막이 마을’은 마을 앞에 흐르는 달천을 가로질러야만 들어갈 수 있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깊은 산골짜기 안에 있다 보니 임진왜란 때는 피란민들이 산에 막혀서 피란을 가지도 못하고 정착해서 마을을 이루고 살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가던 유일한 통로였던 달천은 1957년 마을 근처에 괴산댐이 생기면서 거대한 호수가 됐다. 물길이 막히자 마을에는 나룻배가 등장했지만 수시로 외부에 오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산막이옛길은 마을 사람들이 외부로 나가기 위해 호수와 벼랑이 버티고 서 있는 곳에 굽이굽이 만든 길이다. 세상과 소통하고 살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창구인 셈이다.
세상으로 뻗어나가기 위해 만든 4km 남짓한 산막이옛길은 2011년 생태길로 다시 태어났다. 산막이옛길을 복원할 때 나무 한 그루, 돌 하나하나 자연이 만들어놓은 모습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도록 친환경 공법을 사용해 길을 닦았다. 2011년 당시 4km로 완성된 길은 2016년 연하협 구름다리가 생기면서 달천 상류에 있는 신랑바위까지 약 7km로 더 길어졌다.
본격적으로 길을 나서보자. 산막이옛길에는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담긴 명소 27곳이 곳곳에 숨어 있다. 완만한 평지에 가까운 길을 걷다 보면 제일 먼저 연리지 나무가 모습을 드러낸다. 연리지는 뿌리가 다른 나무가 서로 엉켜 마치 뿌리가 같은 나무인 것처럼 자란 나무를 말한다. 뿌리가 다른 나무가 이어진 것이 매우 희귀한 일이다 보니 예로부터 남녀 간의 깊은 사랑에 비유하곤 했다. 그래선지 산막이옛길에 있는 연리지 앞에서 기도를 하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연리지를 지나면 맑은 기운을 뿜어내는 소나무동산에 다다른다. 소나무동산에는 수령이 평균 40년에 이르는 나무들이 1만 평(3만 3057㎡)정도 무리지어 숲을 이루고 있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뻗어 있는 소나무 가지 끝에는 솔잎만큼 청량한 하늘이 펼쳐져 있다. 소나무동산에서는 발걸음이 조금 더 느려진다. 숲이 주는 청량함을 오래도록 만끽하고 싶어서다. 파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난 뒤 푸른 솔잎을 한 번 보면 흐릿했던 시야가 트인다. 바람을 따라 흘러든 은은한 솔향이 온몸으로 퍼진다. 소나기가 공기 중의 먼지를 씻어내는 것처럼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열기와 잡념이 사라진다. 마치 마음을 새로 씻어낸 것 같은 기분이다.
소나무동산을 지나면 소나무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나무토막을 줄로 이어 만든 출렁다리는 산막이옛길 최고 명소 중 하나다.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흔들리는 나무토막 틈새로 땅이 함께 흔들린다.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쫙 돋는다. 다리 위에서 좀체 발이 떨어질 기미가 안 보이자 뒷사람이 길을 재촉한다.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는다.
소나무 출렁다리를 지나면 산막이옛길에 재미를 더하는 다양한 볼거리가 이어진다. 노루와 토끼가 목을 축였다는 노루샘, 여름이면 아름다운 연꽃이 만발하는 연화담, 산막이옛길에서 가장 훌륭한 경치를 보여주는 전망대 병풍루, 다래덩굴을 터널처럼 만든 다래숲동굴 등 다양한 명소가 줄을 지어 등장해 지루할 틈이 없다.
길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며 발걸음을 옮긴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어느새 산막이 마을에 다다른다. 산막이 마을 주변의 경치도 놓칠 수 없는 절경이다. 마을 뒤에는 녹음이 짙은 산이, 마을 앞에는 바다처럼 고요한 강이 유유히 흐른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동식물도 좀 특별하다. 강에는 천연기념물인 황쏘가리, 어름치가 헤엄치고 산에는 다람쥐와 까막딱따구리 등 20여 종의 멸종위기 동식물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마을까지 오는 동안 길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봤다면 돌아오는 길은 유람선을 타고 산세를 감상할 차례다. 산막이 마을 앞 선착장에서 차돌바위 나루까지 괴산호의 고요한 매력을 만끽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숲속 산책, 어디가 좋을까
계족산 황톳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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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북편에 있는 계족산 중턱에는 붉은 황토를 깔아 만든 건강 여행길이 있다. 바로 계족산 황톳길이다. 절고개 삼거리에서 원점 삼거리를 돌아 다시 장동산림욕장까지 총 14.5km에 깔린 붉은 황토를 맨발로 밟으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길의 반쪽은 황톳길이고 나머지 반은 일반 산책로다. 맨발걷기가 처음이라면 발가락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오는 붉은색 흙의 촉감에 몸이 움찔거린다. 하지만 미끌미끌한 황토의 감촉을 즐기다 보면 맨발걷기가 금방 익숙해진다. 길 곳곳에 발을 씻을 수 있는 샘터와 족욕장이 있어 중간에 힘이 들거나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등산로로 돌아설 수 있다.│한국관광공사
대전 장태산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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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화석식물이라 불리는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군락을 이룬 숲이다. 산 전체 면적은 4분의 1가량이 메타세쿼이아다. 20만 평(66만 1157㎡)에 이르는 장태산 일대에는 메타세쿼이아뿐 아니라 낙엽송, 잣나무, 오동나무 등 약 13만 4000그루가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메타세퀘이아숲뿐 아니라 스카이웨이, 전망대, 비탈놀이 시설 등 특별한 체험거리도 있다. 숲속 삼림욕장에는 평상과 의자가 있어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한나절 소풍을 즐기는 것으로 부족하다면 야영장이나 숲속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주말예약은 매우 치열하니 서둘러야 한다는 점만 기억하자.│한국관광공사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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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리 자작나무숲은 5월 중순부터 10월 말, 12월 중순부터 1월 말까지 1년에 절반 정도만 모습을 드러낸다. 하얀 눈밭에서 설경을 빛내주던 자작나무는 초여름에는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하얗다 못해 은빛으로 쭉 뻗은 나무줄기와 어우러지는 푸른 이파리가 싱그럽기 그지없다. 자작나무숲에 가기 위해서는 원대리 산림감시초소에서 방명록을 작성해야 한다. 산허리를 따라 부드럽게 이어진 길을 남녀노소 모두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짧지 않은 길이지만 걷는 동안 주변에 잘 정비된 숲이 끝없이 펼쳐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한국관광공사
제주 절물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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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삼나무숲으로 유명한 제주 명소다. 이곳의 트레이드마크는 삼나무. 쭉쭉 뻗어 올라간 삼나무가 빽빽한 군락을 이뤄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한여름에도 서늘하고 쾌적하다. 삼나무숲에 안개가 낀 날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에 비 오는 날에도 찾는 사람이 꽤 있다. 휴양림 안에는 건강산책로, 삼울길, 만남의 길, 오름등산로, 생이소리질, 장생의숲길, 너나들이길 등 총 7개의 산책로가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산책로는 삼울길이다. 30~40m에 이르는 삼나무가 늘어선 숲 사이로 벤치와 평상이 있어 편하게 앉거나 누워서 숲의 기운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한국관광공사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