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커피 잔 속에 위로가 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빌리 조엘의 말이다. 커피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호식품 중 하나다. 커피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람이 많다. 이토록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커피지만, 그러나 그 기원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
에티오피아의 양치기 소년이 염소들이 커피 열매를 따먹고 흥분하는 것을 보고 커피의 효능을 발견했다는 설, 13세기 아라비아의 사제 오마르가 배를 곯고 산을 헤매다가 새들이 쪼아 먹는 것을 보고 먹기 시작했다는 설, 원래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다른 곡류와 함께 갈아먹었는데 11세기 초 그 효능이 분명히 인식되면서 기호식품으로 음용되기 시작했다는 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현재까지 확인이 가능한, 커피 음용에 대한 증거는 15세기부터 나온다.
커피의 어원이 되는 카파(Caffa, ‘힘’이라는 뜻)가 에티오피아어인 데서 알 수 있듯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섭취되기 시작해 아라비아 반도로 퍼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라비아에서 이집트, 시리아 등 다른 중동국가와 터키를 거쳐 인도에까지 전해졌으며, 유럽에서는 이탈리아를 거쳐 나머지 지역으로 퍼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896년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대접받은 게 그 시초라고 하나, 이미 그 수년 전부터 커피가 대중에게 팔리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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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수아 부셰, ‘모닝커피’, 1739, 캔버스에 유채, 82x66cm, 루브르박물관, 파리
커피를 그린 초기의 서양화로는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 부셰(1703~1770)의 ‘모닝커피’가 유명하다. 이 그림은 매우 행복하고 단란한 18세기의 프랑스 가정을 그린 그림이다. 모델이 된 사람들은 화가의 가족이다. 화가의 아내가 방금 따른 따뜻한 커피를 맛보며 우아한 시선으로 오른쪽 귀퉁이의 아이를 돌아본다. 화가의 여동생, 곧 시누이는 이 집의 막내를 무릎에 앉히고 음식을 먹이고 있다. 그녀 앞에도 커피 잔이 놓여 있는 것은 물론이다. 앞치마까지 두룬 채 커피포트를 쥐고 시중을 드는 사람은 커피 배달원(garçon limonadier)이다.
당시 커피는 매우 럭셔리한 수입품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온 가족이 이렇듯 카페에서 커피를 배달시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유복한 형편임을 의미한다. 카페(café)는 프랑스어로 커피를 뜻하는데(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도 같은 스펠을 사용한다), 그 이름이 진화해 ‘커피하우스’의 뜻까지 포함하게 됐다. 19세기에 이르면 프랑스뿐 아니라 영미권에서도 커피하우스를 뜻하는 말로 카페라는 단어가 광범위하게 쓰인다.
그림 속 화려한 가구와 중국에서 수입해온 멋진 장식품들이 이 집의 넉넉함을 말해주는데, 부셰는 화가일뿐 아니라 디자이너로서 왕실을 비롯해 극장, 오페라하우스 등 다양한 시설의 인테리어와 가구 디자인을 맡아 진행했다. 그의 안목과 풍족한 수입이 이런 여유로운 생활을 낳은 것이다.
이채로운 것은, 오른쪽 아이가 머리에 보호 밴드를 하고 손에 목마와 인형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무렵부터 유럽에서는 아이 양육에 대한 관념이 급속히 진보했다. 그 전까지는 아이를 주체적인 인격체로 보지 않았고, 아이의 발달 과정에 대한 이해도 깊지 못했으나, 이제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정서와 필요를 고려해 걸맞은 장난감을 손에 쥐어주고 식탁 주변에서 어른들과 함께 어울리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커피를 즐기며 아이의 성장도 지켜보는, 참으로 근대적 여유가 물씬 풍기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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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밥티스트 시메몽 샤르댕, ‘물컵과 커피포트’, 1761년경, 캔버스에 유채, 32.38x41.28cm, 카네기 미술관, 피츠버그
동시대를 살았지만, 부셰처럼 화려한 부유층의 삶에 매료되지 않고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에 눈길을 주었던 화가가 있으니 그가 장 밥티스트 시메몽 샤르댕(1699~1779)이다. 그는 매우 소박한 커피포트 정물화를 남겼다. ‘물컵과 커피포트’가 그 그림이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물이 4분의 3쯤 채워진 유리잔과 갈색의 커피포트다. 둘 사이에 놓인 것은 마늘이다. 물컵은 그렇다 쳐도 왜 마늘이 커피포트와 함께 있는 것일까? 사실 여기 놓인 소재들은 같이 먹으려고 배치한 차림이 아니다. 화가의 의도는 철저히 조형적인 측면에 있다. 소재들의 형태와 크기, 색채, 질감 등이 서로 잘 조응하고, 소박하고 담박한 서민적 정서를 표출하는 데 적절해 이렇게 모아 표현한 것이다.
커피포트가 부셰의 그림에서 보는 금속성이 아니라 흙을 구워 만든 테라코타라는 점이 특별히 눈길을 끈다. 이 커피포트로 따라 마시는 커피는 그만큼 구수하고 인간적인 향취로 충만할 것이다. 물론 아직은 커피가 사치품처럼 인식되던 시대이니 샤르댕의 정물화도 가난한 서민이 보기에는 무척 부러운 여유의 표정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부셰의 그림보다 20년쯤 뒤에 제작된 이 그림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서민에게도 익숙해져가는 커피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 시대를 지나 19세기에 접어들면 커피는 완전히 유럽 서민의 일상에 스며든다.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는 농민들이 감자를 먹으면서 커피도 함께 즐기는데, 이제 커피는 더 이상 부자들의 사치품이 아니라 누구나 즐기는 일상의 기호품이 된 것이다. 커피를 그린 그림들만 놓고 보아도 이처럼 하나의 문화가 형성되어가는 모습이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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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이주헌은 미술 기자를 거쳐 학고재 관장을 지냈다.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내 마음속의 그림>,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 <이주헌의 아트카페>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