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1844~1900)는 독일의 철학자다. 니체는 유럽 철학사에서 가장 도발적인 철학자로 꼽힌다. 어찌 보면 그는 기왕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파괴하고자 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나는 인간이 아니라 다이너마이트다”라고 했다. 자신의 한 저서에 ‘망치를 들고 철학하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기도 했다. 즉, 자신은 다이너마이트와 망치로 파괴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니체가 파괴를 결심한 것은 고전문헌학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니체는 독일의 한 목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모두 목사였다. 그래서 집안에서는 당연히 니체가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니체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집안의 기대와 달리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특별히 고대 그리스 문학에 관심을 두고,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비극에 대해 연구했다.
니체는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비극 속에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있음을 알았다. 아폴로는 절제와 이성의 신이고, 디오니소스는 오만과 반항의 신이다. 그런데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우세할 때 그리스인의 정신과 문화가 발전한 반면, ‘아폴로적인 것’이 우세할 때 그것들이 쇠퇴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폴로적인 것’, 즉 이성을 대표하는 인물은 플라톤이었다. 그래서 니체는 플라톤의 철학이 그리스의 정신과 문화를 쇠퇴하게 했다고 생각했다. 이후 니체는 일관되게 플라톤의 철학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니체가 볼 때, 플라톤의 철학은 기독교로 이어졌다. 플라톤이 이상 국가를 위한 철학이라며 설파한 ‘이데아론’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무엇인지 그 실체를 알기 어려운 ‘이데아’를 ‘신’으로 바꾸어놓은 것이 기독교라고 니체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분명했다. 유럽의 정신과 문화를 쇠퇴하게 만든 두 주범은 플라톤 이래의 이성주의 철학과 기독교였다. 니체는 그 두 가지에 맞선 투쟁을 했다. 그런데 그 두 가지는 유럽의 철학은 물론 유럽인의 삶과 정신을 지배해왔다. 그래서 니체가 그것들을 파괴하려 하자, 유럽의 정신사 전체를 부정하는 일이 되었다.
니체가 볼 때, ‘신은 죽어야 했다.’ 신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곳에 살지 않는다. 신은 현실계가 아닌 초월적 이상의 세계에 있다. 그렇지만 신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신이 사는 세계는 우리가 구현해야 할 세계이고, 신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점으로 간주된다. 신의 가치는 우리가 내리는 판단의 절대적 준거가 된다. 따라서 신은 우리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절대 가치다.
인간은 신이라는 권위를 빌려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고 한다. 신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이 가진 한계에 신의 권위를 덮어씌워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신에 의존한다면 인간은 신의 노예일 뿐이다.
차라투스트라라는 이름의 청년이 있었다. 그는 서른 살 때 고향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10년 동안 정신과 고독을 즐기는 생활을 했다. 사실 차라투스트라는 니체 자신의 모습이었다. 니체는 독일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루 살로메(1861~1937)를 열렬히 연모했다. 살로메에게 사랑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수없이 보냈다. 그러나 살로메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니체는 낙담했다. 그래서 홀로 알프스산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고독한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일생일대의 영감을 떠올렸다. 그렇게 해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탄생했다. 니체의 나이 마흔 살 때였다.
차라투스트라 역시 10년 동안의 고독과 방황 끝에 깨달음을 얻고 산에서 내려왔다. 마흔 살이었다. 산을 내려오던 중 한 노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차라투스트라는 “나는 인간을 사랑하오”라고 말한다. 이에 노인은 “나는 신을 사랑하지,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응대한다. 그러면서 차라투스트라가 인간들에게 가려는 것을 반대했다. 산을 내려가지 말고 그대로 산에서 살라는 것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가볍게 웃으며 노인과 헤어졌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을까! 저 늙은 성자는 자신이 숲 속에만 살아서 신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아직 듣지 못했구나!” 여기에서 그 유명한 ‘신은 죽었다’는 말이 등장했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선언함으로써 유럽의 정신사 전체를 파괴하려고 했다. 그러나 파괴만 했다면 니체의 이름이 오래도록 기억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파괴한 자리에 새로운 것을 세우려 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다. 신이 사라졌으니 인간만이 남게 되었다. 니체는 바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고자 했다.
신이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은 인간을 지배해온 절대적 가치에서 벗어나야 함을 의미했다. 즉, 니체는 영원한 진리, 세상을 지배하는 절대적 가치로 여겼던 것에서부터 인간이 해방되어야 함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신이 사라진 자리에는 인간만이 남았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의 삶에서 신을 찾지 않을 정도로 위대해져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위대해질 수 있는가?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노라”라고 했다. 니체가 볼 때, 인간은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 인간은 벌레에서 진화해 인간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짐승의 본성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숭이를 웃음거리로 보지만, 인간 역시 원숭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니체는 “초인을 가르치노라!”라고 소리쳤다. 니체가 볼 때, 인간은 초인과 짐승의 중간에 있는 존재다. 따라서 인간은 짐승의 본성을 극복하고 초인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초인이란 누구인가? 초인은 영화에 등장하는 슈퍼맨이 아니다. 슈퍼맨은 단지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자일 뿐이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인간을 극복한 인간이다. 다시 말하면 초인이란 바로 그 위대해진 인간을 가리킨다.
왜 니체는 초인을 말했을까? 니체가 살았던 19세기, 유럽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계속적인 경제 발전을 근거로, 머지않아 유토피아의 세계가 실현될 것이라는 주장마저 등장했다. 그러나 어두운 면도 존재했다. 인간 소외의 문제가 그것이다. ‘돈’을 인간보다 중요시하면서 인간의 가치가 상실되는 사태를 맞이했던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이에 맞서서 인간의 참다운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투쟁을 하자고 했던 것이다.
니체는 유례없는 경제성장 속에서 인간의 가치가 상실되던 시대에 인간의 실존을 진지하게 고민한 철학자였다. 그 고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된 이 시대에 인간 실존의 문제는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폭로된 바 있는 동영상 한 편은, 오늘날 인간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목표를 세워야 할 때다. 지금이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가장 큰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 할 때다. 인간의 땅은 아직 그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비옥하다.” 그러나 니체의 경고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란 땅을 그대로 방치하면, 언젠가 메마르고 황폐해져 큰 나무가 더 이상 그곳에서 자라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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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기│<한국 철학 콘서트>, <철학자의 조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