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물어보면 다양한 답이 나온다. 가장 많은 대답은 달, 수성, 금성 그리고 화성이다. 당연히 틀린 답이다. 왜냐하면 별은 자기 자신을 태우면서 열과 빛을 발산하는 천체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나오는 대답은 알파 또는 프록시마 센타우리다. 하지만 아쉽게도 틀렸다.
두 별은 지구에서 각각 4.4광년과 4.2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로 날아가도 4년 3개월 정도는 걸리는 아주 먼 별이다.
질문에 맞는 답은 ‘태양’이다. 우리가 아는 별들은 모두 밤에 보이기 때문에 낮을 환히 밝히는 태양은 별로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뿐 태양도 별이다. 우리 은하에만 별이 천억 개가 있다. 우주에는 은하가 천억 개 넘는다. 따라서 우주에는 천억 개 곱하기 천억 개 이상의 별이 있는 셈이다. 태양은 그 많은 별 가운데 하나인 아주 평범한 별이다. 그런데 태양은 우리에게 특별하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지구와 가깝기 때문이다.
“도대체 태양은 지구와 얼마나 가까울까?”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1억 4400만 킬로미터다. 너무 먼 거리라서 감이 잘 오지 않는다.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돈다는 빛의 속도로도 8분 20초가 걸리는 곳에 태양이 있다. 엄청나게 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멀리 있는 태양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라는 사실 때문에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다. 지금보다 더 지구가 태양에 멀리 있다면, 예를 들어 화성 정도의 거리에 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반대로 더 가까웠다면, 그러니까 지구가 금성의 위치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지금의 금성과 화성을 보면 된다. 지구에 생명체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지구는 절묘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이것을 과학자들은 동화의 표현을 빌려 ‘골디락스 존’이라고 한다.
50억 년 전에 생긴 태양 안에서는 수소 원자핵이 헬륨 핵으로 변하는 핵융합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때 수소 핵의 질량 가운데 일부가 에너지로 변한다. 그것이 우리가 받고 있는 햇빛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모두 햇빛에서 왔다. 햇빛은 이산화탄소와 물을 포도당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태양에너지는 지구 생명체 대부분에게 (그렇다, 전부는 아니다) 생명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지구도 한몫했다. 이산화탄소와 물을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구에 생명이 탄생하는 데는 태양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우리가 잊고 있는 천체가 하나 있다. 지구와 가장 가까운 천체, 즉 달이다. 달은 지구의 위성이다. 작은 천체다. 지구에 비해 지름은 4분의 1, 부피는 50분의 1, 질량은 83분의 1밖에 안 된다. 질량이 작으니 중력도 작다. 지구 중력의 6분의 1이다.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천체인 달도 지구 생명체의 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달이 없으면 지구에 생명체도 없다. 이유는 한 가지, 바로 지구와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빛의 속도로 겨우 1.2초밖에 안 걸린다(이렇게 가까운 달에 발을 디뎌본 사람은 겨우 열두 명밖에 안 된다).
그런데 가만! 달이 왜 저기 있는 것일까? 50억 년 전에 태양이 만들어지고 46억 년 전에 지구가 탄생했다. 그때만 해도 태양계는 아주 복잡했다. 수많은 소행성과 혜성들이 마구 돌아다니면서 행성들과 충돌하던 때다. 어떤 생명체도 살고 있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누군가 살고 있었다면 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지구가 형성되고 불과 2000만 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지금의 화성만 한 행성이 지구와 충돌했다. 그 행성의 이름은 테이아(Theia).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내가 주먹으로 벽을 치면 벽만 부서지는 게 아니라 내 주먹도 다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 일어났다. 테이아가 지구와 충돌하자, 지구도 상당 부분이 우주로 튕겨나갔다. 작은 조각들이 지구 주변을 돌다가 뭉쳐져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달이다.
달은 지구에 계절을 선물했다. 지구에 계절이 있는 이유는 지구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양 주변을 공전할 때 햇빛을 받는 각도가 달라져서 계절이 생기고 또 지구가 받는 태양열이 지구로 골고루 퍼지게 된다. 그런데 지구의 자전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게 바로 달이다.
만약에 달이 없어진다면 지구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지구 자전축이 요동치게 된다. 극심한 기후변화가 일어난다. 극지방이 열대로 변하고 적도지방에는 혹한이 찾아온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 매일 슈퍼 폭풍이 지구를 지배한다. 또 달이 사라진다면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지금보다 30% 이하로 줄어든다. 바다는 항상 일정한 수심을 유지한다.
갯벌이 항상 물에 잠겨 있게 되므로 지구에는 조개와 낙지 같은 어패류는 살지 못한다. 바닷물은 순환이 되지 않아 산소가 부족해져서 물고기들이 살기 힘들어진다. 조력발전은 생각할 수도 없다. 달이 없으면 밤은 그야말로 칠흑으로 변하고 만다. 올빼미 같은 야행성 동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달이 없으면 주말도 없다. 태양과 달의 운행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바로 달력이다. 하루와 한 해는 태양의 운행에 따라 정해지지만 일주일과 한 달은 달의 운행에 따라 정해진다. 그런데 태양, 지구, 달은 인류에게 별로 친절하지 않다. 달과 지구가 각각 28일과 (28×12=)336일을 주기로 지구와 태양을 공전하면 좋으련만 27.3일과 365.2422일 주기로 공전하면서 달력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태양의 지름은 달의 400배다. 그런데 지구-태양의 거리 역시 지구-달 거리의 400배다. 덕분에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런 것은 아니다. 달은 지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중력의 크기가 달라지고 지축도 달라진다. 50억 년 후엔 태양은 점점 부풀어 올라서 지구를 삼켜버리게 된다.
태양-지구-달의 관계가 지금처럼 놓인 것은 순전히 운이다. 그 운으로 우리가 살고 있다. 가까이 있는 태양과 달에 더 큰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2019년이면 사람이 달에 첫발을 내디딘 지 꼭 50주년이 된다. 그 사이에 인류는 우주와 자신을 얼마나 더 이해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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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정모는 서울시립과학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생화학을 전공하고 대학 교수를 거쳐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지냈다. <250만분의 1>,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 <내 방에서 콩나물 농사 짓기> 등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과학도서와 에세이 등 60여 권의 저서를 냈고 인기 강연자이자 칼럼니스트로도 맹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