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할 일이 거의 없다. 사람 만나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재미도 한때라더니. 올여름엔 아침저녁 기온마저 만만찮아서 산책마저 포기하고 지낸다. 혼자 시간 보내기를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지라 심심한 줄은 모르겠다. 하는 일이랬자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거나, 책을 읽거나, 지지부진 붙잡고 있는 소설 원고를 들췄다 덮었다 하는 게 다다. 그래도 하루가 후딱 간다.
가능하면 한두 시간에 한 번쯤은 의자에서 일어나 베란다 너머 바깥 풍경에 하릴없는 눈길을 던져보곤 한다. 먼 산은 겹겹으로 포진한 아파트들이 둘러막고 있고, 15층 베란다에서는 수목의 우듬지만 내려다보일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앞 동과 옆 동 사이로 이면도로의 사거리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시계가 확보된다는 점.
딱히 흥미를 끌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늘 그대로인 듯 나른한 시계 안에서도 작은 움직임이나 느린 변화가 없지는 않다.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다시 빨간불로 바뀌는 신호등을 무한히 바라보기도 하고, 무단 횡단하는 행인을 지켜보기도 한다. 차도와 높낮이만 약간 다를 뿐 위험천만인 보도 바깥쪽에는 할머니 몇 분이 제철 푸성귀 따위를 늘어놓고 앉아 있다. 눈비 오는 날과 명절을 빼고는 한결같다. 요즘 같은 폭염에도 챙 넓은 모자 하나로 뙤약볕과 배기가스에 맞서고 있다. 장하다고 해야 할지, 징하다고 해야 할지.
시력검사표를 읽듯 도로 모퉁이 상가의 간판들을 또박또박 읽는 것도 놀이 겸 일과다. 한 계절에 두어 번쯤 새로운 간판이 달리는데, 보나마나다. 버틸 때까지 버티던 업주가 눈물의 철수를 한 자리에 위태로운 도전자가 나타났거나, 혹여나 하는 심정으로 업종만 갈아탔거나, 아니면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없는 돈 들여 새 단장을 한 경우. “어렵다, 어렵다”가 입으로 눈으로 한숨으로 욕설로 자동 발사되는 불황의 시대다. 어지간해서 단골을 바꾸지 않는 나조차도 지금 이용하는 미용실이 다섯 번째다. 터에 화복이 있는지, 한 번 간판이 바뀐 집은 계속 바뀌는 것 같다.
날 어두워져 평면적이던 간판들이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길 건너 상가 건물의 속사정이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인다. 옆옆 건물 프랜차이즈 제과점과 출혈 경쟁 중인 빵집, 인테리어를 새로 한 안경점, ‘여의사 진료’ 문구를 내건 산부인과, 수학 학원과 바리스타 양성 학원… 들이 테트리스 게임 블록처럼 옆으로 위로 차곡차곡 쟁여져 있는 동일 건물에서 못 보던 야한(?) 간판 두 개를 발견했다. 노래방과 북경 전통마사지 숍. 얼마나 버티려나.
내 눈길의 종착 지점은 그 건물의 꼭대기 층. 최근 주택가나 상업 지역을 가리지 않고 우후죽순 들어선다는 요양원 중 하나다. 어쩐 일인지 낮에도 기척이 없다. 밤에도 불빛 한 빗금 새어나오지 않는다. 도로에 면한 창문을 완전히 막아버린 모양이다. 갑갑한 병상에서 숫제 바깥을 내다볼 수 없도록 통제하는 이유가 뭘까. 저 폐쇄된 공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조용히 생의 마지막 시간을 기다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면…. 험한 세상이라 곧잘 험한 상상으로 치닫곤 한다.
‘안경을 닦고 있으면 지구의 한 모퉁이를 닦고 있는 것 같다’던가. 베란다에 기대서서 조각난 거리 풍경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문득문득 사는 일이 아득해진다. 그럴 때마다 안경을 닦는다. 번히 눈을 뜨고도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는 어디에나 있다. 마음의 눈마저 감아버리면 세상은 온통 캄캄절벽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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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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