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5도는 북으로부터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순으로 5개 섬을 일컫는다. 서해 5도 중 가장 큰 섬이면서 최북단 섬인 백령도 사람들은 “백령도는 맘대로 올 수 없고 맘대로 나갈 수도 없는 섬”이라고 말한다. 여객선이 3000톤급 이상이지만 해무와 파랑주의보가 잦아 여간해선 뱃길의 빗장을 열어주지 않는다. 백령도는 인천항에서 북으로 222km 해상에 있다. 쾌속선으로 네 시간 소요된다. 공해상 남방한계선을 따라 곡선의 뱃길을 항해해 더 시간이 지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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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령도 두무진으로 가는 길
백령도 앞바다 2km 앞이 38선이다. 북한과 팽팽히 맞서 긴장과 평화가 공존한다. 그러면서 천혜의 절경을 보듬고 있다. 백령도의 원래 이름은 곡도였다. ‘따오기 곡(鵠)’ 자를 쓰는데 따오기 흰 날개가 날아가는 모습의 섬이라는 뜻이다. 철새들의 낙원이다. 지도를 놓고 봐도 흰 새가 날아가는 모양새다. 특히 청명한 날에는 섬 전체가 비상하는 철새로 장관을 이룬다.
어업보다 농사일에 더 많이 종사하는 백령도에서 해풍을 맞으며 자란 쌀가루에 짠 김치를 넣어 만든 것이 백령도 대표 토속음식인 ‘짠지떡’이다. 메밀 칼국수에 짠지떡과 막걸리 한 사발이면 농번기의 농민도 여행객들도 한시름 풀기에 그만이다. 백령도에는 문화유산도 많다. 진촌리 일대 7만 6000여 평(0.25㎢)에 패총이 널렸다. 한국문학의 무대로서 심청이가 아버지 심 봉사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300석에 몸을 던진 인당수와 심청이가 환생했다는 연봉바위가 있다. 그 중심무대가 바로 저편 북녘 장산곶과 연꽃이 흘러왔다는 백령도 앞바다. 이를 기리기 위해 백령도 고봉포구에 심청각이 있고, 당시 무대를 재현하는 모형도와 판소리, 영화, 고서 등이 전시돼 있다.
3.7km 백사장인 사곶해변. 모래에 뻘이 오묘하게 섞인 해변에는 비단조개, 게, 골뱅이 등이 산다. 피서 때 한쪽 해변은 장병 야영장, 한쪽은 일반인 해수욕장으로 개방한다. 6·25전쟁 때 유엔군이 임시 활주로로 사용했던 군사용 천연비행장이다. 이곳은 썰물 때 300m 이상의 단단한 도로가 생겨 군수송기 이착륙이 가능하고, 자동차가 시속 100km 이상 달릴 수 있는 신비의 해변이기도 하다. 이런 천연 활주로 해변은 이탈리아 나폴리와 함께 백령도 사곶해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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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안 절벽에 마련된 초소 2 백령도 액젓을 담을 삶은 멸치 3 천연기념물 콩돌해안
백령도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천연기념물 바닷가가 콩돌해안이다. 남해안의 몽돌해안과는 달리 콩알만 한 자갈들로 1km 해안을 이룬다. 파도에 수없이 씻기기를 반복하면서 콩처럼 작은 돌이 되었다. 백색, 갈색, 회색, 적갈색, 청색 등 형형색색의 색깔과 문양이 신비로울 따름이다. 옛날 이 마을 사람들은 콩돌로 반지와 예물 장신구를 만들었다. 바다 속 수심이 장소에 따라 급격히 달라지는 해저단층 지역이라서 해수욕은 금지돼 있다.
백령도의 상징이 된 해병대가 위치한 해발 184m 정상에 오르자, 장산곶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깝다는 소리를 알 것 같았다. 안개가 끼었는데도 북녘 땅 동쪽으로 월래도, 서쪽으로 ‘몽금포타령’의 무대인 장산곶이 희끗희끗 보였다.
백령도는 좁은 어업한계선 때문에 어민들이 고기를 따라가다가 조금만 방심하면 어선이 북으로 밀려가기 때문에 경비정과 지도선이 늘 따라붙는다. 특히 꽃게와 멸치가 많이 잡히는 성어기 6월께는 어민과 장병들이 가장 긴장하는 시기다. 이런 특수한 환경 탓에 백령도에서는 오전 6시 이전과 오후 6시 이후는 조업이 금지돼 있다.
하루 2회 운항하는 유람선 타고 ‘서해의 해금강’이라고 부르는 두무진을 감상하는 일은 백령도 여행의 백미다. 바위 모습이 마치 투구를 쓴 장군들 회의 장면과 같다고 해서 두무진(頭武津)이라 부른다. 그 앞바다의 물개바위는 물범 서식처로 봄부터 가을까지 물범들의 세상이다. 남북의 바다를 넘나들며 자유와 평화를 온몸으로 만끽하는 이 해역은 여름과 겨울 가마우지, 노랑부리 백로, 괭이갈매기, 백로들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물범 구경에 푹 빠진 사이 유람선 선장이 “아홉 시 방향을 보세요. 저기 절벽초소의 장병들이 근무 중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랬다. 절벽초소에있는 젊은이들은 북녘을 응시 중이었다. 정희성 시인은 ‘몽유백령도’라는 시에서 “구멍 속에는 초병이 하나 서서 / 장산곶 하늘이 매를 감시하고 있다 / 제 몸에 얹힌 온갖 것 훌훌 털고 / 크고 흰 날개 퍼득여 하늘로 오를 날 / 오기는 올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 백령도가 황해바다 한가운데 서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노래했다.
시인은 우리가 우리를 응시한 게 아니라 장산곶 매 한 마리를 응시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게다. 이제는 분단의 상처 훌훌 털어내고 날아오를 장산곶매를 기다리는 그런 초병이라고 믿고 싶었던 게다. 이 낯선 현장의 정서적 충격도 언젠가는 우리 분단조국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추억이 될 것이다.
교통편은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하루 2~3회 운항(고려고속훼리 1577-2891 / 에이치해운 1644-4410). 섬 내 공영버스, 택시 운행(백령면사무소 032-899-3515).
박상건 한국잡지학회장은 <샘이깊은물> 편집부장과 월간 <섬> 발행인을 지냈고 현재 사단법인 ‘섬문화연구소’ 소장이다. 섬과 등대 이야기를 수년간 써왔으며 단행본도 출간했다. 학자이자 여행가, 작가이기도 한 그는 지금도 틈날 때마다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