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으로 인해 타인에게 인색해지고 삶을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지만, 고통으로 인해 더욱 사려 깊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경우도 많다. 달콤한 행복만을 추구하다 보면 ‘고통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을 망각하거나 건너뛰게 된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는 단순히 고통을 통한 자기 극복이 아니라 고통에 온몸을 던짐으로써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깨달음을 얻는 구도(求道)의 과정이기도 하다. 어쩌면 현대 사회는 ‘진정한 통과의례’의 과정을 제대로 밟지 못한 미성숙한 어른들의 사회가 아닐까.
원시부족사회의 통과의례는 진정 성숙한 어른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시스템이었다. 영웅 신화의 공통적인 구조는 사춘기 즈음의 소년소녀가 죽음에 버금가는 시련을 겪고, 마침내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해 공동체에 꼭 필요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시련을 통한 ‘성공’이 아니라 공동체가 한 개인을 끊임없이 지켜보고 그를 한 사람의 소중한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오디세이>의 아테나 여신,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 <스타워즈>의 요다처럼 공동체의 통과의례에는 반드시 최고의 멘토가 필요하다. 멘토는 그저 성공을 위한 ‘팁’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의 인생을 반드시 끝까지 지켜보고 조언해주겠다는 강력한 책임감을 지닌 존재다. 입시제도나 취업시험이 진정한 통과의례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이 ‘시련’은 결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나중에라도 구성원으로 받아주겠다는 믿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모든 시험은 ‘배제’를 기본원리로 한다.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은 떨어뜨리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 시험이다.
하지만 전통사회의 통과의례가 개인에게 부과하는 ‘미션’은 토익시험 점수처럼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타인을 구원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었고, ‘개인의 성공’보다는 ‘타인에 대한 공감’과 관련된 것이었다. ‘아픈 노인을 구해낼 약초를 구해와라’든지, ‘동굴이나 탑 속에 갇힌 연약한 존재를 구해오라’라는 식의 미션이 통과의례의 미션이었다. 그것은 실질적인 이득이 아니라 ‘나의 행복만을 생각한다면 결코 눈에 닿지 않을 더 넓은 세상의 아픔에 눈뜨는 깊은 성찰’을 담보로 하는 시련이었다. <바리데기> 신화는 처음에는 자신을 딸이라는 이유로 내다버린 아버지의 불치병을 치유할 약초를 구하러 가는 미션에서 시작되지만, 바리데기는 결국 아버지를 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 고통 속에 스러져가는 영혼들을 무사히 저승세계로 인도해주는 구원과 치유의 메신저로 거듭나게 된다. 심청 또한 처음에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인당수에 빠졌지만, 인당수라는 ‘죽음’과 ‘재생’의 이중적 공간에서 용궁이라는 통과의례의 공간을 거쳐 마침내 온 세상 맹인들을 눈뜨게 하는 잔치를 벌이는 구원의 여신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 아픔이 없었더라면 과연 내가 지금의 나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기억들이 있다. 첫사랑이 영원히 깨어지는 순간의 아픔, 가까운 사람의 죽음, 내가 짊어져야 했던 온갖 책임과 그로 인한 중압감들. 어쩌면 그런 아픔들이 모여, 그리고 그 아픔을 견디고 이겨내고 마침내 극복해내기까지의 과정들이 우리를 철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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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작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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