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 ‘거의 모든 것의 과학’
일기예보는 가끔 틀리는 게 정상입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마로, 오전 5:00, 소나기(약함), 11℃, 강수확률 81%, 습도 88%, 풍속 2m/s.
새벽에 눈만 뜨면 가장 먼저 스마트폰을 켭니다. 딱히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버릇이죠. 그러면 첫 화면에 그날의 날씨가 뜹니다. 그 순간의 날씨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시간 단위로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도 알려주죠. 이걸 보고 옷차림과 출근 교통수단을 결정합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쌀쌀하고 비가 오겠네요. 옷을 따뜻하게 입고 우산을 챙긴 후, 조금 일찍 나가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자동차를 놔두고 기차를 타고 출근해야겠어요.
스마트폰은 참 기특한 장치입니다. 그런데요 스마트폰이 스마트한 까닭은 자신이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닙니다. 자기가 하는 일은 별로 없어요. 날씨도 스마트폰이 예측하는 것은 아니에요. 기껏해야 자기의 GPS 위치를 확인하고 거기에 따라서 기상청이 알려주는 정보를 가져오는 게 전부죠. 날씨는 작은 컴퓨터로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전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기상 정보를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가 분석하고 이것을 다시 기상전문가가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일입니다. 물론 기상 정보를 수집하고 정보를 분석하는 프로그램 역시 기상전문가가 짜야 합니다. 날씨는 스마트폰이나 슈퍼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이 알려주는 것이죠.
제가 어릴 때만 해도(1970~1980년대 이야기입니다) 텔레비전의 밤 9시 뉴스가 끝날 무렵에는 기상청(당시에는 중앙관상대)의 김동완 통보관이 직접 출연해서 날씨를 알려주었습니다. 김동완 통보관은 한반도 주변의 해안선이 표시된 흰 종이에 매직으로 등압선을 그려가면서 날씨를 예보했죠. 그가 날랜 속도로 그리는 기상도 덕분에 온 국민이 날씨가 왜 변하는지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매일 지구과학 수업을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요. 목소리는 또 얼마나 좋았다고요. 제가 어린 나이였지만 나중에 결혼할 때는 꼭 김동완 통보관께 주례를 부탁하겠다고 마음먹었을 정도였습니다.
기상도는 어떻게 그리는 걸까요? 높은 하늘에서 인공위성으로 지구를 내려다보면 구름이 기상도 모양으로 떡하니 그려져 있는 게 아닙니다. 시작은 숫자입니다. 기상학자들은 자기들만의 가상세계를 만듭니다. 그리고 대기를 양파껍질처럼 여러 층으로 나누죠. 각 층을 다시 바둑판처럼 여러 개의 작은 면으로 분할합니다. 지구를 둘러싼 공기를 수없이 많은 작은 정육면체 상자로 채웠다고 보면 됩니다. 각 정육면체의 꼭짓점에서 대기의 여러 특성을 측정합니다. 이 값을 컴퓨터에 입력해 미래의 대기상태를 계산합니다. 정육면체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더 정교한 값이 나오겠지요.
그런데요, 일기예보는 우리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기상도에는 국경이 있지만 대기에는 국경이 없거든요. 공기는 국경을 넘나들면서 순환합니다. “이건 우리나라 공기야. 저건 너희 나라 공기잖아”라고 말해봐야 소용이 없는 거죠. 따라서 정확한 일기예보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대기 흐름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위에서 움직이는 대기의 특성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상 분야는 전 세계의 협력체계가 가장 먼저 확립되었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려면 교환하는 정보의 규격이 같아야겠죠. 그래서 전 세계는 같은 시간에 같은 방법으로 기상을 관측하고 이 값을 교환합니다. 이걸 위해 1873년에 이미 국제기상기구(IMO)가 설립되었죠. IMO는 1950년에 UN 산하기관인 세계기상기구(WMO)로 개편됩니다. 세계기상기구는 이념과 상관없이 협력합니다. 심지어 전쟁 중인 국가 사이에도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공기에는 국경도 조국도 없기 때문이죠.
더 정교한 일기예보를 하려면 대기를 나눈 가상의 정육면체 크기가 더 작아져야 합니다. 그러면 더 많은 숫자가 나오거든요. 숫자가 늘어났으니 이걸 계산하는 시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기상청의 과학자들이 모두 매달려서 엄청난 속도로 계산합니다. 마침내 답을 얻었습니다. 내일의 일기예보가 작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벌써 내일모레가 되었네요. 도저히 손으로 계산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슈퍼컴퓨터입니다.
1999년 슈퍼컴 1호기(NEC/SX-5)의 도입과 함께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수치예보가 시작됩니다. 우리나라 슈퍼컴퓨터의 역사는 기상청 슈퍼컴퓨터의 역사와 같습니다. 기상청은 다양한 해상도의 모델을 사용합니다. 10km의 전지구모델, 12km의 지역모델, 1.5km의 국지모델, 32km의 전지구앙상블모델(25개국), 3km의 국지앙상블모델(13개국) 등이 이것이지요.
그런데 왜 일기예보는 맨날 틀리는 걸까요? 우리나라는 일기예보가 좀 까다롭기는 합니다. 전 국토의 70%가 산입니다. 동서를 가르는 백두대간이 있고 여기에서 나온 산줄기가 발달했지요. 삼면을 둘러싼 바다에서 고온다습한 기류가 몰려오고 북쪽에서는 차고 건조한 공기가 내려오죠. 복잡한 기류와 복잡한 지형이 만나서 게릴라성 폭우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슈퍼컴퓨터는 그냥 하드웨어입니다.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지요. 처음에는 일본 수치예보 모델을 썼어요. 좋은 모델이지만 틀릴 때가 많았습니다. 2010년부터는 영국 모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 것이든 영국 것이든 우리나라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지는 못하지요. 우리나라만의 수치예보모델이 필요합니다. 사람과 돈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요.
그럼에도 우리나라 기상청의 예측 정확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죠. 우리나라 일기예보가 엉터리라는 느낌은 예측이 어긋나서 망친 하루만 기억하는 우리 뇌 때문에 생기는 착시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일기예보는 과학입니다. 자료를 가지고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비가 온다, 안 온다가 아니라 강수확률이 몇 %라고 예보하죠. 합리적인 판단이 항상 정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기예보는 영묘한 점쟁이가 내놓는 점괘가 아닙니다. 당연히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보가 틀렸다고 해서 기상청장이 사과문을 발표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과학은 과학으로 대해야 합니다. 일기예보는 가끔 틀리는 게 정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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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정모는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생화학을 전공하고 대학 교수를 거쳐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지냈다. <250만분의 1>,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내 방에서 콩나물 농사짓기> 등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과학도서와 에세이 등 60여 권의 저서를 냈고 인기 강연자이자 칼럼니스트로도 맹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