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김훈은 ‘서문’에서 이렇게 쓰면서 소설 <남한산성>을 시작했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다시 이 땅이 유린되고 인조가 부랴부랴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그때의 역사로 돌아가면서 김훈이 만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말이고, 하나는 먹을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둘은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전쟁은 말의 풍년을 낳았고, 먹을 것을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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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싸이런픽쳐스 ⓒ학고재
<남한산성>은 벼슬아치들의 말이 날카롭게 부딪치고, 그 부딪침 속에서 사람은 굶주림과 추위로 쓰러져가는 모습을 역시 날카롭고 차가운 문장으로 그려간다. 그 날카로움과 차가움이 역설적이게도 그날의 치욕의 역사를 뜨겁게 드러낸다. 엄동설한, 조선 산하는 오랑캐에 짓밟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임금은 작은 성에 부들부들 떨며 웅크리고 있다가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삼전도에 나와 청나라 황제에게 ‘삼배구고두례’(세 번 절하고 아홉 번이나 머리를 조아림)를 했다.
역사는 그때의 굴욕과 참상, 그 원인을 숨김없이 전하고 있다. 이미 앞서 조선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광해군이 왕위에 올랐으나 15년 만에 이른바 ‘인조반정’으로 쫓겨나고 인조가 등극했다. 그때가 1623년으로 중국은 명·청 교체기였다. 서인이 주도한 반정의 명분은 충(忠)과 효(孝)다.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 존호를 폐하고 서궁으로 칭한 것이 불효이고, 명과 청 사이에서 양면외교야말로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보내준 명나라에 대한 불충이란 것이었다.
<남한산성>의 소재가 된 병자호란과 앞서 일어난 정묘호란은 바로 그 ‘충’을 고집한 서인들이 자초한 참화였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명에 대한 사대를 충이라고 고집한 것도 어이없고 시대착오적이지만, 설사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충’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지키려면 청과 맞설 힘을 길러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결국 그들의 무능과 무책임, 탐욕이 불러일으킨 참화는 고스란히 백성의 몫이었다. 왕은 삼전도 들판에서 청의 황제에게 엎드려 머리를 찧으며 항복하기까지, 그리고 항복 후에도 이 땅의 백성은 무참했다. 왕은 나라와 백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죽음보다 치욕스러운 굴욕을 감수했다고 하지만, 백성은 왕에게 버림받고 적의 창에 죽어갔다.
임진왜란으로 200만 명 가까운 백성이 죽어 조선의 인구가 300만 명으로 줄었는데, 설상가상 병자호란으로 그 6분의 1인 50만 명이 청나라에 노예로 끌려갔으니 두 왜란과 호란으로 이 땅의 백성 절반이 사라진 셈이다. 김훈은 그 두 비극의 역사를 소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그의 소설을 많은 사람이 읽고 공감하는 이유는 그의 날카롭고 섬세한 역사 읽기, 비록 그날의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재연한 언어가 가진 감수성이 역사를 문학 속에 살아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그의 소설이 널리 읽히고, 또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된 이유는 아니다. 그가 재연한, 기억하는 역사가 읽고 보는 이들에게 그의 언어만큼이나 날카롭게 ‘현실’을 반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은 역사 속의 영웅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장수로서 지극히 당연한 인물이고, 또 지극히 솔직하고 인간적인 인물이다.
전화의 와중에 최명길과 김상헌이 주화와 척화, 비둘기와 매가 되어 한 치의 양보나 타협 없이 ‘밖에서 싸우기보다 안에서 더욱 모질게, 갇힌 성 안에서 말로 싸우고 또 싸우는’ 이야기인 <남한산성> 역시 지금 이 시대를 비추고 있다. 그 역사의 거울에 비친 모습을 소설과 상관없이, 장르의 특성상 영화가 그것을 좀 더 단순화시켰든 말든,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의 상을 그린다.
소설 <남한산성>을 이야기하면서 김훈은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다”라고 했다. 때문에 그의 거울은 역사적 선택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역사에 의한 고통에 민감했고 그것에 내 편 네 편이 없다. 때문에 그의 <남한산성>에는 그 고통을 만든 원인이나 사람에 대한 미움이나 비판이 없다. 왕도, 김상헌도, 최명길도 모두 연민으로 포용하려 했다.
소설을 가능한 그대로 영상으로 옮기려 한 영화 역시 김상헌과 최명길의 치열한 말의 전쟁과 뛰어난 언어의 묘사에 의해 더욱 내면화된 그들 편에선 사람들과 왕의 제각각의 ‘고통’에 집착했다. 역사적 사실과 상관없이 뱃사공의 손녀 나루와 김상헌의 애국충정을 뒷받침하는 지혜로운 대장장이 서날쇠(고수 분)까지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소설과 영화가 선택한 길이고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 ‘역사’다.
다만 영화는 영의정 김류(송영창 분)나 수어사 이시백(박희순 분), 심지어 김상헌(김윤석 분)과 최명길(이병헌 분)까지 미약하나마 선악을 구분하지만, 그 역시 역사에 대한 해석이나 비판은 아니다. 소설은 아예 침묵해버린 왕의 삼전도 굴복 이후,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 백성이 겪어야 했던 비극도 무심하게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지나간다.
그렇다고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이 그것을 그대로 따라가야 할 이유는 없다. 현실에서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저마다의 선택에 달려 있다. 때문에 <남한산성>에서 당시 명과 청 사이에서 고민하는 조선의 처지, ‘죽음보다는 살아서 새 길을 가자’는 최명길과 ‘죽음보다 못한 삶보다는 죽음의 길을 간’ 김상헌의 대립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는 사람들도 있다. 비록 길은 다르지만 상대의 역할과 가치관에 대한 포용력과 존경심을 가진 그들에게서 극단적 대립과 무조건적인 비판으로 일관하는 지금의 정치적 상황을 개탄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영화와 소설이 흘려버린, 백성의 생명과 안전을 팽개친 인조의 무능함과 나약함에서 개혁군주에 대한 아쉬움, 오늘날 바람직한 지도자상을 찾기도 한다. 역사는 이렇게 언제나 각기 다른 모습으로 현재로 다가온다. 소설과 영화는 단지 그 기회를 줄 뿐이다. 그렇다고 작가와 감독이 이끄는 대로 가야 할 이유는 없다. 작가는 작가, 감독은 감독일 뿐, 역사가는 아니니까.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