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는 그림이나 조각으로 말한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동적이지만 연기와 연주를 하는 배우와 음악가와 달리 자신의 작품을 캔버스에 가둔다. 그래서 정적이고 작품과 분리돼 있다.
60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미술가에게 행위예술은 남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그들도 작품 속에 자신의 몸짓을 직접 집어넣기 시작했다. 이 같은 고정관념을 뒤집는 비연극적 미술 행위를 사람들은 처음에는 단순한 해프닝, 낯설고 어색한 이벤트로 여겼던 것이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당당히 하나의 표현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지금은 당연하고 중요한 장르로 동시대 작가들의 ‘미술 언어’가 됐다. 아예 그림과 조각 없이 자신의 신체만으로 하나의 ‘미술’을 보여주거나 작품 속에 자신의 행위를 담아서 보여주기도 한다. 정적인 이미지, 시간의 정지가 아닌 행위의 시간적 흐름을 중시하는 비디오아트도 퍼포먼스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 미술계도 1967년 젊은 작가 10여 명이 처음으로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을 펼친 이래 50년을 이어오는 동안 ‘퍼포먼스’는 때론 파격으로, 때론 격렬하게 시대와 인간, 자연을 표현해왔다. 앞서 1961년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독일에서 발표한 머리카락을 풀어헤쳐 쓴 그 유명한 붓글씨 ‘머리를 위한 선’도 퍼포먼스였다.
미술가들이 왜 이렇게 캔버스를 버리고 자신의 몸으로 작품을 만들거나 몸 자체를 그림으로 표현했을까. 지난 9월 22일 개막해 내년 1월 21일까지 이어지는 국립현대미술관(과천관)의 국제기획전 ‘역사를 몸으로 쓰다’를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세계 각국의 퍼포먼스 작가 38명의 작품 70여 점이 한자리에 모인 이 전시회는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반세기 ‘퍼포먼스 미술’의 역사를 오롯이 담았다.
전위적이고 독창적인 그들의 작품은 하나같이 몸이 곧 삶이고, 기억이고, 관계임을 강조한다. 몸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사회·역사·문화적 맥락과 관심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나아가 권력, 자본, 지식 등 현실을 작동시키는 사회적 장소이기도 하다. 때문에 어쩌면 그들은 몸보다 더 정직하고 다양한 표현 방식, 예술 매체는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사진이나 영상에 담든, 아니면 현장의 행위로 보여주든.
가족과 지인들의 이름을 빼곡히 쓰다 끝내는 검은 먹으로 뒤덮여버리고 마는 자신의 얼굴. 지워진 얼굴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상실돼가는 자아 정체성이다.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을 이끈 장 후안의 ‘가계도’이다. ‘퍼포먼스의 대모’로 불리는 세르비아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발칸 연애 서사시’에서 펼쳐 보이는 적나라한 제의적·민속적 남녀의 성 의식(儀式)은 초자연적이며 대지를 풍요롭게 하고 상처와 역사의 비극을 치유하는 토양이다.
존 레논의 부인인 오노 요코가 1964년부터 1966년까지 일본 도쿄, 미국 뉴욕 등에서 5차례 선보인 ‘컷 피스’에서 관객이 무대 위로 올라가 그녀의 옷을 마음대로 자르는 행위를 인간의 잠재된 타인에 대한 폭력성으로 해석하든, 가부장적 억압과 폭력이란 페미니즘 시각으로 해석하든 그건 자유다. 박찬욱 감독의 동생인 박찬경의 올해 작품 ‘소년병’은 이데올로기로 만들어진 우리의 집단 기억과 이미지를 해체한다. 인민군복을 입고 책을 읽고 노래를 부르는 북한 소년병은 강인하지도, 이념과 정치와도 무관해 보인다.
‘역사 몸으로 쓰다’는 50년 역사의 퍼포먼스 미술이 우리의 삶에 접근하는 방식과 태도를 세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집단 기억과 문화의 재구성이고, 또 하나는 현실과 삶의 문제를 역설한 일상의 몸짓과 사회적 안무,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동체 실험이다.
정신이 기억하는 것과 달리 몸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 우리의 삶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 기억을 작가들은 끄집어내고 되살린다. 기억은 변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무의식에 의해 재구성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들은 집단 기억을 재구성하거나 해체해 역사에서 삭제되고 변형된 기억을 몸짓으로 표현한다.
집단 기억과 문화적 유산의 재구성은 그 변형의 뿌리인 부당한 권위와 제도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고 예술적 저항이다. 박찬경의 ‘소년병’도, 신문을 자르는 성능경의 ‘신문’도, 겨울에 광장 바닥에 누워 입김으로 얼음을 녹이려는 송동의 ‘호흡, 텐안먼(天安門) 광장’도 그런 것이다. 1960~1970년대 한국의 퍼포먼스 작가들과 제로 지겐 등 일본의 전위예술가 집단의 집단적 신체 반응에서도 그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퍼포먼스라고 전위적이고 파격적이지만은 않다. 걷고 청소하고 먹고 요리를 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몸짓을 예술언어로 가져오기도 한다. 이때 일상의 몸짓은 보이지 않는 사회적 의미를 내재한 ‘사회적 안무’이고, 그 몸짓을 만든 권력의 풍자이다. 일본 하이레드센터는 ‘청소 이벤트’로 근대화에 대한 국가적 열망을 풍자했고, 벨기에의 프란시스 알리스는 9시간 동안 멕시코시티 거리에서 얼음덩어리를 밀면서 걷는 행위의 반복으로 소수자의 생존과 노동문제를 상기시켰다.
퍼포먼스 미술가들의 또 하나의 관심은 전쟁, 테러, 자살, 빈곤, 환경오염 등 공동체의 결합을 끊어버리는 사회문제들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전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위기는 퍼포먼스 예술 분야에서도 새로운 컬렉티즘을 불러일으켰다. 공동체 회복이야말로 무엇보다 몸과 몸의 친밀한 만남을 통해 실현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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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역사를 몸으로 쓰다’전에서 볼 수있는 백남준의 작품 ‘머리를 위한 선’. ⓒ백남준스튜디오
이번 전시도 그것을 확인시켜준다. 참여 작가들은 지금 공동체가 안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몸으로 재상연(reenacting)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협업과, 몸과 몸의 친밀한 만남의 퍼포먼스로 일시적인 공동체를 실험한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의 가토 츠바사가 밧줄로 함께 건축물을 들어 올리거나 허무는 것을 연출한 것과, 타나카 코키가 다섯 명의 연주자에게 한 피아노를 동시에 연주하도록 한 것 등이다. 이 작품들은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를 찾으려는 간절함을 보여준다.
이렇게 미술가들의 ‘몸으로 역사 쓰기’는 언어가 기록하지 못한 역사, 언어가 감당할 수 없거나 숨기고 싶은 아프고 부끄러운 기억까지 용기 있게 써 내려간다. 그래서 늘 우리는 ‘퍼포먼스 미술’이 쓰는 역사에 주목하고, 그 역사로 나와 우리를 돌아본다.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