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해, 무술년(戊戌年)도 어느덧 4분의 3이 지났습니다. 12간지 동물 가운데 개만큼 우리와 친근한 동물은 또 없죠. 우리나라만 해도 444만 가구에 666만 마리의 개가 사람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44%의 가구가 개를 키우는 미국에는 총 7800만 마리의 반려견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지구에 살고 있는 10억 마리의 개가 모두 반려견인 것은 아닙니다. 7억 5000만 마리는 불결, 질병, 육체적·정신적 고통 속에서 혼자 살아갑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서로 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를 잘 안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 혹시 우리는 개를 개 모습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개를 보는 건 아닐까요?
‘종의 다양성’이란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 종의 수가 급격히 줄면서 생태계의 지속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종내 다양성’이란 말도 있습니다. 같은 종이라고 하더라도 형태가 다양하고 행동양식도 서로 다르다는 뜻입니다. 어떤 종의 생명을 일반화해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말이지요. 종내 다양성이란 말이 낯선 이유는 과학자들이 그걸 인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입니다. 동물학자들은 동물에게 저마다의 개성과 감정 그리고 지능이 있다는 사실을 불과 수십 년 전까지도 부정했거든요. 개는 이렇다, 늑대는 저렇다라고 단정하곤 했죠.
침팬지 연구가로 유명한 제인 구달은 동물을 의인화해서는 안 된다는 선배 동물학자들의 주장을 무시했습니다. 자신이 연구하던 침팬지에게 골리앗, 플로,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라는 식으로 일일이 이름을 붙여주었죠. 그리고 저마다의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영장류 연구의 신기원을 열었습니다.
제인 구달이 이런 태도를 취하게 된 데는 어린 시절 개를 키웠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인 구달이 키우던 개의 이름은 러스티였습니다. 러스티는 개도 눈앞에 없는 사물을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지요. 제인 구달이 2층에서 창 밖으로 공을 던집니다. 공은 더 이상 러스티의 눈에 보이지 않지요. 하지만 러스티는 1층으로 내려가고 집 밖으로 나가서 공을 집어 옵니다. 눈앞에 없는 것도 기억하고 생각하고 전략을 세웠다는 뜻이지요. 또 제인 구달이 부당하게 대접하면 화를 냈고 제인 구달을 웃기려고 들었으며 부끄러운 줄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키우던 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내 다양성입니다. 개라고 다 같은 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개에 대해서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종내 다양성으로 얘기된다 해도 개라는 종의 특징이 있으니까요. 개의 학명은 카니스 루푸스 파밀리아리스(Canis lupus familiaris)입니다. 회색늑대(Canis lupus)의 아종이지요. 개에겐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품종이 다르더라도 말입니다.
희한하게도 개들은 여러 개 가운데 같은 품종을 선호합니다. 품종이 다르면 다르게 대하죠.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말이에요. 사실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모습이 비슷한 사람들에게 더 친근함을 느끼잖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알지만 개는 자신의 모습을 모르는데도 어떻게 같은 품종에게 더 친근함을 느끼는 것일까요? 바로 자신에게서 나는 냄새를 알기 때문입니다.
개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은 코입니다. 사람 역시 코 기능이 좋아서 냄새를 1만 가지나 구분하지만 개는 무려 3만~10만 가지를 구분합니다. 게다가 민감성은 100만 배나 높지요. 냄새 분자가 아주 조금만 남아 있어도 맡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뇌에서 후각이 차지하는 부분이 큽니다. 사람은 뇌의 5%만 후각에 사용하는데 개는 뇌의 35%를 후각에 할애합니다(육식 공룡 티라노사우루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노력도 엄청 필요합니다. 개는 초당 5회 냄새를 들이마십니다. 가만히 두면 하루의 3분의 1을 킁킁거리는 데 쓰지요. 개는 뭐든지 코로 탐구하거든요. 냄새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주위 환경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놓치기도 합니다.
후각에 비해서 시각은 보잘것없습니다. 개가 6m 떨어진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을 사람은 20m 멀리서도 볼 수 있지요. 게다가 색맹은 아니지만 볼 수 있는 색깔이 다양하지 않습니다. 대략 적록색맹인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색깔을 구분합니다.
청각은 사람보다 뛰어납니다. 사람이 6m 떨어진 곳에서 듣는 소리를 개는 24m 떨어진 곳에서도 듣습니다. 사람의 가청주파수 범위가 2만Hz(헤르츠) 정도인데 개는 5만Hz에 달하니까 훨씬 다양한 소리를 듣는 셈이죠. 그런데 미각은 보잘것없습니다. 사람의 혀에는 맛 봉오리가 9000개나 있는데 개는 대략 1700개입니다. 개들이 먹이의 맛을 음미하지 않고 허겁지겁 삼키는 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지요.
동물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생물학자 마크 베코프는 감각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도 사람과 개가 서로에게 반려가 되는 데는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놀이입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공감, 협동, 정의, 공정, 도덕을 배웁니다. 강아지도 마찬가지죠. 찰스 다윈은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에서 “강아지, 새끼 고양이, 새끼 양 같은 어린 동물들이 아이들처럼 어울려 놀 때보다 행복한 모습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개들은 놀 때면 넋이 나간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놀이는 개나 사람 모두에게 중요합니다. 특히 어린 개체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개가 다른 개 또는 사람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생후 3주에서 12주 사이의 놀이가 특히 중요합니다. 어릴 때 놀면서 근력을 키우고 인지능력을 키우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죠. 반려견들은 좋은 생활환경인데도 늘 노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함께 사는 개에게 최고의 삶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개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개의 삶의 전부이지만 개는 우리 삶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개에게 놀이를 허락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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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정모는 서울시립과학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생화학을 전공하고 대학 교수를 거쳐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지냈다. <250만분의 1>,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 <내 방에서 콩나물 농사 짓기> 등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과학도서와 에세이 등 60여 권의 저서를 냈고 인기 강연자이자 칼럼니스트로도 맹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