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상실의 시대>에 쓰인 서문을 생각한다. “진짜와 가짜가 똑같이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습니다. 진실의 언어가 있었는가 하면, 거짓의 언어도 있었습니다. 깨끗함이 더러움이 되었고, 더러움이 깨끗함이 되었습니다.”
‘상실의 시대’를 보내고 마침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가짜와 거짓과 더러움이 아닌 진짜와 진실과 깨끗함의 시대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 모두가 새 대통령과 정부에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정권에서 문화만큼 무시당하고 상처입고 신음한 것도 없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문화를 내세워 문화를 초토화시켰다는 사실이다. 문화융성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 사유화, 이념적 편 가르기, 겉만 화려한 보여주기식 이벤트, 다분히 사적 취향에 편중된 지원으로 문화를 망가뜨렸다. 그 결과 문화에 가짜와 거짓과 더러움만 가득했다. 그러니 어떻게 문화가 숨을 쉴 수 있었겠는가.
문화는 진짜여야 한다. 문화는 진실이어야 한다. 문화는 깨끗해야 한다. 그래야 문화는 숨을 쉬고 자란다. 그런 문화를 만들고 즐길 때 문화는 생활이 되고 삶이 된다. 삶이 어렵다고 문화를 뒷전으로 미루면 안 된다. 당장은 먹고사는 일, 그것을 위해 직장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 시급하지만, 그렇다고 문화를 뒷전에 밀쳐두면 안 된다. 문화는 정신의 양식이고 복지이기 때문이다. 정신이 굶주리고 황폐한 삶은 또 다른 ‘가난’이다.
새 정부는 ‘문화가 숨 쉬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한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특히 문화는 ‘자유’ 속에서 숨을 쉰다. 숨을 쉬어야 창조성과 다양성이 나오고, 그 창조성과 다양성이 문화와 문화 향유를 풍요롭게 하고 나아가 국민과 국가의 품격을 높인다. 정부 역시 그것을 보장해야 한다. 말 그대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가장 기본적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여기에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가치 이외에 그 어떤 ‘거짓’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 문화는 문화여야 가치가 있다. 문화가 정치가 되고, 경제가 되고, 이념의 선전과 수단이 되면 그것은 이미 문화가 아니다. 지난 10년간 세상이 팍팍하다보니 모든 것을 돈으로만 계산하는 일이 많았다.
문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입만 열면 문화산업이고, 콘텐츠산업이고, 문화의 경제적 가치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문화가 중요한 경쟁력이고 전략산업임에는 틀림없다. 문화콘텐츠가 생산 유발 효과를 높이고, 고용을 늘리고, 나아가 저비용, 무공해 지식과 감성산업으로서 경제의 패러다임까지 바꾸고 있다. 문화가 ‘돈’인 시대다. 문화가 ‘돈’만 밝혀서는 안 되지만, 문화 없는 경제도 생각할 수 없다.
그 경제적 힘 역시 문화의 본질과 공정한 문화생태계에서 나온다. 지나친 경제논리와 불공정한 경제 속에서는 문화의 창의력과 다양성과 자유로움은 설 곳을 잃고, 문화를 썩게 만들고, 문화예술인과 국민을 문화로부터 소외시킨다. 국가의 문화정책과 예산이 개인의 천박한 취미생활과 비선 실세들의 주머니 챙겨주는 것으로 악용된다.
우리 사회의 오랜 적폐를 청산하고 갈등과 반목을 넘어 통합의 시대를 열어야 하는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문화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 감동, 문화 공정, 문화 향유, 문화 가치의 증대가 필요하다. 문화는 ‘감동’이어야 한다. 감동은 공감에서 나온다. 문화를 통한 공감이야말로 소통과 통합의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문화가 요란하다거나 크다고 그만큼의 감동이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 한 편을 수억 명이 보고 한마음으로 감동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다. ‘포켓몬고’처럼 게임이 증강현실과 결합해 세계의 청소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문화다. 꼭 그렇게 요란하지 않아도 된다. 한 권의 소설이 사람들에게 이웃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해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소통과 공감의 창(窓)은 없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편견도 없이 문화를 만드는 사람부터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창의력이 생기고, 작은 문화가 살아 숨 쉬고, 힘도 생긴다. 그들이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행복하게 열정을 다 바쳐 창작할 수 없다면 문화 역시 신음할 수밖에 없다.
문화 향유도 마찬가지다. 햇빛과 같아야 한다. 공동체, 즉 사회구성원 누구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문화야말로 삶의 활력이자 정신의 복지이기에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만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계층과 연령과 지역이 다르다고, 또 돈이 없어서 누릴 수 없다면 그 문화는 복지가 아니다. 문화를 배우는 것과 문화적 창의성 계발도 차별 없이 이뤄져야 한다.
좋은 문화는 국민 정체성과 자부심을 심어준다. 그것은 민족의 전통과 역사를 관통하는, 우리의 정신과 사상이 스며 있는 유적과 인물에서 나온다. 때문에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문화 DNA를 확인하고 그 가치와 생명력을 높이는 길이다. 문화는 시간의 산물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쌓이고 반복되고 잘 보존하지 않으면 문화는 단지 사라지고 마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사람’에 의해서 이뤄진다. 감동의 문화를 만드는 것도, 문화를 향유하면서 감동하고 공감하는 것도, 그것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도 사람이다. 문화예술 창작자는, 그들이 만든 뛰어난 사상이나 불후의 명작들을 통해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그 사랑으로 문화는 진보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든다.
그래서 문화 정책 역시 ‘사람’이 먼저다. 문화의 가치를 모르거나, 엉뚱한 것으로 착각하거나, 문화를 이념의 도구로 생각해 시대착오적인 블랙리스트나 만들고 있거나, 문화를 권력의 부산물쯤으로 여겨 전문성도 경험도 없는 문외한을 관리자로 여기저기 앉혀서는 ‘문화가 숨 쉬는 대한민국’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이념과 정파를 넘어 국민 모두의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문화의 저력을 보여준 프랑스 정부처럼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국민의 삶까지 풍요롭게 하는 정책을 올곧고 치밀하게 실천해나갈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기꺼이 함께하는 정부이기를 기대한다.

▶ 문화는 ‘감동’이어야 한다. 감동은 공감에서 나온다. 문화를 통한 공감이야말로 소통과 통합의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사진은 한국 전통공연 '배비장전'의 한 장면. ⓒ뉴시스
이대현 |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