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에는 ‘한옥마을’이라는 유명 여행지만 있는 게 아니다. 전주 시내를 발 아래 두고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산들이 있다. 전주 시가지 동쪽에는 기린봉(306m), 승암산(306m)이, 남동쪽에는 남고산(248m)이 있다. 모두 시가지를 보호하듯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는 형세며 실제로 산성이 있다. 따로따로 찾아가야 하지만 전주 여행길에 놓치면 절대 안 되는, 매력 만점 여행지다. 특히 남고산을 에두르고 있는 남고산성의 만경대, 억경대, 천경대에서는 전주 시가지가 파노라마 필름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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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장대 성곽. 전주 시가지를 확실하게 조망할 수 있다.
남고산은 옛날 고대산, 고달산으로 불렸던 고덕산(603m) 봉우리 중 하나다. 남고산 능선을 따라 남고산성(사적 제294호)이 있다. 남고산성은 견훤이 후백제를 세웠을 때 쌓은 성으로 전해온다. 견훤은 전주의 동서남북을 제압하기 위해 산성을 쌓고 동서남북에 각각 사찰을 지었다.
당시 남고산성은 ‘전주성’, ‘견훤고성’, ‘완산성’, ‘만경산성’, ‘고덕산성’ 등으로 불렸다. 성안에는 7개의 우물과 계곡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최영일이 글을 짓고 서예가 이삼만이 쓴 남고진사적비에 따르면, 조선 순조 12년(1812) 관찰사 박윤수가 산성을 고쳐 쌓고 남고산성이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보수공사를 할 당시 4개의 연못, 25개의 우물, 민가 100여 채가 성내에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는 성문과 장대 등 방어시설 터와 북문이 있었던 자리의 석축만 남아 있다.
산성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지만 동서학동 쪽이 일반적이다. 그곳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충경공 이정난(1529~1600)을 모신 충경사가 있다. 충경사를 지나 길을 따라 오르면 산성 벽화마을이다. 2011년 행정자치부가 실시한 ‘친환경 생활공간 조성’ 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산성마을이 벽화마을로 불리게 됐다. 전주 도심과 거리가 멀지 않음에도 온전한 전원 풍치다. 하천을 낀, 다소 가파른 도로를 따라 허름한 민가들이 터를 잡고 있다. 특히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친근한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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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옥마을 관광객의 필수 방문 코스인 전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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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남고사 경내, 오목대에서 바라본 한옥마을
충경사 -> 산성 벽화마을 -> 남고사 -> 서암문지 걷기 코스
마을길을 따라가다 남고산성으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성의 둘레는 약 5.3km인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길지 않은 성벽이지만 걷는 코스는 의외로 복잡한데, 버스 종점을 지나 서암문지에서 트레킹을 시작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 남고사 안내판을 따라 가파른 성곽 길을 올라가면 ‘만경대 암각서’를 만난다. 포은 정몽주 선생이 지었다는 ‘우국시’가 새겨진 큰 바위다. 정몽주는 왜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서 시를 지었을까? 이성계는 고려 우왕 6년(1380) 남원 운봉의 황산대첩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가는 길에 오목대에서 전주 이씨 종친을 모아 잔치를 베풀었다. 잔치에서 이성계는 한고조 유방이 불렀다는 ‘대풍가’를 불렀다. 대풍가를 듣던 정몽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처 말을 달려 만경대에 올라 시를 지었다.
천 길 높은 산에 비낀 돌길을 홀로 다다르니/가슴에는 시름이여/청산에 깊이 잠겨 맹세턴 부여국(夫餘國)은/누른 잎 휘휘 날려 백제성(百濟城)에 쌓였네/9월 바람은 높아 나그네 시름 깊고/백 년의 호탕한 기상 서생은 그르쳤네/하늘의 해는 기울고 뜬구름 마주치는데/하염없이 고개 돌려 옥경(玉京, 개경)만 바라보네
암각서는 영조 22년(1742)에 진장 김의수가 각자했다고 전해온다. 또 우국시 옆 암벽에는 순조 20년(1820)에 전라도 관찰사 이서구가 정몽주의 시를 보고 새긴 시도 있다지만 긴 세월 동안 글자가 마모되어 눈으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대신 사진이 걸려 있다.
암각서에서 50m만 오르면 만경대다. ‘만 가지 경치를 볼 수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전주가 한눈에 조망되는데 이 방향에서는 한옥마을 쪽보다는 완산구 칠봉이 더 선명하게 잡힌다. 만경대 지척으로 남고사가 있다. 남고사는 신라 문무왕 8년(668)에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보덕의 제자 명덕이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현재의 대웅전 오른쪽 앞 건물자리가 옛 절터 남고사지(전라북도 기념물 제72호)다. 예부터 해 질 녘에 들리는 남고사의 종소리를 ‘남고모종(南固暮鐘)’이라 하여 전주 8경의 하나로 꼽았다.
남고사를 비껴 산정으로 오르면 성벽이 이어지고 서포루대 ‘억경대’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는 전주 시가지를 만경대 쪽보다 더 확실하게 조망할 수 있다. 특히 한옥마을이 완벽하게 가늠된다. 연이어 성곽을 따라 동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북장대’다. 군사 훈련지였다는 북장대는 생각보다 터가 좁다. 성곽 길은 북포루대와 동문지를 지나 동포루대~동암문지~남암문지 천경대로 이어진다. 천경대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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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치명자산에서 바라본 전주 2 산성 벽화마을
성곽을 따라 내려오면 삼경사라는 개인 사찰이 있고 계곡 옆 약수터가 독특하다. 이렇게 하면 남고산성 한 바퀴를 온전하게 다 돌아보는 셈이다. 산이 야트막해 아이들을 동반해 걷기에도 좋다. 참고로 동문지 갈림길에서 내려서면 관성묘(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5호)와 서암문지로 이어진다. 아스팔트 포장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관성묘는 조선시대 사당으로 주왕묘 또는 관제묘라고도 한다. 걷기 시작점인 서암문지로 가는 길에도 나무 밑동에서 솟아나는 약수터와 황톳길, 걷기 좋은 코스가 따로 만들어져 있다.
여행 정보
트레킹 코스 차량 이동은 남고사까지 가능하다. 남고사에서 시작하면 훨씬 걷기가 수월하다. 그 외는 서암문지 -> 만경사 암각서 -> 서문지 -> 남고사 -> 억경대 -> 북장대 -> 북포루대 -> 동문지 순으로 걸으면 된다.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 3~4시간이면 가능하다.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전주 IC -> 반월교차로에서 시청 방면으로 난 26번 국도로 우회전 -> 조촌교차로에서 시청 방면(기린대교)으로 좌회전 -> 금암광장사거리에서 시의회 방면으로 좌회전 -> 태조로 -> 한옥마을
추천 별미집 전주비빔밥은 가족회관(063-284-2884), 콩나물해장국은 왱이집(063-287-6979)이 괜찮다. 남문시장에 있는 풍남집(063-282-4289)은 피순대가 유명하고, 동래분식(063-288-4607)은 깨죽, 팥죽을 잘한다. 국수가 먹고 싶다면 예촌면사무소(063-286-0909, 치자 넣은 웰빙 국수), 이연국수(063-242-0036)가 괜찮다. 그 외 동네 사람들에게 소문난 맛집으로는 웰빙 새알팥죽집(063-244-0765)이 있다. 보리밥을 덤으로 주고 진한 팥 국물과 겉절이 김치가 일미다. 건강식으로는 족보설렁탕(063-277-0004)과 백세곰탕(063-274-8855)이 괜찮다. 금성식당(063-253-3915)은 5000원짜리 백반이 맛있다. 간식은 한옥마을에 있는 외할머니 솜씨집(063-232-5804, 흑임자빙수, 팥죽)을 꼽을 수 있다. PNB풍년제과(063-285-6666, 견과류 넣은 초코파이)가 유명하고 안디옥 교회 뒤에 있는 찐빵집(063-274-0455)도 놓치면 아쉬운 곳이다. 또 전주는 ‘가맥집(가게맥주)’이 인기인데 전일슈퍼(063-284-0793)의 간장 소스가 독특하다. 막걸리 골목은 삼천동 일원, 서신동 등이 유명하다.
숙박 정보 한옥마을 내에는 한옥생활체험관(063-287-6300), 양사재(063-282-4959), 동락원 별관(063-282-2900) 등 숙박할 곳이 많다. 특히 학인당(063-284-9929)은 고종 때 인물인 인재 백낙중이 부친을 위해 지은 집으로 백범 김구 선생이 묵었다고 한다.
기타 정보 전주 한옥마을(최씨 종대, 최명희 문학관, 향교, 오목대, 한벽루 등)을 돌아보는 것은 기본이다. 또 한옥마을 근처 영화의 거리, 풍남문(보물 제308호), 전주객사(보물 제583호), 자만 벽화마을 등 볼거리가 많다. 그 외 견훤의 흔적을 더 찾아보려면 기린봉(271m)과 승암산(306m)을 찾으면 된다. 산정 밑에는 후백제왕 견훤이 37년간 통치했다는 왕궁지, 동고산성(전라북도 기념물 제44호), 동고사(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2호) 등의 유적지가 흩어져 있다. 치명자산 성지에 올라도 조망이 좋다.
문의 남고산성 063-284-9640
전주시 전통문화과 063-281-2167~7
이신화 |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