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있느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서울에 있으면 어떻고, 제주에 있으면 또 어떤가. 그보다는 그 속에 무엇을 담느냐가 더 중요하다. 문학은 그 나라의 정신이고, 그 민족의 자부심과 정서의 상징이다. 문학 속에는 역사의 아픔과 기쁨, 삶의 상처와 영광, 시대의 흐름과 상상력이 스며 있다.
문학관은 이 모든 것을 오롯이 담고 가꾸는 곳이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정부가 문학진흥법의 문학진흥기본계획에 따라 ‘국립한국문학관’을 지으려는 이유다. 2021년에 세워질 국립한국문학관은 450억 원을 들여 한국문학의 원본 자료 수집과 복원, 전시 및 문학사 연구와 교육 기능까지 갖춘, 말 그대로 총체적 상징이자 복합문화공간이다.
특정 시대나 장르의 한국문학관은 이미 몇 군데 있다. 서울 장충동과 경기 의왕시에는 한국현대문학관, 인천에 한국근대문학관, 그리고 전남 담양에는 한국가사문학관이 있다. 여기에 작가의 이름을 붙인 문학관까지 합치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국립한국문학관은 말 그대로 ‘국가’가 모든 시대와 장르, 작가를 아우르는 명실공히 한국문학의 상상력과 정신문화의 전당이다. 어쩌면 실제의 모습보다 ‘국립’이란 상징성이 문학에 대한 우리 국민의 사랑과 자부심을 심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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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한국문학관이 오는 2021년 서울 용산가족공원 내에 들어설 예정이다. ⓒ한국관광공사
그렇다면 국립한국문학관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 여기서도 저기서도 짓겠다고 난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처음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공모한 결과, 24개 시도가 몰려들었다. 정부예산으로 운영하는 ‘국립’이니 재정적 걱정도 없고, 공해시설이나 혐오시설이 아닌 품격 있는 문화시설로 지역 이미지도 높일 수 있으니 당연하다.
모두 나름대로 문학적 당위성과 역사적 이유가 있다. 서울 은평구는 시인 윤동주가 평양 시절 다닌 숭실중학교가 있고, 정지용과 최인훈이 살던 곳이다. 전북 군산은 소설가 채만식과 시인 고은을 배출했다. 대구에는 시인 이상화와 현진건이 있다. 춘천은 김유정의 고향인 데다 만해마을과 박인환문학관과 가깝다. 여기에 국가기관의 지방화에 의한 지역의 균형 발전과 격차 해소, 심지어 정치적 논리까지.
그러나 우리 문학의 자부심과 정서의 전당을 놓고 마치 공기업 경매하듯 분산하거나 정치적 입김으로 결정한다는 것이 과연 사리에 맞는 일일까. 이 문제에서만은 유일하게 문학 관련 다섯 단체가 한목소리를 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저마다 문학의 지향점은 다를지 몰라도 그것들이 함께 있어야 할 공간인 문학관에 대한 생각은 같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공간으로서의 상징성, 미래를 내다보는 확장성, 모든 국민이 향유할 수 있는 접근성,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국제 교류 가능성. 문인들이 바라는 문학관의 자리이다. 거기에 정치적 개입이나 지역 안배 논리가 끼어들면 안 된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 방식을 취소한 것은 이러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인 것 같다. 문학진흥정책위원회는 그 터를 서울 용산가족공원 국립중앙박물관 옆에 있는 문체부 소유 국유지로 정하였다. 그 터가 국립한국문학관이 들어서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의견을 모은 것이다. 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최종 결정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문인들이 말한 대표성, 상징성, 확장성, 국제 교류 가능성에 관광 산업적 측면까지 고려한다면 최적 후보지로 손색이 없다.
그곳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있고, 국립한글박물관이 있다. 문학관까지 들어선다면 우리의 역사와 유물, 말과 글, 상상력과 혼이 함께 어우러지는 명실상부한 정신문화의 보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상징성도 가진다. 용산이 어떤 곳인가. 고려시대에는 몽골군의 병참기지,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 병영, 광복 후에는 미군 주둔기지로 외세 침략과 굴욕, 상처의 땅이다. 그곳에 국립한국문학관이 들어선다면 환경과 생태공원에서 나아가 치유와 상생이라는 새로운 인문적 상상력의 보고가 될 것이라는 게 곽효환 시인의 말이다. 생태 복원과 더불어 문학이 전쟁과 파괴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어두운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게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용산가족공원까지 합쳐 그곳에 추진하려는, 자연과 문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생태역사문화공원’ 조성계획과도 어울린다. 문학관은 그 자리에 대규모 아파트나 위락시설, 일반 공공기관을 짓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더구나 생태공원과 문학관은 어떻게 보면 ‘하나’일 수 있다. 자연과 정신의 만남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자연 친화적, 인간 친화적 환경의 결합이다. 정부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용산 국가공원 조성과 궤를 함께하자는 것이다. 자연은 물론 온전히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좋지만, 거기에 인간의 아름다운 영혼과 감정이 함께할 때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된다. 인문학 상상력이 살아 있는 ‘시의 도시 서울 프로젝트’로 지하철과 공원, 도로 곳곳에 시가 흐르는 서울을 만들고 있는 서울시의 시정(市政)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더구나 용산에는 이미 우리에게 친숙하고 소중한 정신문화의 전당들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하고, 자연 속에서 우리의 창조적 상상력과 민족혼, 철학을 느낄 수 있는 정신문화의 성지. 한국을 찾은 세계인들까지 수도 한복판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공원)과 깊은 역사(중앙박물관), 자랑스러운 말과 글(한글박물관), 그 글로 남긴 뛰어난 얼과 정서(문학관)를 확인하고 느낀다면 이보다 더 좋은 문화관광의 메카가 있을까. 수많은 세계인이 그곳에서 대한민국 문화의 저력과 한류의 원천을 확인할 것이다.
중국과 일본, 타이완은 일찍이 수도에 국립문학관을 세워 문학적 자부심을 국민에게 심어주고, 세계인에게 자국의 문학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데 우리만 아직 없다. 우리 문학도 오랜 전통 속에서 깊이와 폭을 더하면서 맨부커상 수상을 넘어 노벨문학상까지 내다보고 있다. 이런 위상과 오랜 전통을 생각하면 우리 문학에 대한 무관심과 홀대가 부끄럽다. 늦었다. 문화가 국가경쟁력이며 그 원천이 문학이라면 국립문학관의 건립은 더더욱.
우리의 삶의 흔적을 간직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우리 문학의 향기까지 담은 용산공원이라면 한 번 더 가보고 싶다. 그곳에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만나보고 싶다.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