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관심이 높다. 문화에도 정의와 상식, 자유와 창의, 공정함과 공평함, 자존심이 되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화융성을 국정기조로까지 내세웠던 박근혜정부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과 치졸한 블랙리스트로 문화를 망가뜨렸기에 더욱 그렇다.
새 정부의 문화정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문화를 문화답게, 예술인을 사람답게, 지역과 이념과 계층, 세대와 빈부를 넘어 모든 국민이 문화를 향유하며 살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는 말만 요란했지 하나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창작의 창의성과 다양성 존중, 창작자에 대한 공정한 지원과 복지, 국민 모두가 평등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하겠다는 말이다.
이를 위한 새 정부의 구체적인 문화정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설계도는 지난 대선 공약에 나와 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대원칙으로 신뢰를 높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문화정책을 여섯 갈래로 나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먼저 문화·예술인의 창작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창작권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표현의 자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지원에도 차별이 없어야 한다. 당연히 블랙리스트 같은 부끄러운 적폐는 다시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새 정부는 두 가지를 선택했다. 하나는 문화·예술인이 안정적으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어떤 편견이나 편 가르기, 간섭 없이 오로지 창의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집행하는 것이다. 새 정부는 우선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안정적인 확보를 약속했다. 이것은 문화·예술인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물론 이 기금만으로 끝내겠다는 것은 아니다. 전시성 예산을 줄이는 대신 그것으로 예술인의 작업과 작품발표 공간을 확대하고, 청년예술인을 위한 창작 주거 인프라와 콘텐츠 제작자 인큐베이팅도 하겠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인의 문화 복지의 사각지대 해소도 약속했다. 지원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정신적·경제적·사회적 권리는 유네스코의 ‘예술가의 지위에 관한 권고’에도 나와 있다. 이를 아예 제도적으로 반영해 당당한 문화·예술인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 창작자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나라의 문화가 풍요로울 수 없다. 이를 위해 새 정부는 예술인들의 창조적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상부터 강화하겠다고 했다. 사진은 2016년 3월 10일 국립극단소극장판에서 공연된 연극 ‘한국인의 초상’의 한 장면.ⓒ뉴시스
창작자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문화가 풍요로울 수 없다.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고, 차별받지 않고 정당한 대우를 받을 때 문화선진국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새 정부는 예술인의 창조적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상부터 강화하겠다고 했다. 아직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하고, 경력과 활동 유형에 따른 표준 보수지급기준을 정하고, 저작권 수익분배기준도 제대로 만들고, 임금채권보장법에 준하는 ‘예술인 체불수입보장제도’로, 특히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열정 페이’까지 없앤다.
아울러 예술인 실업급여제도의 도입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일종의 실업보상제도인 ‘앵테르미탕(Intermittent)’과 같은 것이다. 프랑스는 직업의 특성상 비정규직 형태로 고용되거나 실업과 취업을 단속적으로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 영화·방송·공연 관련 배우·연주자·감독·스태프에게도 ‘불안정한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위한 실업보험제도’를 동등하게 적용해 직종별 최소 근로기간을 충족할 경우에는 공연이나 촬영이 없는 기간에 실업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이런 혜택조차도 받지 못하는, 한 달에 50만 원도 못 버는 연극인들이 아직도 대학로에는 많다.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해 죽음을 맞은 시나리오 작가의 비극이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이들을 위해 ‘예술인 복지금고’를 지원해 긴급생활자금은 물론 이들이 재난이나 상해를 당했을 때 긴급 지원하는 시스템도 구축한다.
이렇게 문화·예술인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대접받고, 자신의 권리를 찾고 국가가 다양한 창작을 위해 투명하고 차별 없는 지원을 하고,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면 분명 문화와 예술이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모든 국민이 그것을 함께 누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새 정부는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시대’를 선언했다.
문화·체육·관광 통합이용권의 사용처를 확대하고 지원금액도 현실화하겠다고 했다. 이와 함께 앞으로 문화와 체육, 관광에 쓴 돈은 세금을 감면해주는 제도까지 도입한다. 유휴공간을 활용해 지역마다 다양한 생활문화 환경, 이를테면 작은 미술관 작은 영화관을 만들고, 실버극장과 어르신 문화프로그램을 늘려 동네 가까이서 누구나 편하게 즐기는 문화예술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의 미래를 위한 교육도 생애맞춤형으로 다시 짠다.
당장 시급한 과제도 빼놓지 않았다. 추락한 국민 독서의 진흥과 출판문화의 활성화, 날로 열악해지는 출판 생태계의 건전한 복원을 위한 지원 정책과 제도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한다.
문화가 곧 경제인 시대에 건전한 문화산업 생태계는 경쟁력의 필수 요건이다. 이를 위해 공정한 문화콘텐츠 제작환경을 구축하고, 1인 창조기업과 중소제작사를 위한 펀드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 강화, 금융지원 확대, 완성보증제도 절차 간소화, 콘텐츠공제조합 재원 확대 등을 생각하고 있다.
대기업의 수직적 지배와 담합에 의한 독식과 문화상품의 유통정보시스템도 투명하게 바꾼다. 국정농단으로 박근혜정부에서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융합콘텐츠 발굴·육성과 R&D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한다. 대한민국 문화 자부심이자 국제 경쟁력인 한류의 지속성을 위한 새로운 전략, 문화산업을 통한 일자리 확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활용해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 매장문화 발굴에 대한 국가 지원을 확대하고, 문화재 재난방재시스템을 강화하며 지역의 근·현대 문화 재생사업을 더욱 활성화하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책무다.
새 정부의 문화정책은 잡다하게 떠벌리지 않아 오히려 더 믿음과 기대를 갖게 한다. 물론 정책과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지난 박근혜정부가 증명해 보이지 않았는가. 새 정부도 안다. 코드나 캠프 인사의 적폐를 더 이상 반복하지 말고, 전문성과 경험과 사명감을 가진 사람에게 문화정책을 맡겨야 한다는 것을. 새 정부는 그렇게 할 것이다.
이대현 |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