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인간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과일이다. 그래서 사과에 얽힌 일화는 매우 많다. 자연히 사과가 상징하는 의미도 풍부하고 다채롭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일반적으로 사과로 표현된다)를 따 먹어 낙원에서 추방되었다.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고 한다. 세잔은 무수한 사과 그림을 그려 서양미술의 진로를 바꿔놓았다. 인류는 사과 한 알로 역사가 바뀌는 경험을 여러 번 한 셈이다.
서양화가들은 이런 사과를 즐겨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서양미술에서 사과는 원죄와 타락을 상징하기도 하고, (특히 황금사과는) 불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구원자로서 예수의 소명을 암시하기도 하고 비너스의 존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경계와 주의를 나타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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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 메릿, ‘이브’, 1885, 캔버스에 유채, 76.8×109.2cm, 개인 소장
사과가 원죄와 타락을 상징하는 것은 당연히 아담과 이브의 행위와 연관된 것이다. 이브가 적극적으로 사과를 따는 장면이나 사과를 딴 뒤 이를 아담에게 건네주는 장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그려졌다. 이브 홀로 사과를 들고 유혹적인 포즈를 취하거나 사과 앞에서 고뇌하는 그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아담 홀로 사과에 혹해 있거나 사과를 들고 고뇌에 빠진 모습을 그린 사례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둘 다 죄인이기는 하지만, 보다 큰 책임이 이브에게 있다는 인식의 발로다. 이는 성차별적인 관념의 소산이거니와 여자는 남자에 비해 유혹에 약하다는 편견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물론 성경의 기술 자체가 그런 관념을 낳는 데 일조했다.
안나 메릿의 ‘이브’는 드물게 보는 여성 화가의 이브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 이브 에피소드에 담긴 성차별적 관념과 편견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여성으로서 화가는 이브를 단순히 어리석은 인간이나 유혹자로 표현하지 않았다. 고뇌하는 존재로 표현했다. 사과를 딴 뒤 한 입 베어 문 이브는 그것을 더 이상 먹지 못하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몸을 웅크린 채 괴로워하고 있다. 신의 말씀을 어긴 것에 대한 후회와 공포일 수도 있고,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자책일 수도 있다. 또는 사과를 따 먹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놓고 그리 했다고 처벌하려는 신에 대한 원망일 수도 있다.
솔직히 배부른 사람이 빵을 훔친 것과 사흘을 굶은 사람이 빵을 훔친 것을 같이 놓고 볼 수는 없다. 죄인을 정죄하기 이전에 우리는 주어진 상황과 조건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죄를 져도 권력자나 부자나 백인이나 남자가 받는 형벌에 비해 피지배자나 가난한 자나 유색인이나 여자가 받는 형벌이 더 큰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주어진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면 그 반대가 되어야 할 텐데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전통적으로 남성에 비해 억압과 차별, 부조리에 더 심하게 노출돼온 여성의 실존적 조건은 오히려 그들이 더 큰 법적·사회적 처벌을 받거나 더 큰 곤경에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메릿의 그림은 여성의 고통스러운 실존에 대한 진지한 고백처럼 다가온다.
그런 만큼 사과도 이런 주제의 그림이 일반적으로 나타내는 원죄와 타락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고통스러운 여성의 실존적 조건과 고뇌를 상징하는 것이 된다. 보편적인 서양회화의 상징적 의미와는 관련이 없지만, 작가 개인으로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띠며, 다른 미술가들 사이에서도 앞으로 충분히 보편화할 수 있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이번에는 불화를 의미하는 사과에 대해 알아보자. 이는 비너스와 관련이 있다. 사과가 불화를 의미하게 된 것은 그리스 신화의 한 유명한 에피소드 때문이다. 영웅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는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이 그 발단이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 모든 신이 초대를 받았는데, 불화의 신 에리스만 초대를 받지 못했다. 화가 난 에리스는 황금사과 하나를 신들 사이에 던졌는데, 여기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귀가 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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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두아르 비송, ‘미의 세 여신’, 1899, 캔버스에 유채, 97×130cm, 개인 소장
이 사과를 놓고 미모에 자신 있던 헤라 여신과 아테나 여신, 아프로디테, 곧 비너스 여신이 서로 자기 것이라며 다퉜다. 제우스는 분란을 중재하기 위해 목동이자 스파르타의 왕자인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겼고, 파리스는 승리의 영광을 비너스에게 안겨주었다. 바로 유명한 파리스의 심판 이야기다. 이 일로 말미암아 결국 트로이 전쟁까지 일어나게 되는데, 어쨌거나 다툼의 원인이 된 사과는 그렇게 해서 불화의 상징이 되었다. 또 미의 여신 비너스의 상징이 되었다.
‘파리스의 심판’은 워낙 인기 있는 주제였기에 이를 주제로 한 작품은 숫자를 헤아리기 어렵다. 루벤스를 비롯해 루카스 크라나흐, 클로드 로랭, 루카 조르다노, 안톤 라파엘 멩스 등 유명한 대가들은 이 신화 주제를 죄다 손댔다. 이 일화에 기대어 비너스는 곧잘 혼자 있어도 사과를 든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는데, 유명한 그림으로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아뇰로 브론치노의 ‘미와 사랑의 알레고리’, 19세기 영국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베누스 베르티코르디아’ 등이 있다.
사과가 비너스를 나타내는 표지물이 되다 보니 비너스를 쫓아다니는 수행원들도 때로 사과를 든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카리테스, 곧 미의 세 여신이다. 비너스는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는 스타답게 카리테스뿐 아니라 계절의 여신 호라이, 청춘의 여신 헤베, 조화의 여신 하르모니아 등을 곧잘 대동했다. 이들은 비너스를 꾸미고 치장하는 일을 주로 했는데, 그들 또한 따로 비너스의 사과를 들고 등장할 만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존재들이다. 에두아르 비송의 ‘미의 세 여신’에서 사과와 함께 그려진 카리테스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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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이주헌은 미술 기자를 거쳐 학고재 관장을 지냈다.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내 마음속의 그림>,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 <이주헌의 아트카페>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