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적 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 테그마크는 이에 대해 “수학적 구조는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원래 존재한다”고 말한다. 수학적 구조는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시간과 공간이 수학 구조 안에 존재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의 수학적 우주 가설에는 무한대는 제외된다. ‘계산 가능한 우주’만 포함된다.
2009년에 나온 〈평행우주라는 미친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는가〉란 책이 있다. 독일 과학 저술가 둘이 함께 썼다. ‘평행우주’라는 게 뭔지도 잘 모르는데 상식이 되었다고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평행우주는 우리 우주 말고 다른 우주가 보이지 않는 곳에 수없이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 우주와 나란히 있다고 해서 평행우주라고 한다. ‘평행우주(parallel world)’ 말고 ‘다중우주(multiverse)’라는 표현이 있다. 물리학자가 쓴 다중우주 책으로는 브라이언 그린의 〈멀티 유니버스〉(2011)가 좋다. 브라이언 그린은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의 초끈이론 학자. 〈멀티 유니버스〉와 함께 〈엘리건트 유니버스〉, 〈우주의 구조〉는 그의 우주론 3부작이다.
미국 MIT 물리학과 교수인 맥스 테그마크는 브라이언 그린(1963년생)보다 약간 젊은 물리학자(1967년생)다. 그는 2013년에 내놓은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에서 자유분방한 우주론을 펼친다. 다중우주보다 훨씬 더 나아가 우주라는 물리적 실체가 수학적 실체라고 주장한다. 그의 우주론은 ‘수학적 우주 가설’이라고 불린다.
우주가 수학적 실체이고 수학 구조라니, 좀 들어본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수 세기 전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는 “자연은 수학의 언어로 쓰인 책”이라는 놀라운 말을 한 바 있다(〈분석자〉 1623년에 쓴 저서). 루마니아 태생인 이스라엘-미국 천체물리학자 마리오 리비오는 〈신은 수학자인가?〉(2009)라는 제목의 뛰어난 책을 쓴 바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테그마크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신이 우주를 만들 때 수학을 도구로 사용했다는 게 아니라, 우주가 수학 구조 그 자체라는 말이다. 자와 컴퍼스로 만든 게 아니라 수학책에 나오는 온갖 구조가 우주의 실체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얘기일까? 헛소리 아닌가? 그가 1998년 말 ‘수학적 우주론’이라는 논문을 내놓았을 때, 실제로 몇몇 물리학자는 테그마크의 논문이 진지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과학이 아니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테그마크가 이러한 상황에서 택한 전략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전략이다. 당시만 해도 30대 초반의 젊은 학자였으니 열정과 경력 관리 사이에서 조신해야 했다. 그는 “학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무슨 연구를 하느냐고 물어보면 지킬 박사 모드를 취해 많은 측정과 숫자 등이 동원되는 우주론 주류 문제들을 연구한다고 대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 않으면 그는 하이드 씨의 모드로 돌아가 비밀리에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전략’은 잘 통했다. 학자로 이름을 얻었고, 대학에서 종신재직권(tenure)을 얻었다. 그는 ‘수학적 우주론’ 논문을 쓰고 15년이 지나서 이 책을 내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내가 과학계에 빚을 졌고, 그것을 갚을 때가 되었다. 종신재직권을 받은 지 충분히 오래된 지금 더 이상 핑계를 댈 수가 없다. 나는 이제 하이드 씨를 벽장에서 나오게 해 (주류 물리학의 영역과 그 밖을 구분하는) 경계를 조금이나마 확장하는 역할을 할, 내 후배 연구자에 대한 도덕적 의무가 있음을 느낀다.”
맥스 테그마크의 ‘수학적 우주론’이 일반 독자에게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브라이언 그린은 〈멀티 유니버스〉에서 9가지 다중우주론을 소개하며 ‘궁극적 우주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수학적 우주 가설’을 소개한 바 있다. 이에 관한 브라이언 그린의 의견은 “테그마크의 관점에 다소 회의적”이었다. 그는 부정적인 이유도 함께 밝혔다. “나는 임의의 다중우주이론을 떠올릴 때, 그 우주를 만들어내는 상상 가능한 과정, 예를 들면 인플라톤장의 요동, 브레인 세계의 충돌, 양자 터널, 슈뢰딩거 방정식을 따라 변하는 확률 파동이 존재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나는 다중우주를 낳는 일련의 사건들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테그마크의) 궁극적 다중우주는 그런 과정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는 현재까지 나와 있는 다중우주, 그러니까 브라이언 그린이 아홉 가지라고 말한 걸 네 종류로 줄여 말한다. 네 단계 위계구조다. 우주가 네 단계로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테그마크의 언어로 하면 1레벨 다중우주, 2레벨 다중우주, 3레벨 다중우주, 4레벨 다중우주다. 1레벨 다중우주론은 ‘영원한 급팽창에 따른 다중우주’이고, 2레벨 다중우주론은 ‘초끈 이론의 풍경에 따른 다중우주론’이며, 3레벨 다중우주는 ‘영자역학의 다(多)세계 해석에 근거한 다중우주’이다. 테그마크가 제안한 ‘수학적 우주 가설’이 마지막 4레벨 다중우주다.
맥스 테그마크는 4레벨 다중우주를 말하기 위해 표준우주론부터 시작한다. 이어 1레벨에서 2레벨, 3레벨 다중우주론도 상세히 설명한다. 책은 우주론의 완성판인 듯하다. 테그마크는 이 네 단계 다중우주론을 설명하기 위해 입자물리학, 급팽창이론, 양자물리학, 양자역학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의식 연구와 우리 우주의 마지막 순간은 어떤지도 말한다. 인공지능 등 인류의 가깝고 먼 미래를 위협하는 요인들에 대한 검토도 한다.
영어판 제목이 ‘수학적 우주(Our Mathematical Universe)’인 이 책은 찬사를 많이 받았다. 내가 읽어보니 정보가 가득하고 재미가 있다. 난이도도 약간 있다. 600쪽 분량의 책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촘촘히 읽으면 된다.
4레벨 다중우주론은 궁극적 실체가 수학으로 묘사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수학이라고 했다. “그 어떤 양상뿐 아니라 당신을 포함해서 그 모든 것이 수학이다”라고 테그마크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거대한 수학적 대상, 즉 정십이면체보다 더 정교하고, 아마도 칼라비-야우 다양체, 텐서 다발, 힐베르트 공간처럼 겁나는 이름이 붙어 있으며 오늘날의 가장 발달된 물리학 이론에 등장하는 것들보다 더 복잡한 수학적 대상 안에 살고 있다.”
테그마크에 따르면 사람이 현실, 즉 실체를 인식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주관적 실체, 합의된 실체, 외적 실체이다. 주관적 실체는 인간이 자신의 머릿속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합의된 실체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외적 실체는 있는 그대로다. 색을 가지고 이를 구분해 말할 수 있다. 색맹이 있는 사람은 오렌지색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의 ‘주관적 실체’는 오렌지색이 아니다. 색맹이 없는,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는 ‘합의된 실체’는 오렌지색이다. 오렌지색의 ‘외적 실체’는 600나노미터 파장을 가진 전자기파이다. 색이 사라진다. 색은 인간이란 동물이 주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지 실체의 속성이 아니다.
수학적 구조에는 수없이 많은 기하학적 구조가 있다. 수학자는 새로운 수학적 구조를 발견해가고 있다. 수학적 구조를 구성하는 공간인, 민코프스키 공간, 리만 공간, 힐베르트 공간, 바나흐 공간, 하우스도르프 공간이 그 일부다. 우리는 3차원 공간이 유클리드 공간이라고 생각했으나 아인슈타인이 그게 아니라고 말해줬다. 1905년 특수상대성 이론을 내놓으면서 시간을 네 번째 차원이라고 말한 민코프스키 공간에 우리가 산다고 했으며, 1910년에 내놓은 일반상대성 이론에서는 휘어질 수 있는 공간인 리만 공간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자역학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는 힐베르트 양자 공간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어떤 모양인지는 모른다고 테그마크는 말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정합적인 양자 중력 모델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내가 이 우주에 버젓이 살고 있는데, 나도 수학적 구조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테그마크는 그렇다고 말한다. 대단히 복잡한,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일 뿐, 수학적 구조라고 한다. 살아서 움직이는데 수학적 구조라고?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내가 움직이는데? 시간의 흐름은 착각이고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는 동결된 물질일 뿐이다.
이 ‘수학적 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 테그마크는 이에 대해 “수학적 구조는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원래 존재한다”고 말한다. 수학적 구조는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시간과 공간이 수학 구조 안에 존재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의 수학적 우주 가설에는 무한대는 제외된다. ‘계산 가능한 우주’만 포함된다.
양자우주론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테그마크의 ‘수학적 우주론’은 내게는 이해하기 먼 우주론이다. 이 세상에 이런 상상력을 발휘하는 천재가 있구나 할 뿐이다. 그걸 안다고 해도 내 삶이 달라지는 건 아니므로. 하지만 수학적 우주 가설을 전해 듣는 가운데 들은 많은 것은 살과 피가 되었다.
최준석│주간조선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