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오락은 시간의 산물이다. 영속성을 갖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어릴 때 가졌던 문화적·오락적 경험은 어른이 돼서도 되살아난다. 그것을 단순히 잠깐의 ‘추억’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영국필름연구소(BFI)는 문화적 취향은 대략 14세 전후에 결정된다고 했다. 그 시절 어떤 문화예술을 접했느냐, 무엇을 가지고 놀았느냐에 따라 그것이 문화적 취향이 된다는 것이다.
키덜트(kidult)는 아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애어른을 뜻한다. 여기에 문화가 붙었다. 어린 시절에 즐기던 완구나 오락물을 어른이 돼서도 찾는다는 것이다. 키덜트 문화의 시작은 이처럼 1980~1990년대 완구를 최근에 다시 모으는 어른들이 늘어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지금은 당당하게 즐기는 문화가 됐고, 그에 따라 시장도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방송 오락 프로그램에서 유명 개그맨들이 즐기는 프라모델이나 레고, 드론이 그 예다. 성격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30~40대가 유년기에 보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완구로 만든 기동전사건담 시리즈의 프라모델이나 레고를 재수집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전동 킥보드나 드론 같은 과거 자동조종 미니카나 킥보드를 연상시키면서 첨단 테크놀로지를 반영한 새로운 변종들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키덜트 문화에는 부정적인 시선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키덜트 문화는 일본 ‘오타쿠’의 어설픈 모방, 어른들의 철없고 유치한 취미, 심지어 피터팬 콤플렉스라고 조롱받았다. ‘왜색 문화’란 비판도 들어야만 했다. 특히 완구는 ‘어린이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철없는 어른’이란 핀잔을 듣기 쉬워 드러내놓고 키덜트 문화를 즐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덜트 문화는 우리에게도 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키덜트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2015년에는 156% 성장을 기록했다. 2016년에는 완구시장에서 유일하게 성장세를 유지한 영역도 ‘키덜트’이다. 올해 어린이날에도 아이러니하게도 키덜트 완구 판매가 두 배로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다소 누그러졌지만 세계적 선풍을 일으킨 증강현실게임인 ‘포켓몬 GO’ 열풍 역시 키덜트 문화 중 하나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더 많이 즐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20~30대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포켓몬’이라는 캐릭터가 바로 20~30대도 유년 시절 즐겨봤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키덜트 문화가 별난 어른들의 추억과 수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출산과 1인가구의 증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온 첨단기술과 맞물려 새로운 캐릭터와 게임, 완구산업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키덜트 문화의 향유층이 1980~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30~40대 남성이다. 이들이 경제력을 가지게 되면서 최근 유행하는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인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현상과 맞물려 어린 시절 못다 누린 문화, 오락을 다시 찾게 됐다.
이들은 단순히 키덜트 상품을 추억과 향수의 완구로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가치 소비를 지향한다. 상품 구입에 가치를 부여하고 고려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얼마나 큰 효용을 주는지와 함께 앞으로 시장에서의 가치 또한 중요시 여긴다. 아무리 고가라도 자신에게 더 큰 가치가 있다면, 나아가 투자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서슴없이 구매한다. 한정판이 더 인기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키덜트 문화는 그 자체로 머물지 않고 패스트푸드점의 마케팅, 편의점의 상품 결합, 의류의 캐릭터 활용 등으로 다른 산업의 성장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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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덜트 문화는 일본만이 가지는 특이하고 괴상한 어른들의 취미가 아니다. 전 세계적인 하나의 문화이고 산업이다. 사진은 건프라(건담 프라모델). ⓒ뉴시스
그러나 키덜트 문화가 하나의 문화, 문화산업, 동반성장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키덜트 상품을 일방적 문화상품으로만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전동킥보드와 드론이다. 문화적 시각으로 보면 키덜트 상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용 목적에 따라서는 아닐 수도 있다. 전동킥보드와 드론에 이용 조건(면허증, 신고), 제한(사생활 침해 금지)을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키덜트 완구의 경우 국내 생산이 아직 미미해 대부분 외국 제품이다. 물론 출발이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4차 산업혁명과 결합한 첨단테크놀로지 상품까지도 그렇다. 때문에 터무니없이 고가인 상품도 있다. 그것이 ‘키덜트 문화는 사치’란 인식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산업적으로 키덜트 문화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술 변형으로 오락의 영역 확대와 침체된 완구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그러자면 국민의 의식 변화도 필요하다. 먼저 키덜트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부터 규정을 지키는 자세로 이미지를 악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한강시민공원 이용자들 대다수가 보행에 위험을 느낀다면 전동킥보드나 호버 보드 같은 새로운 이동 완구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것이다.
제품 자체의 안전문제도 보다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무분별한 해외 직구(직접 구입)로 자칫 국내 소비자가 피해를 보거나, 제품 결함으로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밀수나 불법 유통 제품은 정품이라는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 이에 따른 대책도 더 꼼꼼히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과 관련이 있는 만큼 국산화도 서둘러야 한다.
우리 국민도 이제는 그것이 어디에서 왔건, 어떤 이유로 생겼건 간에 키덜트 문화를 하나의 당당한 문화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키덜트 문화는 이제 단순한 수집 문화가 아닌 하나의 현상인 동시에 다른 분야와 융합을 통한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키덜트 문화는 전 세계적인 하나의 문화이고 산업이다. 일본은 그것으로 이미 세계 시장을 선점했다. 성인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캐릭터들과 그것을 변형한 다양한 완구, 증강현실 등 최첨단 ICT 기술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게임이나 상품 덕분이다. 우리도 서둘러야 한다. 우리에게도 고유한 키덜트 문화가 있으니까.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