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다. 은퇴 후 고향 마을에 도서관을 짓는 것이다. ‘도서관’이라고 하니 무슨 대단한 계획 같지만 그건 아니다. 서른 평 정도의 아담하고 예쁜 건물을 지어 작은 마을도서관으로 꾸미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이를 위한 두 가지 ‘행운’이 있다. 하나는 책이다. 그동안 6000여 권을 모았다. 책과 가까이해온 오랜 기자생활이 많은 도움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이사를 다니면서 때론 집이 좁아, 때론 읽어서 더 필요 없다고 생각해 버린 그만큼의책들이 너무 아깝다.
또 하나는 고향에 할아버지가 살던 집이다. 사람이 살지 않아 지금은 흔적조차 없지만 집터는 그대로 있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작은 도서관 하나는 충분히 지을 수 있는 공간이다.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작은 산자락 밑에 위치해 도서관이 자리하기에도 적당하다. 경북 북부지방에 자리 잡은 고향은 면소재지도 아니면서 아직도 100가구 가까이 되는 제법 큰 마을이다. 고풍스러운 기와집도 여럿 남아 있다. 물론 그곳도 여느 시골과 다르지 않게 노인들이 많다. 정부에서 ‘장수마을’로지정할 만큼 공기 좋고 주변 풍광도 빼어나다. 퇴계 후손인 진성 이씨 집성촌으로 마을 어른들에게는 아직도 유림(儒林)의 풍모가 남아 있다.
작은 도서관, 세대와 시대 아우르는
마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어디 그뿐인가. 얼마 전에는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동안 텅 빈 공간으로 남아 있던 교회가 리모델링을 거쳐 새로 문을 열었다. 어린 시절 그곳에서크리스마스 때마다 구호물자로 따뜻한 겨울옷을 한벌씩 받아 입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렇게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곳, 우리의 정신과 서양의 종교가 오랫동안 함께해온 곳에 그것들을 모두 감싸 안을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 어찌 보면 옛서당 같기도 하고, 큰 사랑방 같기도 한. 그곳에 동화부터 고전에 이르기까지 가지고 있는 책들을 꽂아놓고, 해마다 새로 출간된 좋은 책들도 조금씩 보태고, 주변 마을 사람들까지 자유롭게 찾아와 책을 읽고, 빌려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값이 부담스러운, 또연로해 멀리 읍내에 있는 도서관까지 다녀오기가 쉽지 않은 어른들에게는 반가운 일일 것이다.
도서관이 책이나 빌려주고, 읽는 곳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그래서 그곳 역시 책만 있는 도서관에 머물지 않고, 그곳에서 바둑도 두고, 가끔은 마당에 스크린을 설치해 영화도 상영하고, 일주일에 한 번쯤은 마을 어른들이모여 차 한잔 마시며 고전 강독과 서예도 하고,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우리의 전통문화와 예술과 예절도 경험하게 해주고. 그야말로 일석사조, 다양하고 세대와 시대를 아우르는 마을의 작은 복합문화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작은 향교’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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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8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집옥재에서 한 시민이 책을 읽고 있다. 1891년 건립된 집옥재는 고종 황제의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됐던 곳으로 이날부터 일반에 개방됐다. ⓒ뉴스1
이런 작은 마을도서관이 별나거나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전국에 5500개가 넘는다. 대도시라고 작은 도서관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다. 서울에만 970여 개나 된다. 여기에 ‘책 읽는 대한민국’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노력한 결과1000개 넘는 공공도서관이 갖춰져 있다. 이들까지합하면 웬만한 마을이나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도 도서관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금도 여기저기에 작은 도서관들이 문을 열고 있다. 색깔과 모습도 제각각이다. 가지고 있는 책도 다르고, 운영방식도 다르고, 프로그램도 다르다. 지역과 마을의 환경,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따라 특색과 개성을 살렸다.
이제는 어엿한 문학의 한 갈래가 된 만화책을 소파에 눕거나 기대어 읽을 수 있고, 만화작가를 초빙해 웹툰 창작교실을 열고 있는 작은 도서관도 있다. 지난 7월에 문을 연 서울 서대문구구립 ‘이팝꽃향기 작은 도서관’은 유아, 어린이, 성인을 위한 1300여 권의 책이 있는 18m² 면적의 카페 같은 꼬마도서관으로, 일요일에는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활용한다. 제주의 외진 마을 봉개동에 문을 연 ‘봉아름 작은 도서관’은 마을 젊은이들이 힙을 합쳐 만들었다. 부모의 관심에서 벗어난 청소년들에게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 향유의 기회가 없는 주민들에게 그공간을 제공하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갖가지 문화 강좌도 한다. 노인들이 많은 동네 도서관에서는 치매 예방과 극복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독서 양극화 현상 줄이고
마을 공동체 소통과 화합 역할
우리의 역사적 공간과 결합한 작은 도서관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고종 황제의 서재이자 외국 사신 접견 장소로 사용하던 경복궁의 ‘집옥재’가 도서관으로 문을 열었다. 조선시대 역사, 문화 관련 도서와 왕실자료의 영인본들, 또해외에 알려진 한국의 우수문학 번역작품 등 2000여 권의 자료를 갖춰 독서, 문화, 관광을 결합한 새로운 관광콘텐츠가 됐다. 앞으로 서원, 향교, 고택 등이 저마다의색깔로 작은 도서관이 된다면 국민들의 삶도, 마음도 더풍요롭고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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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강원 원주시 태장동 작은 도서관에서 밴드 꿈&들이 어르신들을 위한 재 능기부 공연인 ‘사랑지기 효 음악회’ 를 열고 있는 모습. ⓒ뉴스1
이렇게 다양한 작은 도서관들 모두가 국민 독서의 뿌리, 마을 공동체와 문화 활동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사익만을 앞세운 부실한 자료와 프로그램으로 지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곳도 있고, 사회 공헌 차원으로 운영하면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도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작은 도서관들이 우리 국민의 전반적인 책읽기 문화를 자극하고, 나이가 들수록 책으로부터 멀어지는 ‘독서의 양극화’ 현상을 줄일 수있다는 사실이다. 문화공간으로서 마을 공동체의 소통과 화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책도 문화도 가까이 있지 않으면 손에 잡거나 즐기지 않는다. 특히 노인들에게는.
동네마다 어김없이 노인정이 있다. 그러나 그곳에 가보라. 무엇이 있고, 노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보다는 차라리 그들의 도서관이 필요하다. 아니면 그곳에 형식적으로 책장 하나에 아무도 읽지 않는 낡은 책 몇십 권 꽂아놓지 말고 서재라도 만들어놓든가. 고령화 시대에는 육체도 건강해야 하지만, 갈수록 늘어가는 치매가 말해주듯 정신 건강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책 읽는 시간만이 그것을 지켜줄 것이다. 훗날 꿈이 이뤄진다면 나의 작은 도서관도 그들에게 그 시간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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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