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폴게티박물관에 미술 거래상이 찾아와 기원전 6세기에 만들어졌다는 그리스 조각상 하나를 보여줬다. 그 조각상은 키가 족히 2m는 되는 벌거벗은 청년이 왼쪽 발을 살짝 앞으로 내민 쿠로스상이었다. 거래상은 1000만 달러를 요구했다. 박물관 측은 작품이 진품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고 1년 넘게 전자현미경, 질량 분석기 등 첨단 장비를 동원해 대리석상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리고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직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전임 관장이 조각상을 볼 기회가 생겼다. 그는 첫눈에 조각상이 ‘새것’임을 알아챘다. 또 다른 전문가인 아테네고고학협회 회장도 조각상을 본 순간 ‘온몸에 오한’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추가 조사 결과 조각상은 로마의 위조 공장에서 만든 위조품이었다. 전문가들의 오랜 감각과 직관, 직감이 위조품을 알아낸 것이다.
우리도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다’라는 느낌을 간혹 경험한다.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안다. 그냥 나도 모르게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도 우리는 직감적 느낌을 무시하고 이성에 판단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무릎을 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 그때 그 느낌을 믿었어야 했는데, 역시 예감은 틀리지 않아!"라고 말한다.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았던 비이성적인 측면에 포커스를 맞춘다. 저자는 직감, 무의식, 감정 영역의 무한한 가능성을 얘기한다. 또한 이성이 우리가 믿는 것만큼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고 말하며 직감에 따르는 것이 오히려 좋은 선택의 결과를 보장한다는 논쟁적 연구 결과들을 보여준다.
"과학이 오랜 세월 우리의 비이성적 측면을 무시했다는 것은 결국 과학이 우리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과학은 우리를 단편적으로밖에 모른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다. 우리의 자아상은 엄청나게 다양해졌고 변했다. 여기에 학자들이 인간의 비이성적인 힘을 발견했다."
알고 보면 감정의 힘은 크다. 감정은 상황에 맞는 생각과 판단을 하도록 인도한다. 감정은 또한 창의적 사고의 엔진과도 같다. 감정의 변화는 새로운 시선과 인식을 만든다. 창의성은 어떤 것을 다르게 보고 접근하는 것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예술가나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감정과 싸우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 중 일부는 광기나 우울증으로까지 치닫는 심한 감정 기복에 시달린다. 감정의 기복은 현실을 늘 다르게, 새롭게 보는 그들의 재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 현대인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모든 과정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창의적 사고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성의 잔소리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더는 이성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지 말고 억눌렸던 비이성을 활용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우리 안의 숨어 있던 탁월한 능력, 비이성적 능력에 주목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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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느낌이 답이다
바스 카스트 지음 |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48쪽 | 1만4000원
글· 윤융근(위클리 공감 기자) 201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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