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기부 한파 속에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얼굴 없는 기부 천사들이 있어 감동적이라는 미담을 전하고 있다. 12월 2일 KBS 9시뉴스에서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사랑의 우체통에서 500만 원이 들어 있는 현금 봉투가 발견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이 순간에도 전국 주민센터에 쌀 포대를 놓고 사라지는 익명의 기부자도 있을 듯하다.
2014년 영국의 자선구호재단(CAF)이 발표한 세계기부지수(World Giving Index)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부 지수는 전세계 135개 국가 중 60위였으며, 2015년에는 전 세계 145개국가 중 64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GDP 13위)에 비해 경제 규모가 작은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보다 기부 지수가 낮다. 마크 저커버그나 빌게이츠 같은 거액 기부자가 주목받는 상황에서 기부 천사의 소식은 기부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기부와 나눔 정책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1970년대 ‘이웃돕기 성금’ 이웃 사랑과 기부 관심 유발
2000년대 소득공제, 손비 인정… 기부 장려
1951년 제정된 ‘기부금품 모집 금지법’은기부금과 관련한 우리나라 최초의 법이다. 이 법은 무질서한 기부금품 강요로부터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기부문화를 제약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런 연유로 정부의 복지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던 형편에서 우리나라의 사회복지기관과 사회복지시설에서는 1960년대 말까지 130여 개 선진국 원조기관과 단체로부터 시설 운영비와 사업비를 지원받아 운영했다.
1970년대 시작된 ‘이웃돕기 성금’ 모금 활동은 이웃 사랑과 기부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1980~1990년 한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자 대부분의 원조단체는 후원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사회복지기관들은 원조단체의 지원금을 대체할 국내 후원금을 개발하려 노력했고, 정부에서도 기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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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그동안 저축한 저금통을 모아 기부하고 있다. ⓒ중랑구청 제공
1990년대 초반까지는 기업의 기부 활동이 민간 기부의 대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1995년 12월에는 기부금품의 무분별한 모집 규제와 모집 및 사용의 투명성을 제고하자는 취지로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을 제정했다. 1998년 7월에는 모금 활동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고 민간 사회복지 서비스 영역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사회복지공동모금법’이 발효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설립되고 16개의 지방 공동모금회(독립적 사회복지법인)가 출범했다. ‘사랑의 열매’로 널리 알려진 이 기관은 비영리조직의 사업 수행 능력을 키우는 동시에 정부의 기부정책을 견인해 설립된 그해에 214억 원을 모금하며비약적으로 성장해왔다. 2010년 이후에는 해마다 10% 이상 모금액이 증가하면서 2014년에는 설립 당시보다 약 19배 성장한 4714억원의 모금액을 달성하며 기부 문화 형성을 선도했다.
2000년대 접어들어서는 성숙한 기부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모집 장려와 사용에 대한 사후 관리를 더 중시했다. 2000년에는 ‘아름다운 재단’이 창립됐다. 2005년에는 자원봉사활동 기본법이 제정됐고, 2007년 5월에는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을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로 개정했다. 정부에서는 기부금 모집을 장려하기 위해 조세정책을 손질했다. 기부금이 민간에서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성격을 지녀 정부가 해당 분야에 지원하면 효과가 더 커질 수 있어 기부금 단체에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내면 기부자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천재지변으로 발생한 이재민을 돕기 위한 구호금품 등 공익성이 높은 기부금은법정기부금으로 분류해 소득공제 또는 손비 인정 한도(개인은 100%, 법인 50%)를 높게 인정하고, 사회복지시설 등에 대한 기부금은 지정기부금으로 분류해 법정기부금보다는 낮은 수준(개인30%, 법인 10%)으로 소득공제나 손비를 인정해줬다.
정부의 이런 정책이 효과를 본 덕분인지 세제 혜택을 받은 기부금 규모는 1999년의 2조9000억 원에서 2013년에는 12조4800억 원으로 4.3배나 증가했다. 개인 기부의 경우에는 1999년 8500억 원에서 2013년 7조8300억 원으로 9배 이상 급속히 증가했다. 동시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같은 비영리단체의 기부금 모집액도 급속히 증가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모금액은 2005년 2147억 원에서 2014년에는 5883억 원으로 274% 증가했고, 월드비전의 모금액도 2005년의 340억 원에서 2014년에는 1800억 원으로 529%나 증가했다.
물적 나눔, 인적 나눔, 생명 나눔 등 다양화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자 정부 차원에서나눔 문화를 확산하려고 노력했다. 2009년에는 공정한 사회를 국정 운영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고 15개핵심 주제에서 사회적 책임 구현을 위한 나눔 문화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확산을 강조했다.
2010년 이후에는 재능기부(Talent Donation)가 기부 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여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인식돼온 기존의 기부 개념을 남녀노소 관계없이, 부의 규모를 불문하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2012년에는 보건복지부에서 ‘나눔기본법’을 입법 예고함으로써 기부보다 한 차원 높은 ‘나눔’의 개념이 제시됐다. 나눔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법안에서는 나눔의 개념을 물적, 인적, 생명 나눔으로 정의했다. 물적 나눔은 기부의 목적으로 모은 물품과 금품 또는 재해 구호 의연금품 및 기부식품이고, 인적 나눔은 자원봉사 활동이며, 생명 나눔은 헌혈과 인체 조직의 기증이다. 이제 ‘나눔=기부+자원봉사+생명 나눔’이라는 공식을 바탕으로 기부보다 위에 있는 나눔 개념이 보편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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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자선냄비에 시민들이 성금을 기부하고 있다. ⓒ뉴스112
어려운 때의 구휼이나 기부는 조선시대에도 부자들에게 요구되는 책무였다.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땅을 사지 마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10대를 거치는 300년 동안 만석꾼을 유지했던 경주 최부잣집의 가훈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필요한 덕목이다. 로마 시대의 지도층도 헌신과 기부를 강조하는 ‘프로보노(Pro Bono, 공익을 위해)’를 중시했다. 이는 서구에서 사회적 약자에게 전문지식과 기술을 무보수로 제공하는 관습으로 뿌리내렸다. 최근에는 자선과 박애를 뜻하는 필란트로피(Philanthropy)라는 말도 자주 쓰이는데, 좋은 일을 위해 부와 재능을 나누고 실천하자는 뜻이다. 그 용어가 무엇이든 나눌수록 기쁨이 커진다는 생각을 실행함으로써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가 더 올라가게 해야겠다.
글· 김병희(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PR학회 회장) 2016.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