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계절이다. 대학 캠퍼스에서도, 도심 광장에서도, 바닷가에서도, 강변에서도, 공원에서도, 고궁에서도, 작은 동네 골목에서도. 전국 방방곡곡이 잔치판이다. 싱그러운 봄을 맞아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 다양한 예술과 역사, 갖가지 공연과 음식과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다. 살고 있는 동네를 나서면 곧바로 축제가 열리는 곳을 발견할 수 있다.
4월의 꽃 축제만 해도 그렇다. 일찌감치 벚꽃 축제로 전국이 떠들썩하더니 이어 철쭉, 튤립, 장미 축제가 뒤를 이었다. 꽃이 지자 먹거리 축제로 전국의 공원과 거리가 음식 냄새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지역 특산물 축제와 문화 축제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당장 음성에서는 품바축제, 춘천에서는 마임축제가 한창이고, 한산 모시문화제와 강릉 단오제, 부천 국제영화제도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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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시에서 올라온 공연팀원들이 서울 인사동에서 풍기 인삼축제와 선비문화축제 등 지역 축제를 알리기 위해 옛 장원급제 행렬을 재현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역 축제는 1980년대만 해도 50개 남짓에 그쳤다. 그러던 것이 해마다 경쟁적으로 늘어 지금은 1000개가 넘는다. 여기에 작은 동네 축제까지 합치면 1년에 2000개가 넘는다. 그야말로 축제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축제가 많아진 것은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부터다. 각 지자체장들이 지역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 문화를 발굴·계승하고, 지역주민들에게 문화와 여가생활을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앞장서 축제를 만들었다.
잔치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축제를 통해 즐거움도 만끽하고, 경제적 이익도 얻고, 독특한 지역 전통문화와 역사, 관광자원까지 되살린다면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지역 특산물을 홍보하고, 지역의 이미지까지 높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콘텐츠가 어디 있으랴.
지역 축제 1년에 2000개 이상
비슷한 주제와 성격 지닌 축제 난무
그러나 폭발적인 양적 증가에 비해 그 속을 들여다보면 헛헛하거나 비슷비슷한 먹고 놀자판, 아니면 지자체장의 자기 업적 과시나 홍보를 위한 전시성 이벤트가 많다. 심지어 그냥 야외 음식점들의 장사 같은 축제도 한둘이 아니다.
예부터 축제, 특히 향토 축제는 그 지방의 문화와 역사, 사람과 자연이 엮어내는 제의적 성격을 지닌다. 그러므로 그 지역의 특성이 배어 있어야 하고, 단순히 놀자판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지녀야 한다. 그런 것이 없는 축제에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국민 세금을 쏟아 붓는 일은 낭비다. 축제는 사람들과 어우러져야 한다. 지역 문화와 역사, 사람과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축제, 지역주민이 만들고 참여하지 않은 잔치는 공허하다.
그런데 지금 열리고 있는 많은 지역 축제들이 그렇다. 비슷한 주제, 성격, 내용의 축제가 여기저기서 개최되고 있다. 심지어 같은 이름의 축제도 한둘이 아니다. 이름에 어울리는 프로그램은 흉내내기로 하고, 전국 어느 축제에 가서도 볼 수 있는 공연,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마당을 채우고 있다.
마치 아직도 우리나라 관광지 어디를 가도 똑같은 기념상품을 파는 것처럼. 물론 이름만 들어도 축제의 성격, 지역의 역사와 문화, 특산물을 떠올리고 무엇을 보고 즐길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축제들도 있다. 화순 고인돌문화축제, 하동 야생차문화축제, 영주 한국선비문화축제, 춘천 마임축제, 예천 곤충축제, 진주 유등축제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많은 축제들이 여전히 지역의 독특한 색깔을 갖지 못하거나 일회성, 전시성으로 끝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지자체의 축제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축제를 단순히 노는 것으로 생각하다 보니 외형적인 화려함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지역 특유의 문화나 정서가 없다. 지역 축제 대부분이 지자체와 주민이 함께 고민하고 준비하는 공동체적 성격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편의성을 위해 지역 축제를 전문 기획사에 맡기는 것에서 오는 결과이기도 하다. 축제 프로그램이 성격과 지역에 관계없이 모두 비슷비슷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단순한 '놀이'가 아닌
지역 고유의 전통 깃든 '문화' 콘텐츠 필요
축제가 단순한 '놀이'에서 벗어나 지역 고유의 민속성과 전통, 생활풍속을 살리는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창조적 아이디어와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기획사에 맡길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주체가 돼야 한다. 여기에 단순히 지역 특산물 판매장만 만들어놓을 것이 아니라, 맥주의 고장인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처럼 장소와 특산물을 활용한 축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문화와 경제의 '일석이조' 효과를 얻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보다 지자체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축제는 지자체의 홍보 도구도, 먹고 놀자판도 아니다. 잔치판만 벌인다고 지역주민이 좋아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착각도 버려야 한다. 주민들을 주인공이 아닌 구경꾼으로 만드는, 주민들을 소외시키는 축제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 없고 흥이 없는 축제는 축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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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를 체험해볼 수 있는 전남 화순 고인돌문화축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지역 축제들을 보라. 대부분 주민들이 신명이 나서 참여한 것들이다. 역사에서 보듯 예부터 우리 민족은 축제를 즐기고 사랑했다.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에서 보듯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의에서도 백성들이 지역 토산물을 바치면서 밤새도록 춤과 노래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국가의 번영을 빌었다. 말 그대로 축(축하)과 제(제사)였다.
오늘의 지역 축제도 그래야 한다. 그대로 재현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모습과 색깔은 달라도 그 역사적 전통과 가치, 뜻을 창조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돼야 한다. '축(祝)'도, '제(祭)'도 우리 모두가 참여를 통해 즐기고, 느끼고, 간직해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과연 거기에 가면 무엇을 만나고, 어떤 것을 즐길 수 있을까. 이름만 듣고도 가슴 설레며 가보고 싶은 축제, 일본의 지방 축제 '마쓰리'처럼 작지만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풍습을 살린 지역 축제를 더 많이 만나고 싶다.
글 ·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