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식목일을 맞이해 전국 각지에서 나무 심기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194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을 제정하며 식목일을 공휴일로 지정했지만, 1960년 들어 3월 15일을 '사방(砂防)의 날'로 대체 지정하며 식목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했다가 1961년 다시 식목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공휴일로 환원했다. 그 후 1990년 들어 다시 공휴일 제외 논의가 있었지만 그대로 유지하다가 2006년부터 식목일이 기념일로 변경돼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식목일의 상징성에서 알 수 있듯이 산림녹화정책은 1970년대 초반에 뿌리박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엔조차도 1969년 "산림의 황폐도가 고질적이어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고 평가했던 우리나라가 지금 세계 4대 산림 강국으로 발돋움하도록 만든 산림정책의 뿌리를 찾아가보자.

▶ 편입식목일을 맞아 나무를 심는 어린이들의 모습.
우리 조상들은 조선시대부터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해왔다. 그래서 전체 산림의 나무 총량이 현재의 5%, 민둥산 비율이 50%에 이를 정도로 국토의 대부분이 민둥산이나 다름없었다. 정부는 1960년대 초부터 난방용 석탄을 도입하고 산림녹화정책을 펼쳤지만 재정과 행정력이 부족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제3공화국 정부는 1965년을 '일하는 해'로 정하고 나무 심기에 많은 예산을 편성했다. 지금도 청년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듯이, 당시에는 민둥산에 나무 심기로 청년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른바 '치산녹화(治山綠化)'라는 거시적 정책이 시작됐다. 그해 6월 농림부 산림국이 '산림부'로 승격됐고 1967년 1월 산림청이 탄생했다. 산림청은 나무 심기와 사방(砂防 : 산이나 강가에서 모래나 흙이 비바람에 씻겨 떠내려가는 것을 막음)공사 사업을 전국에 걸쳐 추진했다.
1973년 1월 12일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추진해 온 국토를 푸르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에 따라 1973년 산림청을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산하로 편입시키고 치산녹화사업을 내무부에서 주관했다.
'산. 산. 산. 나무. 나무. 나무.' 산림청에서는 새롭게 만든 이 표어를 현수막에 새겨넣어 전국 곳곳에 내걸었고,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대형 아치도 세웠다. 정부는 사방사업과 함께 땔감용 연료림(燃料林)도 조성했다.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권 지역에 땔감 나무의 반입을 금지하고 무연탄 보급을 확대하는 정책을 폈다. 농촌 지역에서는 땔감 나무를 최소화하도록 부엌 아궁이를 개량했다.
정부는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1973년부터 1981년까지 실시하겠다는 방향을 세웠다. 이 계획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기 녹화를 속성수와 장기수 비율을 7:3으로 하고 국민 식수의 편의를 위해 10대 수종을 표준화한다. 마을 주민의 소득에 보탬을 주면서 협동심을 배양하기 위해 현사시나무(버드나뭇과), 이태리포플러 등 양묘를 전량 마을 주민들이 협동해 생산한다. 또 주민들에게 소득이 돌아가도록 하는 마을 양묘를 도입한다. '절대 보호지'에 산불이 발생해 100ha 이상의 임야가 불타면 시장·군수를 면직한다."

▶ 1973년만 해도 나무가 거의 없던 오대산 월정사 일대가 산림 녹화로 푸르러졌다. 1973년 사진(왼쪽)과 2014년 사진.
1973~2013년 약 65억 그루 심어
산림 복구 성공한 세계 유일 국가
1973년부터 시작한 10개년 계획은 6년 만인 1978년에 완료됐다. 나무 심기 사업에 참여한 작업 인부나 마을 주민들도 모두 열심히 참여했다. 산 밑에서 좋은 흙을 짊어지고 올라가 나무 심을 자리에 뿌리는 수고스러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무의 뿌리가 잘 내리도록 갖은 정성을 다했다. 그러자 황량한 민둥산이 어느덧 살아나기 시작했다.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사업에는 전국 3만4000여 단위 마을 전체가 참여했다. 108만ha에 나무를 심었고, 420만ha의 육림(숲을 가꾸는 일)을 조성했으며, 4만2000ha의 사방사업을 마무리했다. 산림경영 지도를 바탕으로 30억 그루의 양묘를 생산해 조림했다. 1978년에는 정부 지원으로 312명의 임업기술지도원(현 산림경영지도원)이 일선 산림조합에 배치됐다.
제1차 10개년 계획을 4년이나 앞당긴 산림청은 1980년대를 앞두고 제2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1979~1988)을 시작했다. 1980년 1월 14일 전면 개정된 '산림법' 제10조에서는 산림조합과 산림조합중앙회에 임업기술지도원의 배치를 의무화했다. 임업기술과 산림경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산림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기간 동안 100만ha에 나무를 심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은 민둥산의 나라에서 서서히 산림 강국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유엔은 1982년 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에서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 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라고 평가했다. 전 세계 환경정책의 대부로 통하는 레스터 브라운은 저서 〈플랜B 2.0〉에서 "한국의 산림녹화는 세계적 성공작"이라고 격찬했다.
1988년부터는 산지자원화계획(제3차 산림기본계획, 1988~1997)이 시행됐다. 이후 2005년 8월 4일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산림법'에서 분리·제정됨에 따라 정부가 산림경영 지도에 대해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그리고 '임업기술지도원'에서 '산림경영지도원'으로 전문가 명칭도 바꿨다. 2009년부터는 협업 경영 지도업무를 산림경영지도원으로 일원화했다. 2012년부터는 자유무역협정(FTA) 등 시장 개방 확대에 따른 국산 임산물의 경쟁력을 향상하는 문제가 더욱 중요해졌다. 조림사업이 계속 추진돼 1973년부터 2013년까지 심은 나무가 64억9100만 그루(270만ha)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4위 산림 강국이 됐다. 경제성장과 산림녹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국립공원과 그린벨트 지정, 양묘사업, 유실수 재배를 통한 농가 소득 증대, 독림가 지원제도, 새마을운동을 통한 대체연료 개발과 보급, 심은 묘목이 안착되기까지 돌보는 교차 검목 제도, 내무부의 행정력과 치안력을 동원한 관리 같은 체계적인 산림녹화정책이 민둥산을 사라지게 한 원동력이 됐다.
이제는 '생명의 숲'이다. '산. 산. 산. 나무. 나무. 나무.' 지금 시점에서도 손색이 없는 이 슬로건으로 숲 가꾸기 캠페인을 다시 한 번 전개했으면 싶다.
글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PR학회 회장) 2016.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