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와 포켓몬고. 알파고가 이세돌을 4-1로 기세 좋게 꺾었을 때, 우리는 놀라움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하며 인공지능(AI)이 몰고 올 대변화에 공포심마저 느꼈다. 누구는 ‘알파고’의 존재를 인간의 1000년 역사를 단번에 허무는 ‘괴물’이라고까지 했다.
실제로 이미 AI는 의료, 자동차 분야를 넘어 법조계와언론의 영역에서까지 인간 대신, 인간보다 수천 배는 빠르고 정확하고 편리한 존재로 확산되고 있다. 인간의 절대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바둑의 세계에도 거침없이 들어왔고, 인간의 마지막 영역인 감성과 창조 능력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던진 AI의 충격이 채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포켓몬고가 나타났다. 포켓몬고가 만들어낸, 실제 현실에 가상적인 사물이나 정보를 합성해 마치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처럼 보이게 만드는 증강현실(AR)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만 정식 출시됐지만 하루 수천만 명이 포켓몬고에 매달리는 상황이다.
포켓몬고에 열중한 나머지 각종 사고가 일어나자 급기야 일본 닌텐도사가 특별 주의사항을 발표했다. 올림픽 기간 중 판매를 시작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관광객과 선수들이 길거리에서 포켓몬고에 열중하면서 스마트폰을 강탈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도를 제공하지 않아 출시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도 속초 등 일부 지역에서 해당 애플리케이션이 실행되면서 인파가 몰리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관광·건강 분야 등 산업적 확장성
과몰입에 따른 부작용도 수반
포켓몬고가 활용한 증강현실이 사람들을 다른 차원의 문화 세상으로 이끌고 있다. 나아가 증강현실이 도로의 신호등이나 표지판도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지도 모른다. 당장 포켓몬고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알고리즘의 특성상 포켓몬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이제 가만히 앉아서 스마트폰만 조작하지 않는다. 실제 현장을 가야 하고 좀 더 희귀하고강력한 포켓몬을 얻기 위해서는 더 먼 곳으로 이동해야 하므로 관광과 건강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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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29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축제 ‘굿게임쇼 코리아 2015’ 행사장 전경. ⓒ연합
포켓몬 같은 익숙하고 인기 있는 캐릭터를 활용한 애플리케이션이 더 많이 나오고 그것이 다양한 현장과 결합한다면 이는 단순한 흥미 차원을 넘어 관광과 건강 증진, 나아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인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공지능도, 증강현실의 포켓몬고도 그 기반은 컴퓨터이고, 출발은 게임이라는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게임은 다른 문화나 오락과 상이한 측면이 있다. 모든 문화가 산업과 결합하면 거의 무조건으로 긍정적인 효과와 이익을 낸다. 그러나 게임은 그것이 크든 작든 마이너스 효과를 동시에 안고 있다. ‘중독성’ 때문이다. 그래서 게임을 이야기할 때마다 산업성과 부작용은 서로를 과장하고 서로 충돌한다. 게임의 개발과 생산을 강조하는 산업은 게임이 가진 경제성, 경제적 파급 효과, 시장의 규모, 콘텐츠의 활용성 등에 초점을 맞춘다. 당연히 기본적으로는 어떤 규제에도 반대한다. 반면 게임의 부작용과 피해를 강조하는 교육계와 가정에서는 과몰입에 따른 병리현상을 먼저 걱정한다.
그러니 소비에 대한 규제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규제의 당위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통계를 내고,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얼마인지 이야기한다.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심야게임을 금지하는 ‘셧다운제’도 그래서 나왔다. 여기에는 게임은 ‘도박’과 비슷하고, 인간은 그것에 가장 유혹당하기 쉬우며, 한번 빠지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실제 게임에 이 같은 속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게임이 도박과 결합하는 사례도 있다.
▶게임 이용자가 강원 속초시의 한 해변에서 포켓몬고 게임을 즐기는 모습. ⓒ동아DB
어쩌면 이 둘 사이에서 게임은 본래의 가치나 역할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문화로서의 게임’이다. 알파고와포켓몬고에서 보듯 이제 게임은 단순한, 잘못하면 과몰입에 빠지는 오락의 차원을 넘어섰다. 게임이야말로 21세기 디지털 세대의 가장 익숙한 문화와 여가의 양식이며, 창의적 상상력과 기술로 영역 확장 가능성이 무한한 미래이다. 게임은 인간의 사고를 확장하고 활동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현실과 게임이 하나로 결합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 이를 아날로그 세대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임 문화 진흥계획
문화로서의 게임 육성 첫걸음
인식을 바꾸고 게임을 문화 양식으로 접근할 때, 이분법이아닌 게임 문화의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게임 생태계도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산업의 발전이 오로지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융성과 연결되고, 게임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문화가 있는 삶’이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게임은 인문과 예술과 기술이 자유롭게 만나고,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다양한 문화로 나아갈 것이다.
정부가 게임 문화 진흥계획 앞에 ‘소통과 공감’이란 말을 붙인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게임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인식 차를 극복하고 ‘함께하는 게임 문화’를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진흥계획이 생각한 무엇보다 게임에 대한 가치 인식을 서로 공유하고, 게임의 즐거움을 통해 인간의 삶에 변할 수 없는 보편적 사회문화적 가치들을 배우고 확장하고, 그것들을 선순환하는 게임 문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만이 게임산업도, 캐릭터와 스토리의 창의력과 상상력도, 인재 발굴과 양성도, 소비의 즐거움과 교육적 기능도 커질 것이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K-팝이 그랬듯 우리의 게임도 ‘또 하나의 한류’가 되어 세계의 문화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놀이는 인간의 본능이다. 또 놀이만큼 인간을 아름답고 열정적으로 만드는 것도 없다. 문화와 예술도 놀이에서 시작됐다. 그 놀이가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쾌락만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공동선과 소중한 가치를 담고 있다면 공자의 말처럼 그것을 즐기면서 배우고 익히고 행하는 것이야말로 최고가 아닌가. 알파고와 포켓몬고가 이미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공자도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고는 했지만.
글 ·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