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鄕校). 고려와 조선시대에 유학을 교육하기 위해 지방에 설립한 국립 고등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각 지방 관아에서 관리하고, 운영을 위해 나라에서 땅(학전)도 주었다. 여기에서 공부한 지방 학생들이 성균관으로 진학하고 과거시험도 보았다.
교육 기능만 있었던 게 아니다. 문화, 특히 유교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다. 공자를 모시는 석전례는 물론 사직제, 기우제 등도 향교에서 지냈다. 여기에 정치적 성향도 지니고 있었다. 이곳에서 유학 교육을 이수해야 성균관에 입학하고, 나중에 대과 시험을 통과해 중앙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었다.
시대에 따라 그 기능과 역할, 중요도의 차이는 있지만, 향교는 유교 국가인 조선시대의 지방 교육과 정신문화를 이끌었고, 사회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자신들의 과거 교육제도를 자랑하는 일본도 우리나라의 서당과 지방 관아의 향교를 보고는 주눅이 들었다.
유교를 건국 이념, 정신문화의 축으로 삼은 조선시대에 향교가 제대로 설치된 것은 3대 태종 때였다. 아버지 태조의 교육정책과 정신문화정책을 이어받은 그는 향교에서의 교육 성과를 수령의 평가기준으로 삼기까지 했다. 그 수가 무려 360개였다. 후기에는 그 기능이 약화되어 사립 교육기관인 서원에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향교는 조선시대 교육과 지방 인재 양성, 대동정신의 함양과 풍속의 교화(敎化) 등 유교 이념에 입각한 이상사회 건설에 굳건한 토대가 됐다.
향교, 우리 민족 문화·정신교육의 장
유림들 향교 통해 사회 정화와 예절교육에 앞장
우리 민족의 정신과 교육을 말살하려는 일제가 향교를 그냥 둘 리 없었다. 1910년 강제 합병 직후 교육기관 자격을 박탈하고, 문묘에 제사를 지내는 기능만 허용하면서 향교는 이름만 남아 있게 했다. 그러나 향교는 결코 죽지 않았다. 광복과 더불어 다시 살아났다. 단순한 과거 유물로 남아 있지 않고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정신과 교육의 장으로서 유교의 가르침과 지역사회의 교화와 화합을 선도하고 있다. 나아가 청소년들에게는 인성과 예의, 고전과 정신교육의 현장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에 향교는 몇 개일까. 234개다. 조선시대만큼 아니지만 적지 않은 수다. 성균관(대학)과 함께 향교를 되살린 주역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유교의 정신과 가치를 이어가려는 유림이었다. 그들은 광복이 되자 심산 김창숙 선생을 필두로 해 성균관유도회를 창립했고, 향교의 부활에 앞장섰다. 군사정권에 의해 한때 해체의 비극을 맞기도 했지만, 성균관유도회는 포기하지 않고 전국 16개 시·도본부와 290여 개의 지부를 조직하고 향교를 통해 전통문화 발전, 충효사상 선양, 예의생활 실천 등 사회 정화와 예절교육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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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 강원 동해시 동해향교 대성전에서 지역 유림이 참석한 가운데 공자의 학문과 덕행, 사상을 존중하기 위해 거행하는 의식인 ‘춘기 석전대제’가 열리고 있다. ⓒ뉴스1
2016년은 유림들에게도 뜻깊다. 성균관유도회 창립 70주년으로 새로운 변화와 혁신, 미래 한국 유교의 70년을 설계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독립 청원 운동인 파리장서운동을 펼친 137위 유림 선현들의 선비정신을 기리는 추모 제례를 지냈고, 전국 지부에서 2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전국유림총화대회를 치렀다. ‘총화’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유도회 역시 갈등과 반목으로 얼룩진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조선시대 사색당파로 나눠 서로 상대를 비난만 한 것처럼. 그래서 창립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온전히 갖춘 유림, 그리고 단체로 변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시대 사회와 국민에게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전국 유림이 한마음으로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총화대회 취지문에서 그들은 앞으로 유도회의 70년을 시작하면서 대한민국 사회의 ‘목탁’을 자임했다. 은자(隱者)에서 걸어 나와 당파를 초월해 우리 사회 상류층의 윤리적, 도덕적 타락에 대해 목소리 높여 엄중히 경고하고, 동시에 든 사람, 난사람보다 ‘된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도록 앞장서 계몽하겠다고 했다.
유교의 이념을 실천하는 것으로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정직하게 수행하고, 경제인들은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되는 생산 활동을 거짓 없이 수행하고, 법조인들에게는 법과 제도를 치우침 없이 균등하게 성실히 수행하라고 요구했다.
나아가 우리 민족의 대동사회 실현을 위해 체제 유지 차원에서 힘겨루기를 지양하고 이산가족의 아픔과 민족의 한을 씻어내고 민족 동질성 회복으로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민간 교류를 적극적으로 확대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무자비한 테러와 전쟁의 공포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인종 갈등과 종교 분쟁을 벌이고 있는 지역에 인류 공존동생을 위한 평화방안까지 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인의예지는 세대와 계층 갈등 극복하는 길
현대에 더욱 절실한 유교 정신문화의 소중함
‘우리나라에 유림이 아직도 있나요?’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홍콩 누아르 ‘영웅본색’에서 어느 배우가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하듯, 유림의 도도 오래전 그랬다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공자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다. 누구보다 앞서 유림들 스스로 수기치인(修己治人)하고, 인(仁)을 실천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를 밝게 만드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말처럼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마음의 목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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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6일 유생 복장을 갖춘 일반인들이 경북 영주시 소수서원 강학당에서 유교 경전인 <소학> 과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다. ⓒ동아DB
유교의 지나친 형식주의, 시대착오적인 현실 인식 등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유교를 정신적 사대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유교의 가르침인 ‘인의예지(仁義禮智)’야말로 물질만능주의, 극단적 이기주의, 세대와 계층 갈등을 극복하는 길이고,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정신문화임에 틀림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좀 더 행복한 공동체가 되려면, 유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대동사회로 가려면, 인간의 가장 보편적이고 아름다운 정신과 덕행을 잃지 말아야 한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맑은 정신이 들어 있지 않은 문화, 올바르고 선한 가치를 담지 않은 포장만 요란한 문화는 삶을 풍요롭게 하기보다 공허하고 피폐하게 만든다. 세상이 탁해질수록 정신문화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하고 역사의 가르침이 더 가슴에 와 닿는 이유다.
우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유교의 정신문화가 남아 있고, 그것을 이어가는 유림과 향교가 여전히 살아 있다. 전국 향교에서 아이들이 뜻도 잘 모르면서 〈소학〉을 외우는 소리가 낭랑하다. 문화의 저력과 창의성, 물질보다는 정신적 풍요로움, ‘나’가 아닌 ‘우리’에 대한 소중함도 어쩌면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