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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중학생 아들과 아빠의 대화를 우연히 듣고 나서 깜짝 놀랐다. 국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아빠가 아들에게 제헌절이 어떤 날인지 물었다. “제사 지내는 날인가?” 하고 대답하는 아들에게 아빠는 어이없어 하면서 꿀밤을 먹였다. 언론 보도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다. MBN의 한 기자는 제헌절 날짜를 아는 학생은 30명 중 18명이었고, 제헌절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학생은 겨우 5명뿐이었다고 사뭇 흥분하며 보도했다(2013년 7월 17일).
그럴 수도 있지만 무지나 망각의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듯하다. 제헌절은 1948년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 공포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1960~70년대에는 제헌절을 기념하는 광고까지 하면서 헌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회나 헌법재판소에서 광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기업의 이름으로 광고하면서 제헌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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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품, 한일개발, 현대자동차의 공동 광고 ‘제31회 제헌절’ 편(경향신문 1979년 7월 17일)을 보자. 태극기가 휘날리는 장면을 시각 이미지로 제시하고 “부강하고 건전한 복지국가를 건설하여 한민족의 긍지를 내외에 떨치자”라는 헤드라인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보디카피에서는 7월 17일이 제헌국회의 심의를 거쳐 헌법을 제정·공포한 날이라고 설명하며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는 역사상 최초의 민주 헌법을 갖게 된 이 뜻깊은 날을 맞아 헌법 정신을 올바로 유지·발전시키는 길이 무엇인가를 새삼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 각자가 헌법의 기본 정신을 받들고 이를 생활에 옮김으로써 자주국방과 경제번영, 그리고 민족의 긍지를 높이는 데 힘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 마지않습니다.” 사뭇 비장감마저 느껴지는 보디카피에서는 제헌절의 숭고한 가치를 그 시절에 얼마나 역설했는지 엿볼 수 있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다. 문자 그대로 제헌국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는 것이었다. 숱한 논의를 거쳐 제정된 헌법은 7월 17일 오전 10시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장 이승만이 서명한 후 공포되었다. 정부는 헌법에서 명시하는 헌법 정신을 기리고 헌법이 공포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7월 17일을 제헌절로 명명하고 국경일로 정했다. 이를 기리기 위해 헌법 공포 기념우표도 발행했다(위 사진). 시간이 흘러 올해로 벌써 66돌 제헌절을 맞았지만, 2008년부터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제외되면서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도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는 듯하다.
국회를 중심으로 제헌절 공식 기념행사를 하겠지만, 제헌절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예컨대 제헌절 노래 가사를 공모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정인보 작사·박태준 작곡의 제헌절 노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민족의 얼이 느껴지는 숭고한 내용이다. 그렇지만 노래 가사가 너무 예스러운 표현이라 스마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비 구름 바람 거느리고 / 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 / 삼백 예순 남은 일이 / 하늘 뜻 그대로였다 / 삼천만 한결같이 지킬 언약 이루니 / 옛 길에 새 걸음으로 발 맞추리라 / 이날은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다 /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
가사의 어느 소절에도 헌법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다. 곡은 그대로 두고 헌법 정신을 준수하자는 취지에 맞춰 가사만 바꿔보면 안 될까? 그리하여 내년 67돌 제헌절 때는 새로운 가사의 노래를 발표함으로써 제헌절의 소중한 가치를 인식하는 국민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글·김병희(한국PR학회 회장·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201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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