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7월 8~13일 기간 동안 인도와 싱가포르 국빈방문을 통해 이들 국가와 경제, 인적 교류, 외교안보 등 분야에서 협력 수준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2017년 11월 아세안 순방 계기에 공표된 우리 정부의 핵심 외교정책인 신남방정책은 초기 구상단계를 넘어서 이제 본격적인 실행단계에 진입했다.
아세안 지역 국가들 및 인도를 핵심 협력 파트너로 상정하고 있는 신남방정책의 목표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부상하는 아세안·인도와 경제협력의 수준과 범위를 획기적으로 강화해서 정체돼 있는 우리 경제의 성장기반을 확보하고 이들 국가와 아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번영의 축을 구축한다. 둘째, 북한과 한반도 및 4강 중심으로 추진돼온 우리의 외교 지평을 아세안과 인도로 확대해 우리의 외교적 공간 및 외교협력 의제를 보다 확대한다. 셋째, 아세안 및 인도를 포함하는 아시아 지역 국가들과 경제, 외교 및 사회문화적 협력을 강화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의 기초가 되는 지역공동체 구축 과정에 우리나라의 기여를 보다 강화한다.
문 대통령은 모디 총리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인도 양국 관계 미래 발전 방향성을 담고 있는 ‘사람, 상생번영, 평화, 미래를 위한 비전’, 일명 뉴델리 선언을 채택하고, 향후 ‘3P 플러스’ 기조 하에서 각종 분야별로 전방위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신남방정책 외교적 교두보 마련
특히 문 대통령의 이번 인도 방문을 계기로 그동안 소원했던 양국 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외교적 바탕이 마련됐다는 점은 향후 신남방정책의 본격적 이행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아세안 및 인도와의 관계를 내실화하고 양자관계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외교적 교두보가 마련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순방에서 인도와의 파트너십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로 합의한 것은 신남방정책의 본격적인 추진단계 진입이라는 점에서 다음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인도와의 전방위적 경제협력 강화 합의는 신남방정책이 지향하는 경제 다변화의 실행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번 순방의 최대 성과라 할 수 있다. 인도는 세계경제가 저성장 추세에 접어든 이후에도 연 7% 이상의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고, 향후에도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은 거대 시장 국가이다. 풍부한 양질의 노동력, 광대한 국내시장 및 수요를 가진 인도와 기술, 자본 및 풍부한 경제개발 경험을 가진 한국 양국 간 경제적 상호 보완성은 매우 높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제협력의 높은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의 마련과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추진 의지인 바, 양국 정상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에 대한 확고한 합의를 도출했다. 특히 국내 제조업 육성에 중점을 둔 모디 정부의 ‘Make in India’ 정책에 우리 기업들의 참여를 확대하기로 합의함으로써 향후 인도시장에 대한 진출이 보다 본격화될 전망이다.
또한 현재 연 200억 달러 규모에 머물러 있는 양국 교역액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들을 시행해나가기로 한 것도 중요한 성과이다. 양국 간 체결된 자유무역협정인 포괄적경제협력협정(CEPA)이 실질적인 교역 확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현재 진행 중인 CEPA 개선 협상을 조기에 타결하고, 2030년까지 양국 간 교역액을 500억 달러 규모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한 경제적 의미를 가진다.
둘째, 인도와 외교 및 국방 분야에서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신남방정책의 핵심 요소인 외교 다변화를 보다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중 간 상호 배제적·배타적인 지역구도 구축을 위한 지정학적 경쟁이 최근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에 신남방정책 추진을 위한 전략적 환경이 녹록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외교적 자율성과 공간확보 성과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포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남중국해, 인도양 등에서 기존 질서를 타파하려는 수정주의(revisionist) 세력으로 규정하고, 중국과의 장기 전략경쟁을 미국의 최대의 안보 도전으로 간주하고 있다. 미국이 최근 태평양사령부(Pacific Command)의 명칭을 인도-태평양 사령부(Indo Pacific Command)로 변경한 것도 이러한 전략적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19차 당 대회를 계기로 핵심 대외전략으로 격상된 일대일로 구상의 본격화를 통해 아세안과 인도양에 대한 경제적·전략적 진출을 확대하면서 자국이 중심이 되는 역내 경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인도 양국은 외교장관 공동위원회, 외교·국방차관회의, 국가안보실 간 대화 등 기존의 양자협의체 상호협력을 통해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양국 간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아세안의 핵심국가인 싱가포르와는 아시아 역내에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양자 간 그리고 한-아세안 간 협력 강화를 위해 공동노력하기로 했다. 이러한 인도 및 싱가포르와 전략적 협력 강화는 미중 경쟁 심화라는 전략적 환경 하에서 우리의 외교적 자율성과 공간 확보를 위한 외교적 자산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셋째,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한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우리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인도와 싱가포르의 전폭적 지지를 이끌어냄으로써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우리의 외교적 노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와 지지기반을 확보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한 성과이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미협상이 중요하지만,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이해와 지지기반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신남방정책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외교적 자산을 확보하는 데 유용하고 효과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대통령의 인도 및 싱가포르 국빈방문의 성과가 향후 신남방정책의 성공적인 이행으로 이어져 우리의 경제성장 기반의 외연이 아세안과 인도로 확장되고, 역내 번영과 평화를 위한 우리의 외교적 기여가 보다 확대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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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기 국립외교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