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제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지시했다. 일자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고, 이용섭 전 장관이 부위원장을 맡은 대통령 직속 기구다. 일자리 확대는 전 세대가 당면한 시급한 사안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천명해왔으며, 일자리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둘 것임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일자리위원회는 일자리 창출과 일자리 질 개선을 통한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경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치했다. 각 부처에 분산되어 있는 일자리 정책을 통합해 재설계하고 이를 직접 실행할 수 있도록 추진체계를 구성·운영한다. 일자리는 큰 틀에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으로 나뉘지만 일자리 창출과 질적 개선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 그 영역 구분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공공이 선도하고 민간으로 시너지가 확산될 수도 있고, 민간의 좋은 경험과 사례가 공공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을 볼 때 이를 개선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가 불가피해졌다. 이제 이 몫은 일자리위원회가 담당하게 됐다.
2016년 공공기관 비정규직 연봉, 정규직의 50~60%
대통령의 업무지시 제1호와 이에 따른 첫 현장 방문지가 인천국제공항공사라는 점에 비춰 일자리 정책에서 우선 추진 사항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간접고용 11만 5000명을 포함한 공공부문 전체 비정규직이 약 40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볼 때, 고용 개선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공약 실현에서 가장 빠르고 확실히 할 수 있는 부분으로 정책 우선순위를 부여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2일 인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의 제로시대’를 약속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문제는 오랫동안 거론돼왔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정규직 직원이 1099명인 데 비해 간접고용(파견·용역) 근로자가 6831명으로 비정규직 근로자가 80% 이상 되는 비정상적 고용 구조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비정규직 비율이 10~20% 정도 되는 것과는 너무나도 큰 차이다. 연간 순이익만 8000억 원이 넘는 13년째 흑자 공기업, 12년째 전 세계 공항서비스 평가 1위를 자랑하는 인천공항의 씁쓸한 뒷모습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가장 먼저 방문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인천공항 직원들이 증언하는 비정규직의 애환은 더 가슴 아프다. 한 보안경비 근로자는 “14년째 비정규직으로 근무 중이다. 3년마다 보안업체가 바뀌어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공항소방대원은 “119 소방관과 똑같은 제복을 입고 일하지만 민간소방 신분으로 사망 시 순직 처리도 받을 수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문 대통령은 이러한 아픔에 깊이 공감했고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답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대통령과의 현장 간담회에서 “금년 내 인천국제공항공사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히고 즉시 ‘좋은일자리창출 TF’ 팀을 발족했다. 이로써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왔던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길에 희망이 비치기 시작했다. 사실 인천공항의 경우 간접고용 형태의 중간 업체들이 약 10%(일반관리비 3%와 마진 7%)에 가까운 비용을 가져가고 있어 이 부분을 줄일 경우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1만 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돼도 추가 발생비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비단 인천국제공항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이 많은 공공기관으로 한국전력공사가 7715명, 한국수력원자력이 7054명, 한국철도공사가 6230명 등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 직원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었으며, 2016년 기준 비정규직의 연봉은 정규직 대비 50~60% 수준에 불과했다.
비정규직은 적은 임금, 쉬운 해고를 위해 생겨났다. 정규직과의 차별대우, 저임금·장시간 노동,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더는 일할 수 없는 고용 불안 등으로 취약 직업군으로 비판받아왔다. 사회적 형평성과 정의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비정규직은 계속 확산돼왔다. 공공기관에서조차 부채를 줄이고 경영 건전성을 개선하는 쉬운 방법으로 비정규직 양산을 선택했다.
정규직 전환, 장기적으로 기업에도 이익
기업의 입장에서는 임금부담을 가장 우려하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 확대가 달갑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가장 큰 장점은 고용 불안 해소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삶의 질 개선으로 연결돼 인생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안정적 생활기반을 조성함으로써 국가 차원에서도 소비 활성화와 연계된다. 새로운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시스템에 여건을 조성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이다.
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사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함께 일하는 근로자 입장에서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신분이 구분되고 임금·복지 혜택 등에 차별을 받는 것은 근로 의욕을 감퇴시킬 수 있다. 정규직화만으로도 근로자의 애사심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측에도 이익이 된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화 결과에 많은 기업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어깨가 무겁다. 공공부문에서 노동 생산성과 효율성이 제고된다는 것을 선도적으로 보여줘 민간부문으로까지 파급 효과가 미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민간기업의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더욱이 민간기업은 공공기관에 비해 장기 근속자가 많지 않다는 점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경영상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년 미만의 근로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돼도 임금 상승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민간기업의 참여를 높일 수 있도록 정규직 전환율에 따라 정부 조달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 유인 정책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16년 국회 청소노동자 200여 명의 정규직 전환이 결정됐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국회가 앞장설 것”이라며 이를 추진했다. 김영숙 국회 환경미화노동조합 위원장은 “11년간 국회에 다녔지만 정규직 직원으로 고용되니 왠지 더 당당해진다. 자긍심도 애사심도 더 생긴다”며 소감을 밝힌 바 있다. 국회의 사례는 예산 증액 없이도 관리용역비로 잡힌 예산을 직접고용으로 변경해 보수 인상까지 가능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천명했다. 문 대통령의 구상은 불가능한 길이 아니다. 이제 인천국제공항공사 모델과 국회 청소노동자 정규직 고용 사례를 공공부문 전반으로 확산해나가면 된다. 이를 위해 공공부문 전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을 만들고 관련 작업을 함께 추진해 민간 영역에까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확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자리위원회는 공공기관에 대한 정규직 전환 매뉴얼을 만들고 전체 공기업으로 확산하기 위한 정책을 가속화할 것이다. 초기에는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지방자치단체 및 지방공기업으로 확대하도록 정책을 설계해나가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기업과 근로자 간 협력과 상생의 문화에 길이 있다.
송기복 청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