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 살 때인 10여 년 전 일이다. 바르셀로나는 로마시대부터 이어온 도시였기에 2000년의 역사를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평소 자신들의 도시에 자부심이 가득했던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과거의 개발이 불가피했고 당시에 최선을 다했을지라도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면 고쳐내고야 마는 성미를 지녔다. 20년이 지난 해변의 올림픽 선수촌과 도시 북쪽의 근대 공장지대, 근세 시가의 낡은 시장과 중세가로의 슬럼지역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특히 관심이 갔던 곳은 구시가 일대의 낙후된 지역이었다. 중세부터 이어온 자동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에 5~6층짜리 건물들이 장벽처럼 서 있었다. 길은 어두침침했고,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소문나자 싼값에 북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점령한 상태였다. 현지 친구들이 위험한 곳이라 일러줘 발길이 잘 가지 않던 곳이었다.
구시가 내에서도 장소의 특성에 따라 개발 방식은 조금씩 달랐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개발은 ‘광장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비록 좁은 골목과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문제였지만, 과거의 문화유산인 도시 조직을 완전히 해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바르셀로나 시는 과감한 편이었는데, 그들은 전체를 갈아엎는 대신 동네 중심의 작은 블록 하나를 통째로 산 후 완벽하게 없애버렸다.
낙후된 블록 하나가 사라지자 새 광장과 연결된 좁은 골목들에 밝음과 생기가 피어났다. 광장에 면한 낡은 건물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단장되기 시작했고, 넓은 공터와 어울리는 노천카페들도 생겨났다. 무엇보다 예부터 이어온 도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읽혔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 모든 과정을 가능할 수 있게 한 시스템이었다. 이 정도의 과감한 행정을 담당했던 공무원은 수많은 민원을 어떻게 감내했을지, 이 천문학적인 비용 지출과 과감한 도시계획을 의회는 순순히 인정했을지, 무엇보다 광장 자리에 살았던 주민들에게 강제적으로 주소를 바꾸게 하는 과정이 순탄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많은 장소가 새로운 패러다임에 순응하며 도시재생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결과물이 하나둘 도출되고 있는 상황이며, 세상의 변화에 괜히 뭉클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 것에는 보다 엄격한 시선을 보내는 방식의 애국심을 지닌 나로서는 아쉬움을 느낄 때가 더 많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기에는 지면이 부족하나 청계천과 세운상가, 성수동과 서울역 등 내 주변의 공간을 봤을 때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흔들림과 갈등, 욕심의 자취가 결과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모든 새로운 것에는 당연히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올바른 절차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과정의 문제다. 결과는 그 모든 것이 잘 조화돼 새로운 생각들이 피어나는 기반이 돼야 한다. 한국인이기에 타인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더 잘 보이는 탓도 있겠지만, 우리의 결과물은 늘 흔들림과 갈등, 욕심이 가느다란 실로 겨우 봉합된 모습을 띤다.
우리의 도시재생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구성원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생각해봤다. 흔들리지 않으며 인내심을 갖고 뚝심 있게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을 담당 공무원들에게 주는 것과, 법이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열정적인 입법권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과, 개인의 행복한 삶이 공공의 이익을 통해서도 구현될 수 있다는 사회 구성원들의 열린 마음이 공유되는 것이다. 바르셀로나가 알려준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조건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아직 그게 없어 보인다.
오영욱 | 오기사디자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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