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2월 어느 날로 기억한다. 선배 배우들과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물건을 판매하며 가두모금을 했던 그날부터 사랑의 열매와 나의 연은 시작됐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가 된 지 어느덧 19년이 흘렀다. 두 아이를 둔 엄마가 됐을 정도로 꽤나 긴 시간이다. 19년 전 그날 마냥 새롭고 신기했던 감정은 여전히 생생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안정감과 소속감이 생겼다. 사랑의 열매, 그리고 나눔은 이제 당연히 함께하는 가족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한 연예계 활동은 나에게 과분한 사랑을 선물했다. 어린 마음에 들뜨기도 했다. 그럴 때면 부모님은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돌이켜보면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 제의를 받아들이게 된 데는 부모님의 영향력이 컸던 것 같다. 나눔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신 부모님 덕분에 나눔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세상 대다수 부모가 그렇겠지만 나 역시 자녀가 올바른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과거 부모님의 역할은 이제 내 역할이 됐다. 타인과의 나눔에서 비롯된 가치를 알려주고 싶지만 자녀에게 거창한 무언가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학교에서 하는 봉사활동에 반드시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용돈 중 일부를 모아두었다가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도록 한다. 엄마인 내가 사랑의 열매를 통해 실천하는 활동을 보면서 간접 경험하길 바라는 작은 소망도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과 나눔을 함께해왔다. 학대받는 아이들과 맛있는 팬케이크를 나눠 먹은 순간, 어린이집 건축 현장에서 벽화를 그리며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순간은 잊히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 뜨거운 실내에서 땀으로 범벅된 채 아이들을 씻겼던 때도 있었다. 드라마 ‘천추태후’를 촬영하던 시기라 분장한 상태였는데 물에 씻겨나가는 것도 모르고 집중했다. 자녀가 있어서인지 아이를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에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더욱이 아이가 얼마나 많은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존재인지 알기에 그때마다 느낀 저릿함이 내 나눔의 또 다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드러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기에 나의 나눔이 도드라져 보이는 건 사실이다. 숨은 곳곳에서 더 뜨거운 사랑을 전하는 분들이 말할 수 없이 많다. 가끔 광화문에 들르면 사랑의 온도탑을 찾아보는데 ‘벌써 저만큼 올랐나?’ 하고 놀랄 때가 있다. 사랑의 온도탑이 항상 100도를 넘어서 목표액을 초과하는 모습을 보면 감사하기도, 존경스럽기도 하다. ‘사람의 정성이 모이면 못해낼 게 없겠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일각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인해 ‘기부 포비아(공포증)’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고 분노감마저 든다. 많은 분들이 해왔던 진심 어린 봉사와 나눔마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감도 생긴다.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을 가지는 이유는 ‘내가 보태는 작은 정성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쓰일 거야’라고 굳건히 믿어주시는 분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그런 믿음에 보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홍보대사로서의 내 역할이기도 하다.
금전이 아닌 재능을 기부하는 문화도 이전보다 익숙해진 분위기다. 시대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다. 나 또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내레이션 재능 기부를 해오고 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나누고 느끼고 함께할 수 있다는 자체가 돈 이상의 값어치를 한다.
나눔이란 가랑비에 옷 젖듯 또는 낙숫물에 바위가 뚫리듯 곁에서 평생 함께 가야 하는 행위이자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내가 19년 동안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를 해올 수 있었던 건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라는 사람의 역할이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
채시라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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