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빌린 돈이 세칭 ‘엄마론(loan)’이다. 같은 이치로, 친구에게 빌린 돈은 ‘친구론’이다. 그럼 ‘토이론(toy loan)’은 뭘까? 얘기를 좀 우스꽝스럽게 시작했는데, 토이론에서 토이는 엄마론의 엄마와 다르다. 즉, 장난감이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장난감을 돈처럼 빌려 썼다가 상환하는 어린이 대상 공공 프로그램이다.
우리말로 ‘장난감 대출’로 직역되는 토이론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어느 인터넷 카페 모임을 통해서다. 본래 취지는 ‘한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콘셉트로 하는 여행 카페인데, 젊은 엄마들이 많다 보니 이왕 하는 해외 체류 경험을 어떡하면 아이 교육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지 관심사가 확장(내 입장에서는 변질)됐고, 그런 액티비티의 하나로 토이론이 제시된 것이다. 발표자의 설명은 이랬다.
“토이론은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미국에서는 대공황 시절인 1935년부터 시작됐다고 해요. 현재는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아주 활발하게 운영되고요. 도서관과 유사하게 운영되지만 세부적인 차이점이 있어요. 아이가 장난감을 기부하거나 빌린 장난감을 제 날짜에 훼손 없이 반납하면 점수를 얻을 수 있고, 그 점수를 활용해 계속해서 다른 장난감을 빌릴 수 있다는 점이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책임감이나 판단력, 자기조절 능력 등을 키울 수 있고요.”
그런데 발표자의 설명은 맞기도 하고 그르기도 했다. 토이론과 비슷한 형식의 장난감 대여 프로그램인 장난감 도서관이 우리나라에 이미 상당수 운영되며, 지금도 속속 문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소한 문화라는 발표자의 말에 반박할 수도 없는 게, 토이론이 어린이 중심 운영 방식이라면 장난감 도서관은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 중심 운영 방식이다.
회원 등록부터가 그렇다. 장난감 도서관이 부모가 신분증을 제출하고 소정의 연회비를 장난감 훼손에 대한 보증금 조로 납입함으로써 이루어진다면, 토이론의 경우에는 의사소통 능력이 있는 어린이라면 굳이 부모를 대동할 필요 없이 직접 회원 등록을 하고 장난감을 빌릴 수 있다. 그럼 혹시라도 아이가 장난감을 반환하지 않거나 망가뜨리면 어쩌냐고? 후원을 통해 운영되는 공공재단이기에 그만한 손실은 감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만큼 시민의식이 탄탄하게 자리 잡힌 사회인 것도 맞다.
그래서 겉보기엔 그게 그거지만, 장난감 도서관과 토이론의 속사정은 꽤 다르다. 전자가 장난감을 빌리고 훼손 없이 반환하는 게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 하에 있다면, 후자는 그것이 전적으로 아이의 책임 하에 놓인다. 장난감 도서관의 경우에 아이가 빌린 장난감을 곱게 가지고 놀다가 반환해도 부모에게 칭찬 받는 게 고작이지만, 토이론의 경우에는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는 포상으로 포인트를 줌으로써 아이의 자긍심을 높여준다. “아이가 장난감을 고르고 반납하는 것을 하나의 놀이 과정으로 생각해, 토이론에 간다고 할 때부터 좋아서 방방 뛰어요”라고 한 엄마는 말했다.
어떤가. 장난감 도서관과 토이론의 차이가 서울과 로스앤젤레스의 거리만큼이나 아득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것을 아이에게 경험시켜주고 싶어서(그것만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열 시간 넘게 비행기로 날아가 고액의 체류비를 지불한다는 사실은 또 어떤가. 우리가 소위 관광 자원이라고 부르는 것만 관광 자원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멋진 문화를 만들고, 그것을 잘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경쟁력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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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승준 | 번역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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