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부터 8일에 걸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성공리에 끝났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표명한 여러 발언과 입장들로 인해 정상회담 직전까지 과연 문재인 대통령과 대북 정책 등을 둘러싸고 잘 조율된 합의가 가능할 것인가라는 일각의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핵개발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거듭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강경한 대북 발언을 연일 쏟아냈다. “북한이 위협을 계속 가하면 화염과 분노 등 세계에서 본 적이 없는 힘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로켓맨’으로 부르며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강경 발언이 혹여 북미 간 군사 충돌의 빌미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이 엄습했던 것이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강압보다는 관여에 중점을 두는 대북 정책 입장을 표명해왔다. 예컨대 7월의 베를린 선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고, 북한과 함께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전향적인 제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같이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에 불협화음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나아가 국내에서는 미국과 중국 등이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상호 논의하는 과정에 한국이 배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코리아 패싱’의 불안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이 ‘운전석’에 앉아 한반도 문제를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천명했다.
그러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미중 간 빅딜설을 제기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제언에 귀를 기울인다는 관측도 이어졌다. 미중 간 빅딜설 등은 한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가 돼야 한다는 문재인정부의 입장을 곤혹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상당히 불식된 듯하다. 방한 기간 중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과 같은 합의를 분명히 도출했기 때문이다.
‘코리아 패싱’ 우려 불식
첫째, 11월 7일 정상 간 공동선언에서 나타난 것처럼,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개발 및 탄도미사일 발사를 용납할 수 없으며, 한미동맹 차원의 확장 억제 태세 강화와 한국의 자주국방 노력, 그리고 국제사회의 공조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나간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이 같은 합의를 통해 미국에 의한 일방적인 대북 정책이 진행될 수 있음을 우려한 국내의 일부 기우가 해소되지 않았나 싶다. 아울러 문재인정부의 대북 정책이 일방적인 ‘대북 퍼주기’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둘째, 대북 정책과 한반도 문제 해결에 관한 ‘코리아 패싱’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정부의 대북 정책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가 국빈 방문의 형식을 통해 표하는 예우에 대해서도 최대한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여타 우방국가 지도자들에게 결례를 범하기도 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예의를 갖춰 대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국회 연설에서 한국전쟁 이후 한국이 거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은 점을 볼 때, 그가 앞으로도 한국의 외교적·전략적 중요성을 과소평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다.
셋째,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 한국의 전력 증강 계획에 대해 미국 정부가 아낌없는 정책적 지원의 자세를 보인 점이다. 예컨대 ‘한미 미사일 지침’상의 탄두 중량 제한 규정을 완전 해제함으로써 대북 억제 전력 강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 등 첨단 전력의 구매를 확대하고, 미국 전략자산의 순환 배치를 확대하는 합의를 도출한 것도 한국의 자주국방 및 한미동맹 확장 억제능력 강화와 관련해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미 체결된 한미 FTA에 대해 개정협상을 해야 한다는 부담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번 트럼프 대통령 방한이 점증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 속에서 굳건한 한미동맹 태세의 기반을 확대·강화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취임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그간 트럼프 대통령과의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거듭 개최해왔다. 지난 6월 20일, 두 대통령이 가진 첫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도발에 대해 한미동맹 차원에서 강력히 대응하면서도 방법 면에서는 제재와 대화를 병용한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해간다는 합의에 도달한 바 있다. 지난 7월, 베를린에서 일본의 아베 총리를 포함해 한미일 정상이 가진 회담에서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해 3국이 안보협력을 심화해간다는 의미 깊은 합의를 발표하기도 했다.
경력도 상이하고 성향도 다른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여타 국가의 정상들보다 서로 존중하며 유의미한 합의들을 도출하고 있는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다음과 같은 점들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문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호의와 신뢰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북 관여 정책을 표방하고 있지만, 문 대통령은 북한의 군사 위협에 대해 단호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예컨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자행될 때, 문 대통령은 전임자들과 달리 한미연합의 미사일 발사 훈련을 통해 한국군이 보유한 현무-2A 미사일을 주한미군의 에이타킴스(ATACMS) 미사일과 같이 과감하게 발사하는 결정을 내리곤 했다.
동시에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미국 방문 시 장진호 전적비 앞에서의 연설을 통해 한국전쟁 당시 미 해병대가 혈전을 벌이며 수행했던 장진호 전투가 자신의 가족과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감동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개인사와 리더십이 트럼프 대통령의 호감을 자아낸 측면이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그와 못지않게 한국이 성취한 민주주의와 경제사회 발전에 대해 미국 사회 전체가 높게 평가하고 있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회 연설을 통해 LPGA에서 우승한 박성현 선수 등의 사례를 들어 한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이룩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칭송했다.
그리고 이를 인권 탄압과 독재 체제가 횡행하는 북한 사회와 대비시켰다. 사실 문재인정부도 이러한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힘입어 탄생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정치 발전에 대한 높은 평가의 연장선상에서 문 대통령을 존중하는 듯하다.
한미동맹 지속적 활용하는 외교 전략 필요
보다 거시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글로벌 전략인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과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균형외교 전략’ 간에 의외의 접점이 많다는 점도 들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이란 부상하는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 인도, 호주 등 해양국가들 간에 연대를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견 한국이 배제된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휴전선에 가로막혀 사실상 해양국가나 다름없는 한국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추진에는 대단히 전략적 중요성이 높은 지역이 된다.
한편, 문재인정부가 표방하는 균형외교 전략은 한미동맹 외에 한중관계나 여타 동남아 및 북방 지역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다변화해 한국의 안보와 발전을 도모하려는 전략이다. 일견 한미동맹을 상대화하는 측면이 있을 수 있으나, 사실은 한미동맹 관계를 공고히 한 연후에야 ‘균형외교 전략’이 보다 탄력성 있게 전개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같이 양국 정상의 인간적 신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전이라는 정체성의 공유, 글로벌 외교전략 간의 협력 가능성 등이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연이은 정상회담 성공을 견인한 요인들이라고 여겨진다.
향후에도 한국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고, 글로벌 차원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외교 전략이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지탱해온 이 같은 요인들을 잘 식별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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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