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미중 정상회담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그동안 ‘중국 때리기’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즉 중국에 대해 민족주의적(nationalistic), 반공산주의적(anti-communist), 그리고 기만적 대상(China as deceptive)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부상을 막아야 한다는 신념하에 미중 간의 불공정한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겠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실제 이 같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태도는 트럼프 행정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2008년 이후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경제적 쇠퇴 현상이 가시화되기 시작하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미국은 미중관계에서 중국에게 많은 도전과 수모를 겪었으며, 이 같은 중국 피로감이 미국 내 대부분의 정책 서클을 장악하고 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스티븐 배넌 전 수석전략가가 백악관을 떠난 이후 대중국 정책에 있어 협력 분위기가 강화되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미중 경쟁구도와 중국의 부상을 막아야 한다는 정책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 현재 국제 체제는 미중 경쟁구도로 바뀌고 있으며, 이는 동아시아 지역체제를 제로섬게임으로 바꾸어갈 것이다. 최근 중국 당대회 이후 국내 권력 안정화를 완성한 시진핑의 대외정책이 더욱 공세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 미중 간 경쟁구도는 더욱더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미국은 군사적으로 중국의 반(反)접근/지역거부전략(A2/AD: Anti-Access/ Area-Denial)에 대응하기 위해 공해전투개념(Air Sea Battle), 합동작전접근개념, 제3차 상쇄전략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예산 증액은 이 같은 군사전략 추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즉 2020년까지 60%의 공·해군력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에 있으며, 제3차 상쇄전략을 통해 미국의 재래식 저지력(conventional deterrent)을 강하게 만들고 중국과 국방과학기술의 간격을 다시 벌리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 필요성은 초당적 공감 사항이며, 오바마 행정부의 미 해군 축소는 재균형 정책의 실질적 효과를 반감시키고, 오히려 중국의 팽창을 야기한 바,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군사력, 특히 해군력의 복원 등 ‘힘을 통한 평화’ 전략에 기반을 둔 중국 압박을 강화하고 남중국해의 평화를 유지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은 군사기지화로 인한 A2/AD 능력을 강화시켜주고, 서태평양으로의 군사적 진출을 가능하게 해주어 대미 핵 억지력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이 같은 중국의 군사적 확대 전략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아시아에서 군사적 축소 전략을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순방에서 트럼프는 아시아 지역의 동맹국들인 일본, 호주, 인도 등과 함께 중국을 군사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전선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미중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는 두 가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와 양국 간 무역 불균형 문제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두 의제를 상호 연계시켜 중국을 압박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즉 미중 간 경제적 상호의존성에 의해 중국을 경제적으로 때리기가 매우 힘든 상황 속에서 경제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명분을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중국 역할론에서 찾고 있다.
북한 핵개발의 원인은 중국이며, 북한이 지속적으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면 이에 대한 책임을 중국에게 물어 중국을 압박하고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계속해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점은 시진핑의 중국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중관계를 복원시킨 점이다. 시진핑의 중국은 정상회담에서 불필요한 마찰은 줄이면서 기존의 미중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미국이다. 트럼프는 더 많은 중국 역할론을 요구하면서 중국을 옥죌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중국은 미국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대북정책에 있어 미중 간 합의점을 유도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획기적이지는 않지만 미중이 대북정책에 합의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결과물이 도출될 가능성이 있다.
미중 간 효과적인 대북정책 합의 기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딜레마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미중 관계 사이에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있다. 즉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막기 위해서는 소위 세컨더리 보이콧 등을 통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해야 하지만, 이것은 미중관계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에 타격을 주고 미국의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미중 관계를 중시하면 북한 핵위협을 방치해야 하고, 북한 핵위협을 막기 위해서는 미중 관계가 타격을 입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미중 관계를 중시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미국은 사실상 대중국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를 이행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미국의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중국의 단동은행을 제재하는 것은 중국 은행에 대한 제재가 아닌 “나쁜 행동을 하는 단체에 대한 제재”라고 언급함으로써 미중 관계를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중 관계를 고려해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 이행에 매우 수동적이었으며, 미국은 대중국 압박을 통해 중국이 스스로 북한 문제와 무역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희망했다.
예를 들어, 북한의 ICBM 시험 발사에 대해 미국은 7월 말 북한과 러시아, 이란에 대한 독자적 제재 수단으로서 패키지 법안을 상·하원에서 통과시켰고, 이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했다. 패키지 법안에 포함된 전방위 대북 제재 법안은 ▲북한의 원유 및 석유제품 수입 봉쇄 ▲북한 노동자 고용 금지 ▲북한 선박과 유엔 대북 제재를 거부한 국가의 선박 운항 금지 ▲북한의 온라인 상품거래 및 도박 사이트 차단 ▲그동안 러시아 및 중국이 북한 해역에서 어업 활동을 하고 북한에 대가를 지급해왔던 입어권을 금지시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중국이 어길 시에는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를 이행 여부를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의 재량권에 맡기고 있는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이 같은 미국의 태도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변하기 시작했다. 6차 핵실험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정상적 거래를 하는 제3의 국가와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이란식 세컨더리 보이콧을 예고했다.
실제로 북한과 정상적으로 거래하는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 의지를 밝힘으로써 금융 분야에서의 세컨더리 보이콧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점점 수위가 높아지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완성 단계에 접근할수록 미국의 대중국 경제 제재의 수위 또한 점점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과연 미국이 중국을 얼마나 압박할 것이며, 이것이 대북정책에서 큰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느냐이다. 즉 미중 경제관계의 타격을 각오하고 세컨더리 보이콧의 본격적 이행을 통해 중국을 압박할 수 있을지 여부다. 현재 중국은 유엔안보리제재결의안 이행에 적극적이지만 북한 정권을 완전히 압박하지는 않고 있다. 미중 양국이 효과적인 대북정책에 합의할 수 있을지가 이번 정상회담의 관전 포인트다.
한국은 미중 양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이번 한·아세안 외교를 강화시키고 러시아 등 제3국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미중 양국이 독점하고 있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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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욱 |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