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의 출범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자치분권적 국정운영에 대한 당위성과 기대감을 갖게 한다. 우리에게 지방민주주의는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얻어낸 과실이다. 이때의 과실이 지방분권정책을 기본으로 한 지방의회 재구성과 지방자치의 부활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쌓아온 지방자치체제의 경험은 여러 형태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자치분권이라는 국정운영 체계에 힘입어 국가의 주요 정책이 민생의 주체인 주민들에게 가장 근접한 곳에서 지역의 여건에 맞는 정책들을 실효성 있게 이뤄왔다는 데 가치가 있다.
이 같은 지방정치·행정 환경은 이제 과거보다 좀 더 강화된 자치분권의 길을 요구하고 있다. 자치분권은 국가(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지방정부), 주민과의 관계 속에서 논의해야 한다. 이것을 단순히 지방정치·행정·경제·사회 환경 변화의 산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우선,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정부 수립 후 반세기가 넘게 중앙집권적 행정 수행 방식으로 길들여진 행정체제를 갖춰왔다. 지금처럼 다원화된 사회에서 이것은 더 이상 효율적인 행정을 산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1960년대 이후 저개발도상국 지위에 있었던 대한민국은 국가발전을 위해 고도의 중앙집권적 국정운영 방식과 불균형성장론을 통해 나름대로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방민주주의 경험이 축적된 지금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기획하고 통제하는 중앙집권적 국정운영 방식으로는 지방자치단체의 다양성과 특성을 살린 지역균형발전을 실현해가기에는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더구나 저출산·고령화, 인구감소에 따른 지방 소멸, 사회적 갈등 같은 문제들을 중앙정부 혼자 일방적으로 해결해 나아가기란 매우 어려운 시대가 됐다. 따라서 중앙에 집중돼 있는 권한과 기능을 지방정부로 이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게 됐다. 그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자율권은 물론 책임행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하면 자치의 주체인 주민에게 보다 값싸고 좋은 행정과 재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를 고심하게 됐다. 여기서 지방정부는 시장경쟁체제에서 민간부문과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행정업무의 질적 변화, 지방공무원의 전문화, 행정장비의 과학화, 지방정부의 경영 합리화를 도모하게 된 것이다. 또 치안과 복지 등 지역별 여건에 맞는 차별화된 행정서비스를 충족시킬 수 있는 노력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고비용·저효율의 지방행정구조를 개혁해 자치행정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주장하게 되면서 지역사회 특화산업을 육성하고, 지역 발전의 신성장동력을 찾아 지역경제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주민의 입장에서도 살펴보자. 주민들도 이제는 자기 지역 문제에 직접 참여해 어떻게 하면 우리 자치단체를 위해 우리의 권리와 의무를 다할 수 있을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촛불혁명정신으로 표출된 실질적 주권자로서 국민적 참여 요구가 증대된 시대적 상황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욕구를 더 강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치분권의 요체로서 지방민주주의의 확립은 대표제와 참여제를 동시에 추구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대표제도에서 지방민주주의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나는 주민이 책임을 행사하고 의결하는 수단을 가져야만 하는 그들의 대표자를 선출해야 한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주민이 지방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행정기관과 주민의 관계가 더는 가부장적 시대의 ‘아버지와 어린아이’ 같은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의 지방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지역 현장에서 현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것을 바로잡아야 할 때다. 지방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자치분권은 결국 시대적 요구일 수밖에 없다.
최진혁 | 충남대학교 자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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