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서 사용되는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2019년 7월 4일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일본은 정치적 논리에 따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배제했고, 수출 심사를 품목 개별로 받아야 하며 최장 90일이 걸리게 됐다.
우리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였다. 반도체 에칭 공정에 필수적인 불화수소는 일본의 스텔라케미파, 모리타화학공업(액체 불화수소)과 쇼와덴코(가스), 반도체 패터닝 공정에 꼭 필요한 포토레지스트는 JSR와 신에츠화학, 폴더블 OLED 디스플레이 공정에 필요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일본의 스미토모화학에 의존성이 매우 높은 상태였다.
하지만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 소재·부품·장비 업체, 정부, 대학, 정부출연연구소 등은 합심해 공급처 다변화와 국산화를 빠르게 추진했다.
그로부터 1년 후, 2020년 7월 현재 국내 S사와 R사에서는 불화수소 케미컬에 대해 일본산과 같은 수준의 순도를 확보해 국산화 및 생산량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불화수소 국산화 노력으로 반도체 소자업체 및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에서 국산 불화수소 케미컬을 적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스텔라케미파는 일본의 수출규제 이전과 비교해 영업이익이 30% 이상 급감했으며 모리타화학공업 또한 판매량이 30% 넘게 급감하는 피해를 입었다.
국내 기업 독자기술 확보해 양산 시작
S사와 F사에서는 불화수소 가스에 대해서도 고순도 성능을 확보했으며 양산 및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D사는 불화아르곤(ArF)용 포토레지스트 국산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반도체 소자업체에서는 신에츠화학, JSR뿐 아니라 TOK, 듀폰 등 공급처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K사와 S사에서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독자기술을 확보해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양산을 시작했다.
이와 같이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규제는 오히려 지난 15년간 정체됐던 국내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에 눈뜨게 하는 계기가 됐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위한 강력한 추진력은 현재 진행형이며 공급처 다변화를 통해 단일국가에 대한 높은 의존성에서 벗어나게 됐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는 보호무역주의 회귀를 의미한다. 미중 무역전쟁, 한일 갈등 등으로 가속화되는 보호무역주의는 본질적으로 글로벌 IT(정보기술)의 패권전쟁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심화되는 보호무역주의는 IT 밸류체인(Value Chain·가치사슬)의 균열을 일으키고 있으며, 특히 최근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중국의 ‘제조 2025’ 대응책 중 하나다.
향후 심화될 IT 밸류체인의 균열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소재·부품·장비에 대해 지속적인 국산화와 공급처 다변화를 더욱 더 추진해야 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글로벌 IT 밸류체인이 흔들렸으며, 특히 일본으로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소재·부품·장비 50% 이상을 수입하는 우리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회사는 초기에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됐다.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의 섬코(SUMCO)와 신에츠(실리콘 웨이퍼), 호야(마스크), 스텔라케미파 및 모리타화학공업(불산)의 생산에 영향을 끼쳤으나, 국내 반도체 업체에서 재고 확보 및 공급처 다변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하지만 대지진 후 밸류체인의 문제가 해결된 이후, 국산화 및 공급처 다변화는 더 이상 추진되지 않았다.
이번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규제는 오히려 국내 소재·부품·장비 글로벌화에 절호의 기회다. 지난 기회를 놓친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10년간 국산화가 정체됐으며, 여전히 일본 업체를 비롯한 소수의 소재·부품·장비 공급처에 대한 의존성이 매우 높았다. 지난 일을 교훈 삼아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국산화와 공급처 다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소부장 공급처 다변화는 선택 아닌 필수
수입 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장비의 모든 품목에 대해 국산화를 할 수는 없다. 또 이런 품목들은 기술의 난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쉽게 국산화에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국산화 가능성이 있는 항목에 대해 사업화 연계기술개발(R&BD)의 시급성, 기술의 난도, 시장성을 모두 고려해 국산화 품목의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소재·부품·장비의 공급처 다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일본 정부의 정치적 논리에 따라 일어난 소재·부품·장비의 공급 불안정성을 해소하려면 일본 기업 제품을 무조건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기업들의 국내 공장 유치 등을 통한 동반 성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와 공급처 다변화를 이뤄야 한다.
특히 정부는 국산화 기업에 대한 전폭적 지원, 사업화 연계 기술개발 사업의 적극 추진, 해외기업의 연구개발(R&D) 센터 및 생산기지 유치로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소재·부품·장비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적극 지원하며,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자립을 지원하고 각종 규제완화를 위한 신속처리제(패스트트랙)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정부의 R&BD 자금 지원 및 환경규제 해소, 대기업의 기술적 지원, 그리고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의 지원을 동반해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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