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했는데 여느 해보다 차분하고 조용한 5월을 보내고 있다. 5·18 40주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40주년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40주년 이후 5·18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등 수많은 논의가 있었다. 더구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과 시행령까지 통과되었지만 해를 넘기며 지지부진하던 위원회 구성이 연말에 극적으로 마무리되어 2020년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는 달리 차분한 5월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모든 일상을 멈춰 세웠듯 5·18 행사도 예외는 아니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대표적인 행사인 전야제를 취소했다. 정부의 공식 기념식과 함께 5·18 기념행사의 한 축인 전야제가 32년 만에 취소된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광주시민과 전국에서 모인 추모객의 참여로 진행되었던 전야제가 다른 것도 아닌 코로나19 때문에 멈춘 것이다. 전야제는 시민들의 준비와 참여로 이뤄지는 문화 행사로 5·18의 의미를 되새기고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대표적인 행사다. 1988년 광주 구동체육관을 시작으로, 1989년부터는 전국에서 모인 참여자들로 금남로를 가득 메운 채 치렀던 행사인 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첫째도, 둘째도 진상규명이 최우선 과제
하지만 문화 행사는 풍성하다. ‘서울의 봄, 광주의 빛’이라는 슬로건 아래 열리는 광주시와 서울시의 5·18 40주년 공동기념식, 영화제 <시네광주 1980>, 말러의 교향곡 ‘부활’을 우리말 서사로 풀어낸 <오월 음악회> 등 온라인으로 생중계되는 11개의 프로그램,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특별 공연 및 전시, KBS 열린음악회, 오월 판화와 걸개그림으로 1980~90년대를 조명하는 오월 민중미술 전시, 5·18자유공원 특별전시, TV·라디오 특별 프로그램 등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풍성하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멈추게 했지만 5·18 행사는 온라인이라는 공간을 통해 연결되면서 오월 광주의 시공간이 전국으로,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5·18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첫째도 진상규명, 둘째도, 셋째도 진상규명이다. 몇 차례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발포 명령자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억울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부상자를 포함해 수천 명의 피해자는 있는데 잘못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어이없는 상황이 40년째 계속되고 있다. 헬기 사격은 조직적 은폐와 부인으로 묻혀 있다가 2017년 전일빌딩에서 수백 발의 총탄 흔적이 발견돼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확인되었다. 계엄군의 여성 성폭력은 2018년에야 드러났지만 용감하게 그 사실을 밝힌 사람들에 의해 극히 일부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계엄군의 부대이동 과정에서 행해진 민간인 집단학살, 고속도로를 이용해 담양으로 나가려다 계엄군의 집중사격으로 사망했는데 이를 교도소 습격으로 조작한 사건, 나주와 화순으로 나가는 길목에서 사살당한 이름 없는 사람들, 아직까지도 생사를 알지 못하는 암매장자와 행방불명자, 자료 파기, 조작, 조직적인 은폐·왜곡 등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밝혀진 게 없다.
1990년부터 보상이 이뤄지고, 1997년 전두환과 노태우가 사법 처벌을 받고, 2000년 5·18 피해자와 희생자들이 민주유공자가 되었으며, 2002년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된 것으로 5·18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이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핵심적인 문제들이 규명되지 않고, 이를 빌미로 전두환은 오히려 자신이 씻김굿의 제물이라며 망발을 늘어놓고, 지만원과 극우 유튜버들은 5·18 피해 유족들을 헐뜯고 2~3차 가해를 하며 상처를 덧내고 있다.
왜곡·폄훼 행위 엄중히 처벌해야
5·18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불의한 권력을 심판한 승리의 역사인데도 극우세력과 악성 유튜버들의 조롱을 받고 있다. 5·18항쟁 40년이 되었지만 광주시민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희생당한 분들에 대한 막말과 모욕이다. 코로나19 확산 우려 때문에 금남로에서 열리는 전야제 행사를 취소했는데 극우세력이 이곳에 집회신고를 해 광주의 한복판에서 5·18 피해자와 유가족을 모욕하는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집회를 유튜브로 생중계하면서 광주시민들을 자극하고 시청률을 올려서 경제적 이익을 챙기려 한다.
2019년 3월 한국을 찾은 파비안 살비올리 유엔 진실·정의·배상·진상규명 특별보고관은 한국에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규정이 없는 사실에 놀라워하면서 5·18민주화운동 등 국가폭력 피해자를 향한 혐오표현에 대해 “자유권 규약에 따라 국가는 혐오표현을 하지 못하게 할 의무가 있다. 혐오표현이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피해자를 적대시하는 사회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혐오표현을 반드시 금지해야 하며,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으면 그 과거는 계속해서 현재의 우리에게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표현의 자유가 모욕의 자유는 아니다. 그런데 5월 영령들의 피로 쟁취한 민주주의와 권리를 극우 막말집단이 누리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역설이다. 5·18역사왜곡행위 처벌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과정을 거쳐 5·18정신이 헌법 전문에 반영되어야 한다. 5·18에서 보여준 부당한 폭력에 대한 저항, 약자가 약자에게 내미는 연대의 손길, 인간의 존엄성, 주먹밥, 헌혈과 생명 나눔, 자치공동체와 대동세상, 죽음과 부활은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상상력과 꿈의 원천이 되고 있다. 5·18의 시대정신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 더 좋은 민주주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40주년 5·18 이후의 5·18은 더 낮아지고 젊어져야 하며 더 원형에 가까워야 한다.
이기봉 5·18기념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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