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1년 전으로 돌려보자. 당시엔 코로나19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지구촌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2020년 이맘때 세계인의 이목은 호주에 쏠려 있었다. 엄청난 화마가 호주 남동부의 아름다운 자연을 잿더미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9년 9월 시작된 산불은 이듬해 2월 중순 최종 진화되기까지 대한민국(남한) 영토보다 넓은 11만 5000㎢의 땅을 불살랐고, 이 과정에서 수십억 마리의 동물이 불에 타 죽었다. 하지만 이 폐허 속에서도 새싹은 돋아났다. 불에 그을린 채 구조된 어미 코알라의 품속에서 아기 코알라가 귀여운 얼굴을 내밀었을 때, 많은 이들이 가슴 뭉클한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2020년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경제전망(OECD Economic Outlook)’에서 언급된 ‘희망’도 그런 것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희망을 현실로(Turning hope into reality)’라는 부제목이 달린 이 보고서에서 OECD는 2020년 세계경제가 4.2% 역성장할 것이라면서도 백신·치료제 개발이 가시화됨에 따라 활력이 점차 회복돼 2021년에는 4.2%의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이 기관이 반년 앞서 내놓았던 전망치(2020년 -7.6%, 2021년 2.8%)에 비해 크게 개선된 것으로, 4.2%의 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Global Financial Crsis, GFC)로부터 반등한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물론 이러한 숫자는 그저 ‘참고용’일 뿐이며, 삶은 스냅사진(재빠르게 순간적인 장면을 촬영하는 것)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스냅사진의 잘 짜인 틀 안에서 작은 코알라는 ‘나 괜찮아’라며 웃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가 앞으로 살아갈 틀 바깥의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이다. 이는 전쟁으로 온 강토가 폐허로 바뀐 경험을 해본 한국인에겐 낯선 장면이 아니다.
이 잿더미 속에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야 한다. 새로운 희망의 근거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희망에는 ‘차원’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점은 세계 여러 나라가 코로나19를 대하는 모습들을 서로 견줬을 때 잘 드러난다. 많은 나라가 여전히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지 않은가. 일일 확진자와 사망자가 수만 명에 이르는 건 예사다. 이런 나라들엔 백신 개발 소식 자체가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다가갈지도 모르겠다.
백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야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일찌감치 우리의 시선은 코로나 저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중앙정부와 여러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포스트 코로나(코로나19 극복 이후 다가올 새로운 시대·상황을 이르는 말)’ 시대를 대비하는 논의들이 이미 2020년 상반기부터 시작됐으니 말이다. 곳곳에서 전담팀(TF)이 만들어졌고, 7월에는 160조 원 규모에 달하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까지 발표됐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보다 고차원의 고민들을 이미 시작하고 있었던 셈이다.
혹시 이러한 움직임이 너무 성급했던 것은 아닐까. 2020년 말부터 코로나19가 다시금 거세지는 것을 보며 이런 의문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경제가 직면한 현실의 복잡성을 생각하면, 한국판 뉴딜은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손으로 만드는 희망의 근거
2020년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많은 국민이 힘들었던 한 해지만, 역설적이게도 ‘현명한 낙관론(<추월의 시대>, 메디치미디어, 2020년)’을 갖기에 좋을 만한 일도 많았다. 영화나 대중음악에서 ‘한류’가 돋보이기도 했고, 우리 정부가 코로나19에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대응하면서 세계의 모범으로 우뚝 선 것도 우리에겐 소중한 경험이었다. 앞서 언급한 경제전망에서 OECD는 2020년 한국의 경제 규모 축소가 -1.1%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 주요 20개국(G20) 중에서는 중국에 이어 2위에 해당한다.
한국판 뉴딜이라는 과감한 기획은 이러한 자신감의 산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의 한국이 예전처럼 남들이 가진 좋은 제도를 가져와 ‘복붙(복사해 붙이기)’ 해도 되는 상황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도 이제 분야를 막론하고 제도 환경이 꽤 촘촘하게 형성돼 있으니 말이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이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 있어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해외 사례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기존 가지고 있던 문제들, 특히 안전망 또는 사회보장체계 미비라는 문제를 해소해나가야 한다.
한국판 뉴딜은 이와 같은 도전들에 종합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절박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하지만, 장차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규정할 수 있는 대규모 기획이므로 과정의 민주성과 국민의 참여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2021년 한국 경제의 희망은 한국판 뉴딜을 중심으로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면 어떨까 한다.
자료: 정책브리핑
김공회 경상대 경제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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