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월 26일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헌법 개정안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개정 헌법 초안을 만드는 실무를 총괄한 김종철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이하 자문특위) 부위원장은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런던정경대학(LSE)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대표적 공법학자다. 그는 지난 3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 헌법 개정 자문안에 기본권 강화, 대통령 권력 분산 방안이 담겼다고 밝혔다.

ⓒC영상미디어
김 부위원장은 “1987년 이후 새롭게 부상한 기본권이 상당히 많다”며 “시대 변화를 상당 부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기본권 조항 중엔 생명권, 환경권, 주거권 등이 신설됐다. 김 부위원장은 기본권에 생명권 조항을 신설한 것에 대해 “최근 우리 사회에서 생명경시풍조가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고 이에 대한 국가의 특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반영해 명문화했다”고 했다. 생명권의 경우 사형제도 폐지와 연결될 수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또 현행 헌법의 검찰 영장청구권 독점 조항을 빼고, 대통령의 국가원수 표현도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김 부위원장은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에 야권이 6월 지방선거용 ‘정략’이라고 비판한 데 대해 “이미 6월 지방선거 시 국민투표 실시는 대통령을 비롯해 각 당의 대선후보들이 오래전부터 국민들에게 약속한 사항이므로 지켜지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한다”며 “또한 개헌의 주체, 절차, 내용이 모두 국민에게 있다면 정치적 유리와 불리의 계산이 개헌 여부의 주요 기준일 수는 없다고 본다”고 했다.

▶ 정해구 국민헌법자문특위 위원장(가운데)이 3월 1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개헌 자문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개헌안을 마무리한 소감은?
“자문특위는 국민 헌법 개헌 자문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이 기본 임무였고, 개헌 최종안의 확정과 그 정무적 처리는 자문을 의뢰한 대통령 소관입니다. 자문안을 보고하면서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혹 오류는 없을까 걱정도 됐는데 구체적인 발의 계획이 나오니 앞으로 국회와 주요 정당의 반응이나 국민의 여론 동향이 궁금해지면서 여전히 긴장됩니다.”
지난 3월 13일 문 대통령은 자문특위로부터 개헌안 초안을 보고받을 때 어떤 말씀을 하셨나? 특히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무엇보다 이번 개헌의 성격을 국민 중심 헌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신 걸로 기억합니다. 개헌 내용은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고, 그 절차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지방분권과 직접민주제의 확대가 국민의 지속적인 요구이므로 정치권에서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대로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을 이루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대통령은 헌법 개정 방향에 대해 국민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 및 균형 발전의 원칙을 언급한 적이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개헌과 관련해 국민기본권과 지방분권의 강화, 그리고 국가 균형 발전이 개헌의 주요 과제라는 점이 지속적으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여야 정파를 초월해 그 방향성에서 이견이 크지 않다는 게 자문특위의 인식이었습니다.”
국민개헌안의 기본 원칙은 무엇이었나?
“6·10항쟁으로 제정된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31년이 흐르는 동안 국가의 책임과 역할, 국민의 권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의 생각과 역량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면서 1987년 헌법에서 미완성이었던 민주화를 보다 실질적으로 완성할 필요성이 최근의 국정농단과 같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 과정에서 확인됐다는 것이 자문특위의 중론이었죠. 따라서 자문특위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국민주권 강화, 기본권 강화, 자치분권 강화, 견제와 균형, 민생 개헌이라는 5대 원칙으로 정리해 자문안 마련에 임했습니다.”
야당은 개헌안 초안을 보면 제왕적 대통령제가 여전하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대통령의 권한은 어떻게 조정했나? 대통령의 국가원수 표현도 삭제했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자문특위는 단수 안으로 유신헌법의 잔재로 민주화 이후에도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것처럼 오인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던 국가원수직을 폐지하는 내용을 자문했습니다. 민주공화국이라면 권력분립이 기본인데 입법, 행정, 사법을 아우르는 국가원수직은 원리적으로 모순이지만 권위주의 시대 이래로 우리 헌정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그 제도적 근원을 제거한 겁니다.
국정통제제도로 중요한 기능이 부여된 감사원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 소속됨으로써 그 독립성이 의혹을 받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감사원을 대통령과 정부로부터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설치하도록 한 것도 이번 개정안의 특징입니다.
일부에서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비판하는 점들이 있다. 토지공개념 부분이 대표적이다.
“일부 야당이나 언론에서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나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헌법정신에 비추어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제헌헌법 이래 우리 헌법은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경제 영역에서 국가가 적극적 조정 역할을 하도록 경제헌법을 두어왔고, 사회적 약자와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권을 지켜온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헌법정신이 효과적으로 입법을 뒷받침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고, 바로 그래서 경제 불균형과 사회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주요 과제가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국내외적으로도 경제력의 집중과 남용에 의해 사회정의나 시장경제질서가 교란되는 데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고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대비해 사회보장을 강화하는 것은 중요한 국가과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토지공개념의 경우에도 토지재산권을 아무런 근거나 기준 없이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투기 등으로 경제 질서를 교란하는 경우 특별한 제한을 부과해 토지거래나 소유를 더욱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입니다.”
‘근로’라는 표현을 ‘노동’으로 바꾸거나, 공무원 노동 3권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은 노동계의 의견만 반영했다는 지적과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반론 등이 있다.
“노사관계는 어느 사회에서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대표적인 영역입니다. 시장경제질서는 자유로우면서도 공정성을 바탕으로 노사관계가 형성되도록 요청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교섭력이 약한 계층의 불만이 누적돼 사회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노조결성권을 비롯한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은 노사관계의 공정성과 자율성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이 인류사회의 보편적 원칙이고, 그동안 헌법에서도 이러한 보편적 원칙이 충분히 구현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속돼왔습니다. 노사가 서로 상생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모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과도한 이익 실현을 자제해야 합니다. 이번 개헌에서는 노동계의 의견만 반영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불충분했던 노사관계의 기초질서를 보완해 균형관계를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 기득권에 안주해 인류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애써 외면해온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안제를 헌법에 명시하는 건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외적인 직접민주제의 확대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 국민은 1987년 헌법의 개정은 물론 이번 촛불시민혁명의 과정을 통해 민주공화국의 명실상부한 보루임을 스스로 입증해 보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과제는 대의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데 있다는 것이 갈수록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번 개헌 의견 수렴 과정에서도 숙의형 시민토론이라는 일종의 공론조사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이 과정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우리 시민들이 집단지성을 모으는 열의와 역량에서 매우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 것도 직접민주제의 강화가 시대적 대세가 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검찰의 영장청구권 독점에 대해 논란이 많다. 개정 헌법에는 어떤 형태로 조정했나?
“검찰의 영장청구권은 헌법에 규정할 만한 사항이라기보다는 형사사법절차를 규율하는 입법에서 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는 것이 자문위의 중론이었습니다. 즉 영장청구권을 검사가 독점할지 말지는 헌법적으로 정할 사항이 아니므로 향후 형사사법질서를 개혁하는 데 다양한 모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헌법적 걸림돌은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정 헌법에는 국민들의 사법 참여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사법권이 국민을 위해 행사되기보다는 권력이나 사회의 기득권에게 유리하게 행사되는 게 아니냐는 유권무죄, 유전무죄, 전관예우 등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많이 제기돼왔습니다.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사법권의 민주화가 필요한데, 그 효과적인 방안으로 배심제 등 국민들의 사법 참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높았습니다.”
자문특위에서 개정 헌법을 기초하면서 국민의견은 어떻게 수렴했나?
“자문특위는 지난 수년간 축적된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의사를 일부 국민 참여 과정을 통해 재확인하는 방식으로 국민의견을 수렴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국회의 개헌특위나 자문위에서의 논의 결과나 정당과 많은 단체의 개헌안이나 의견이 상당 부분 축적돼 있고 의제도 정돈돼 있었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국민헌법’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내용과 절차 면에서 기본 요건을 갖춘 것으로 자부하고 있습니다.”
청년세대의 의견은 어떻게 반영했나? 특히 기본권 조항 중엔 1987년 이후 새롭게 부상한 기본권들이 포함됐는데.
“자문특위에 청년 대표가 포함되었고, 특히 청년세대만으로 숙의형 시민토론회를 개최해 아쉬운 대로 청년세대의 여론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시민사회나 국회개헌특위자문위에서 청년세대를 위한 개헌안을 마련한 것을 많이 참조했는데, 그 결과 청년세대만을 위한 사회보장조항을 확충했고, 미래세대를 위한 생태계 보호 의무를 국가에 부여하는 제안을 자문 안에 포함하기도 했습니다.”
지방분권형 개헌과 관련해 가장 쟁점이 되는 이슈는 무엇이었나?
“지방분권국가 지향성을 헌법 총강에 포함시키는 쟁점부터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자치조직권을 어느 수준에서 헌법에 담을 것인지가 모두 쟁점이 됐습니다. 가장 치열했던 쟁점은 자치입법권과 법률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법률과 대등한 자치입법권을 보장할 것인지 아니면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로 할 것인지, 아니면 법률의 위임에 따라 자치입법권을 부여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률의 범위 내에서 자치입법권을 부여하는 것은 현행과 마찬가지여서 지방분권 개헌의 취지를 달성하기에 부족하다는 중론이 형성돼 자치입법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복수의 안을 제출했습니다.”
국민헌법에 반드시 반영돼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반대로 재검토가 필요한 영역이 있다면?
“국민기본권과 지방분권의 강화는 이견이 크지 않은 분야이므로 이번 개헌안에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권력구조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합리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방안은 워낙 복잡한 쟁점이고 정치적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대립돼 있고, 제도와 운영의 문제가 얽혀 있어 주권자인 국민의 여론을 존중해 결정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지점을 찾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야당의 의견은 어떻게 수렴했나?
“각 정당 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해 의견을 들었고, 기존에 각 정당에서 발표한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다만, 면담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면담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공식적인 의견이 없는 경우에는 언론 등에 보도된 의견을 참조했습니다.”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헌법은 기본권의 보장과 국가의 민주적 운영에 관한 기본법입니다. 국가 주권을 가진 국민이 헌법의 저작자이자 주인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헌정사는 이러한 당연한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에 반복적으로 민주공화국의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촛불시민혁명’으로 자랑스러운 민주화의 이정표를 세웠고, 또 앞으로도 더욱 발전시켜나갈 사명을 가진 우리 대한의 국민들이 헌법 전문에서 선언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안전, 자유,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제대로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의 헌법, 국민헌법을 만드는 데 많은 관심과 참여를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다.”
오동룡│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