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신남방정책 전략이 힘찬 시동을 걸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월 8일부터 15일까지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을 순방하며 한국 정부의 새로운 외교 구상인 신남방정책을 아세안에 밝혔다. 무엇보다 이번 순방은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on: APEC) 정상회담, 필리핀에서 열린 아세안+3(ASEAN+3)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 참가를 겸하고 있어 아세안 국가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지역 국가들에게 한국의 새로운 외교정책 방향을 천명하는 효과도 있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성공적인 방한, 베트남에서 있었던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과 함께 어우러져 그 효과는 더욱 컸다.
문재인정부의 신남방정책은 아세안 국가와 인도를 대상으로 한다. 왜 아세안인가? 아세안은 한국의 제2위 무역 대상이며, 제2위 해외 투자처이고, 제2위의 해외 건설 시장이다. 한국이 국제사회에 공여하는 공적개발원조의 20~25%를 아세안 국가들이 차지한다. 한·아세안 사이에 연간 700만 명 이상의 인적 교류가 일어나고 있으며, 30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아세안 국가에 거주하고 있다. 비슷한 숫자의 아세안 국가 사람들이 한국에 살고 있다. 아세안은 한류의 진원지이자 전 세계적인 한류 붐을 이끌어나가는 지역이다. 아세안 국가들과 한국은 수많은 지역 다자 안보 및 경제협력체 측면에서 서로 협력하는 파트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세안은 한국의 이익에 중요하다.
아세안의 중요성은 향후 더욱 커질 것이다. 아세안은 현재 공동체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아세안경제공동체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으며 완성 단계를 향해 가고 있다. 아세안경제공동체의 완성은 인구 6억 2000만 명, GDP 2조 2000억 달러에 달하는 단일 시장의 형성을 의미한다. 단순 규모를 넘어서 아세안은 중위 인구가 28세에 달하는 젊은 경제다.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풍부하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전 세계 개발도상국 경제가 평균 4%대 성장을 보이는 동안 아세안은 5%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을 보였다. 베트남은 말할 것도 없고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필리핀 등 아세안 개도국이 이런 아세안 전체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아세안을 둘러싼 주변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이런 아세안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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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11월13일 오후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국제컨벤션센터(PICC) 서밋홀에서 열린 제19차 한·아
세안(ASEAN)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문재인정부의 신남방정책 역시 이런 아세안에 주목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아세안 미래 공동체 구상으로 요약되는 신남방정책은 이전 정부의 대(對) 아세안 정책과 그 무게감에서 크게 다르다. 1989년 한국이 아세안의 대화 상대가 되고,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를 즈음해서 아세안+3 정상회의 체제가 만들어진 이후 한·아세안 관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역대 어느 정부도 초기부터 대 아세안 정책을 주요 외교 목표로 추진한 적은 없었다. 이번 순방을 통해서 문재인 대통령은 3P, 즉 사람(people), 상생 번영(prosperity), 평화(peace)에 기반을 둔 대 아세안 정책을 밝혔다. 국내적으로 국민 외교를 반영하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어지는 공동체, 안보협력을 통해 아시아 평화에 이바지하는 공동체, 그리고 상호 호혜적 경제협력을 통해 함께 잘사는 공동체라는 비전을 동남아 국가들과 공유했다.
무엇보다 눈여겨볼 점은 상생 번영이라는 부분이다. 문재인정부의 대 아세안 정책은 한국의 이익뿐만 아니라 아세안 국가들의 이익을 똑같이 중시하는 바탕 위에 세워졌다. 기존의 대 아세안 정책, 특히 대 아세안 경제협력은 주로 한국의 경제적 이익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한국이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경제적 이익을 동남아 국가들에서 가져올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두었다. 그에 반해 문재인정부의 동남아 정책은 동남아의 발전이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의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전제 아래 동남아 국가들의 번영을 위해 한국의 역할을 다하는 데서 출발한다. 교통 인프라, 에너지 산업, 물 관리, 스마트 정보통신 분야 발전을 통해서 아세안 국가들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데 한국이 적극 참여하고 지원하는 형태의 경제협력을 구상하고 있다.
이번 순방 기간 중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교통, 에너지, 수자원 관리, 스마트 정보통신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을 발전시키고 양자 무역을 300억 달러까지 확대하는 데 합의했다. 베트남과는 무역 1000억 달러 달성이라는 목표에 합의했고, 중소기업 지원, 과학기술 및 정보통신 분야의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필리핀과는 인프라 확충과 군 현대화 사업에 한국의 참여를 확인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세안 전체로는 한·아세안 교역을 현재 중국 수준인 2000억 달러까지 확대할 것을 천명했다.
경제협력의 확대는 단순한 한국의 무역 흑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한국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아세안 국가의 인프라 확대, 인적 자원 개발, 중소기업 역량 강화 등을 통해서 아세안의 장기적 발전 기반을 마련하는 협력까지 포함한다. 이런 아세안의 성장과 발전은 결국 한국의 이익이 된다. 아세안 국가의 경제성장을 통해 한국의 장기적 이익을 도모한다는 전략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세안 국가와의 경제협력 확대는 아세안 국가와 한국의 전략적 거리를 더욱 좁혀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한·아세안 전략적 협력을 강화한다. 나아가 아세안 국가와 한국을 한 배에 탄 경제로 만들어 한반도 문제와 북한 위협에 대한 아세안 국가의 관심과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까지 나간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아세안과의 관계를 미, 중, 일, 러 수준, 즉 한국 외교의 4강 수준으로 격상시킨다는 구상을 밝혔다. 엄중한 한반도 상황 관리를 위해 한국 외교는 북한 문제와 4강 외교에 일차적 관심을 둘 수밖에 없고 또 지금까지 그래왔다. 한국의 국력이 과거와 다르게 몰라보게 커진 지금 한국은 한반도와 4강에만 머물 수 없다. 과거 우리는 수출 다변화라는 말을 많이 했다. 한국이 무역을 몇몇 국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제 한국은 외교 다변화를 필요로 한다. 현실 문제의 관리를 넘어서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외교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미래를 준비하는 한국 외교의 가장 중심에 한국의 대 아세안 외교가 있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은 이런 한국 외교의 미래를 연 정상외교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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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