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빛나는 문명을 이룬 국가는 로마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건국된 후 동서(東西)로 나누어져 1453년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무려 2200여 년 동안 흥성했다. 그런데 그 시원(始原)은 그리스 문명이었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자유와 평등, 민주와 법치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들을 창안하고 이를 현실에서 실험하고 구현했다.
그리스인들은 이를 바탕으로 문학, 회화, 조각, 건축, 철학, 자연학 등 문화의 모든 영역과 학문의 여러 갈래에서 원천이 되는 것들을 태동시켰다. 기원전 8세기에서 4세기까지 그리스인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문명의 역량은 로마 공화정과 르네상스 시대의 계승과 부활을 통해 현대 서구문명에 풍요로운 유산으로 전해졌다.
로마는 그리스 문명의 수용과 변용을 통해 문명국가로 거듭났다. 로마인들이 그리스 문학과 철학을 접하며 교양과 품격을 갖추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는 여러 전거로 확인할 수 있다. 로마 최고의 철학자 키케로(기원전 106~43)의 ‘아르키아스 변호 연설’이나, 수사학자인 퀸틸리아누스(35?~95?)의 ‘스피치 교육’에는 그리스 교육자들의 지식과 교양의 뛰어남, 또 그들의 교육방법과 문화를 배우기 위해 열심이던 로마인들의 찬탄과 분투가 잘 묘사돼 있다.
로마 공화정은 아테네 민주정의 장점을 수용하면서도 우중(愚衆)정치로 흐른 폐해를 극복하려 부심했다. 로마는 2명의 집정관에게 최고행정권을 담당하도록 했고 원로원과 민회, 호민관을 두어 서로 견제하게 하여 민주주의의 방종을 막으려 애썼다. 균형 잡힌 권력구조가 유지되던 공화정 시기는 로마의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고 시민 덕목이 충일한 시대였다. 민중은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나라의 방위에 흔쾌히 목숨을 바치며 시민생활에서는 법률의 규제를 따랐다. 기원전 27년 황제정이 시작될 때까지 그런 시민 덕목과 균형은 유지됐다. 이렇듯 문명의 수월성은 개인의 덕성과 사회의 문화 품격에서 나온다. 교양을 갖춘 자유인의 지혜, 용기, 절제가 강조되고 개인과 공동체의 일체감이 높았을 때 로마의 시민 덕목과 품격은 절정을 구가했다.
대한민국은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압축성장을 일군 기적의 나라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의 가치와 덕목을 잃어버렸고, 근대 국가의 시민 덕목은 내면화하지 못했다. 평등의 주장에 앞서 자유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문화, 타인의 성취를 인정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포용의 문화가 미흡하다. 또 민주의 가치 못지않게 법치를 존중하고 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려는 공화(共和)의 정신은 더욱 허약하다.
욕망을 절제하는 자족의 윤리도 필요하다. 격차 해소를 위한 국가적 노력과 함께 개개인의 질시와 시샘의 심리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코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우리 국민의 평균 학력은 서구보다 높지만 시민의식과 교양, 사회의 품격은 뒤처진다. 독서량과 평생학습의 습관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미흡한 것도 그 배경이다. 시민 덕목을 고양하는 정신의 근대화가 절실하다. 미래 자유통일을 이룬 대한민국의 부흥을 준비하기 위해 아테네와 로마 공화정 융성기에 구현되었던 시민 덕목과 문화를 우리도 한번 꽃피워야 하지 않겠는가.
박경귀 |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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