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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으로 접어든 요즈음 숲속에 사는 생물들의 주요 관심사는 단연코 가족입니다. 봄철에 꽃을 피웠던 많은 식물들은 소리소문 없이 열매를 키워가고 있고, 숲에서는 산새 부모들이 새끼 새들을 키우느라 눈코 뜰 새 없습니다. 자주 가는 양평의 어느 시골집에도 지붕과 추녀 밑에 각각 노랑할미새와 박새가 새끼 새들을 키우기 위해 둥지를 틀었답니다. 먹성 좋은 새끼들에게 먹이를 대느라 분주한 어미새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실화가 생각나는군요.
예전에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 관할 행정구역 안의 크고 나이든 나무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조사를 통해 나무들의 현황을 파악한 다음 나무들이 내내 건강하게 살도록 나무의 썩은 구멍들을 일일이 치료한 뒤 메워 주었습니다. 나무에 난 구멍을 통해 빗물이 스며들어가면 속부터 썩기 시작해 나무의 수명이 줄어들 수 있어서입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불거졌어요. 나무 구멍에 둥지를 트는 산새들인 박새, 동고비, 찌르레기, 원앙, 파랑새, 후투티, 올빼미, 소쩍새 등의 새들이 심각한 주택난을 겪는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이 새들은 딱따구리 류처럼 나무에 구멍을 뚫어 둥지를 만드는 재주가 없기 때문에 딱따구리가 쓰고 버린 구멍이나 오래된 나무가 썩어서 저절로 생긴 구멍들을 둥지로 활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둥지로 사용하던 나무 구멍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자 새들은 얼마 남지 않은 둥지 터를 둘러싸고 서로 치열한 다툼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새들이 번식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만일 산새들이 줄어들게 되면 새들이 먹이로 삼는 나무의 해충들이 급격하게 늘어 이후 나무들의 생존마저도 덩달아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나무를 돕고자 했던 사람들의 선의가 산새들에게는 직접적인 생존의 위협이 되었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면 나무에도 득보다 실이 많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지요.
참으로 자연의 섭리란 복잡미묘합니다. 자연의 형질을 변형해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도모하는 경우에도 신중하게 심사숙고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만 염두에 두고 강바닥을 파헤치거나 무분별하게 숲의 형질을 바꾸려 든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바보가 되기 십상일 수 있습니다.
최근에 이런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지구의 나이는 46억년입니다. 그걸 46년이라고 치자면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한 지는 이제 겨우 4시간이 지났고 산업혁명은 불과 1분 전에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그 1분 동안 인간은 전 세계 숲의 50퍼센트 이상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지구 전체를 놓고 보면 사람들이 지금처럼 많은 나무를 심었던 적은 역사상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숲이 파괴되고 있는 기이한 현실에서 우리들에게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합니다.
글·김태영(자연생태연구가·<한국의 나무> 공저자) 201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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