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 | ‘길 위의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법치사회 다음은 질서사회 · 양심사회…
편 가르는 흑백논리는 정의를 모른다”
특집 <국민에게 듣다 ‘내가 바라는 대한민국’>은 현상과 본질을 넘나들며 시대정신 탐구에 천착해온 원로와의 대담으로 문을 연다. 지난 2016년 97세의 나이에 <백년을 살아보니>를 펴낸 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다.
100세 가까운 고령에도 강연과 집필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김 교수는 올해도 또 하나의 책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4월부터는 강원도 양구 인문학박물관에서 인문학이야기 연쇄 강연이 예정돼 있다.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했어도 철학자이자 인문학자인 그는 평생 정치적 활동과 무관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새 지평을 열어야 하는 이 시점에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원로로서 할 말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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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의 세상보다 사회는 훨씬 변화무쌍합니다. 요즘의 나라 사정을 지켜보면서 소회가 어떠십니까.
“경제는 경제 전문가가, 정치는 정치인이 해야 하는 게 맞죠. 나는 구체적인 것엔 민감하지 못해요. 철학자는 본질을 다루는 이론가잖아요.”
그래도 국민의 한 사람이자 학자로서 감회와 진단이 있을 것 같은데요.
“굳이 얘기하자면, 우선은 대한민국의 위치가 우리가 안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적어도 아시아권에서는 많이 성장한 나라, 선진국가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직도 후진국가라고 폄하하기도 하는데, 정신적 미숙은 좀 있지만 외형적 성장은 물론 내적 성장도 꽤 많이 이루었다고 봅니다. 그 성장의 기반은 3.1운동부터 6.25전쟁 전후에 생겨났다고 봐요. 3.1운동 이전엔 생활 단위가 나와 내 가정이었어요. 부자도 빈자도 모두 그랬죠. 그런데 나라를 뺏기고 3.1운동이 일어나니까 전 국민이 나라가 먼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거예요. 해방이 됐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였습니다. 6.25전쟁의 비극을 겪으며 국민은 또다시 하나로 집결했죠. 나보다 국가가 먼저라는 감성과 의지의 표현이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국가가 먼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특히 걱정스러운 건 사회지도층이 더 그렇다는 것이죠. 말하자면 길지만, 본질부터 진단하자면 지금의 국가 혼란은 거기서 비롯된 것 같아요.”
김 교수는 한 예로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생의 생전 일화를 소개했다. 작고(2002년)하기 불과 수년 전의 일이었단다. 시내 세무서에 볼일이 있어 찾았더니 세무 공무원이 방금 손기정 옹이 다녀갔는데 못 봤냐고 묻더라는 것. 담당 직원은 굳이 손 선생이 다녀간 사연을 전하며 김 교수와 감회를 나누었다.
“손 선생이 어디선가 상을 받았는데 상금이 꽤 컸답니다. 당신이 쓰기 전에 세금을 먼저 내려고 하니 도와달랬데 공무원은 신고 안 해도 되니 그냥 쓰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내가 지금껏 살며 나라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았는데 공짜 돈 생겼을 때 마음의 빚을 갚고 싶다’며 자꾸 고집을 피워서 계산해줬답니다. 그랬더니 손 선생이 요것밖에 안 되냐며 더 많이 내는 방법으로 계산해달라고 했다는 것 아닙니까. 당신이 흡족한 세금을 내고 나서야 지팡이를 짚고 가는 뒷모습을 보며 너무 감동받고 흐뭇했다고 합니다. 그 어른은 일제시대에 살아 나라의 고마움을 알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하더군요.”
교수님도 일제시대를 겪으셨습니다.
“난 해방 후 2년 뒤에 탈북 했는데 그때 대한민국이 품안에 안아주지 않았으면 어디서든 떠돌이 생활을 했을 거예요. 무엇보다 그 때문에 나 역시 나라를 소중히 여기게 된다고 말했죠. 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주변엔 나라의 혜택을 받고 살았다고 생각하는 손 선생 같은 분이 많지 않다는 걸 느꼈지요. 대개는 자신이 나라에 뭔가 준다고만 생각하지 받는다고 생각하지 못하죠. 애국심을 말하는 지도자들조차도 말로는 준다고 하는데 받는 것을 더 생각해요.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을 때 뭐든지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남 탓을 하는 게 그 증거죠.”
특히 정치인이나 정부를 지칭하는 건가요?
“꼭 그렇진 않아요. 우리한텐 지금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소위 사회악이라는 것들은 정부만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종교계나 교육계 책임도 크다고 봅니다. 우리한테 주어진 책임은 얘기 안 하고 이것저것 다 정부 책임이라고 하면 이 사회엔 주인이 없는 거죠.”
단도직입적으로 최근 나라의 혼란이 왜 발생했다고 보십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쪽 끝 사람들과 저쪽 끝 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이 만든 것이겠죠. 사실 양쪽 극단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결국 버림받을 세력입니다. 좀 전에 말했지만 정치인들이 내가 잘못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은 결국 그 안에 애국심이 없어서일 거예요. 탄핵으로 대치된 정국에서 정치지도자는 촛불이나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게 부끄럽고 미안할 것 같은데, 나가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놓고서 남 탓을 하는 모양이 이상했어요. 국민의 책망, 국민의 의도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지 내가 나가 주장해야 한다고 믿는 것은 이상하죠. 예전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나 인촌 선생 등은 나라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내 잘못을 먼저 따졌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힘겨루기에 급급할 뿐이죠.”
그 현상은 그리 낯선 것도 아닙니다. 알면서도 잘 바뀌지 않는 본질적인 원인은 뭐라고 보십니까.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전두환정권까지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사회였다고 봅니다. 그게 일반화됐던 시대였어요. 이승만 대통령이 후계자로 여긴 이기붕 씨한테 ‘난 군대를 잡을 테니 넌 경찰을 장악해라. 그러면 정권은 끄떡없다’고 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위험한 사고방식이 없죠. 그런 식으로 유지된 사회가 북한 사회 아닙니까. 민주화 투쟁 결과 강자 독재사회가 가고 법치사회 개념이 생겼습니다. 그 변화를 겪고 나서야 우리도 나라다운 나라가 된 듯해요. 그런데 아직도 힘이 지배하는 정치 기운이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정치 경험이 성숙한 선진국은 법치국가 다음 단계인 제3사회 개념으로 가고 있는데….”
제3사회란 무엇입니까.
“제3사회란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를 말해요. 도덕적 가치관, 윤리적 가치관을 지닌 사회죠. 그런데 우리는 아직 그걸 생각 못해요. 법치가 아직 흔들리니까. 법치사회가 성숙해져야 제3사회가 옵니다. 법치사회를 지배하는 건 정치고 질서사회를 지배하는 건 종교와 교육이라고 봐요. 그래서 정치가도 성숙해져야 하지만 앞으로는 종교지도자와 교육지도자가 중요합니다.”
제3사회가 온다면 어떻게 달라질까요.
“예전에 해외여행을 가보면 가장 부러웠던 나라가 스위스와 캐나다였어요. 1960년대였나, 스위스 방문 때 그 나라에 유일하다는 교도소에 갔는데 문은 열려 있고 정문 꼭대기에 흰 깃발을 달아놨어요. 죄수가 없을 땐 깃발을 내어 건다는데 석 달째 그러고 있다고 했어요. 질서사회라는 게 그런 거죠. 양심사회가 이미 일반화돼 있었어요. 캐나다에 갔을 때 그 나라 사람한테 ‘네 나라 헌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우리나라에 헌법이 있던가’ 반문하는 거예요. ‘헌법 없는 나라가 어딨느냐’고 놀렸더니 ‘문제 생기면 영국 거 갖다가 따라 하면 되지 뭐’ 하고 웃더군요. 범죄가 없고 질서가 기본이 된 사회에 부러움을 금치 못했죠. 정치가 자꾸 수준을 끌어내리지 않는다면, 종교와 교육계가 제 구실을 다한다면, 우리가 저마다 책임을 다한다면 우리도 질서사회로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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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진영논리가 문제라고도 합니다. 법치사회, 나아가 제3사회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될까요.
“당연히 문제가 되겠죠. 20세기에는 세계의 질서가 좌와 우로 나누어졌지만 지금은 공존의 시대입니다. 하나만 있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잖아요. 어느 나라를 가든 보수와 진보가 있습니다. 공존하는 거죠.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논리가 강한데 사실 이제 중요한 것은 보수, 진보가 아니라 ‘열린사회’냐 ‘폐쇄사회’냐입니다. 선진국의 지성사회에선 이미 그 화두가 일반화돼 있죠. 세계는 열린사회 또는 다원화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 나더러 보수냐 진보냐고 묻는다면 ‘원래 진보지만 한국에선 진보라 답하지 않겠다’고 하겠습니다. ‘열린 보수’라고 답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흑백논리를 진단하지 않을 수 없네요.
“한국 사회에서 흑백논리는 반항 정신에서 비롯된 점이 적지 않습니다. 나라를 뺏겼던 일제시대엔 반항이 생명력이었습니다. 6.25의 비극을 겪어내면서도 그랬고 독재를 경험하면서도 반항의 정신을 키워왔잖아요. 그런 반항 정신이 곧 정의가 됐습니다. 반항이 지성인의 책무가 됐고 타협은 비겁함이 됐어요.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무조건 때리기 식의 반항이 지성의 표상이 되고 주목을 끄는 예도 많았죠.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끝까지 들어가 살펴보면 양비론으로 끝난 예가 있었어요. 대학생 강연에서 가끔 ‘색채팔면체’ 얘길 해요. 물리학자들은 그 4원색 팔면체의 끝은 백색이고 반대쪽 끝은 흑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건 이론일 뿐 실제로 100% 백과 100% 흑은 가능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해요. 존재하는 것은 순도 99.9%의 백과 99.9%의 흑 사이의 회색이라는 거죠. 존재하는 대부분은 회색인데 우리는 회색을 욕합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 경험주의 사회에선 누구나 스스로 회색인이라고 인정해요. 어떤 상황이든 모든 가치판단은 어느 정도냐가 기준이 돼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전부를 규정하고 상대방을 함부로 욕할 수는 없는 거겠죠.”
김 교수는 잘 듣고 잘 이야기했다. 조용하고 가는 목소리지만 힘이 약하진 않았다. 듣던 그대로 대단한 노익장을 과시했다. 강연하듯 큰 단절 없이 계속된 대화는 필연적으로 정의(正義)의 정의(定義) 문제에 당도했다. 철학자이기도 하거니와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정의의 문제는 늘 연구 대상이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2010년 한국 출판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등장했다.
샌델의 책이 열풍을 몰고 온 적 있지만 아직 우린 정의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학자로서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지요.
“샌델 교수의 강연과 책은 사실 답을 주진 않았어요. 절대적인 답을 내릴 사람은 없을 거예요. 답은 각자 찾아야죠. 역사를 훑어보면 정의란 3가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마르크스주의에선 정의란 평등사회를 위한 수단이었어요. 미국적 가치관에서 정의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느냐의 문제이지요. 기독교적인 정의는 ‘인간애에 대한 책임’입니다. 사회주의적 가치관으로는 누가 고급 차를 타고 나타나면 몰수하라고 하고, 미국식 자본주의에선 흑인조차도 ‘부럽다, 나도 얼른 돈 벌어서 저 차 타야지’ 합니다. 미국에서 총기 사고가 빈번할 때 현지인에게 총기 규제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어요. 그 사람 하는 얘기가 미국인이 생각하는 정의는 ‘모든 이가 총기를 가져도 사고가 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해요. 느낀 점이 많았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해볼 문제입니다.”
한국 사회에서의 정의란 무엇일까요. 우리 국민이 정의를 실현할 자질은 있어 보이나요?
“우리 국민의 자질이나 국민성은 신뢰하고 희망적이라 봐요. 하지만 우리 스스로 부정적 인식을 갖게 하는 요소들은 고쳐야겠지요. 첫째가 반항입니다. 우리에겐 반항이 시대정신인 때가 있었고 그 반항이 생명력이기도 했습니다. 100년 이상 반항이 정의이고 지성인의 책임이라 여긴 사회에서 살았죠. 정치인들도 반항하면 지지가 올라가고 조금이라도 타협하면 지지가 내려간다 생각해요. 실제로 그렇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젠 반항이 곧 정의라고 생각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두 번째는 흑백논리와 편 가르기 같아요. 사회를 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합니다. 편 가르기 하지 말고 대화로 풀어가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이건 앞에서 말한 대로 종교계와 교육계가 많이 나서야 할 부분이라고 봐요.”
성장이냐 분배냐, 대북 억제책이냐 햇볕정책이냐 등 나라살림에는 가치와 방향 충돌이 늘 있어왔습니다. 답하기 어렵지만 개인적 견해를 보태주신다면요.
“어쨌든 어느 한 길로만 꼭 가야 한다고 고집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20대에 마르크스 모르면 바보라던 시절이 있었다면 30대에도 마르크스를 따라다니면 바보라는 시대도 왔었잖아요. 열린사회, 다원화사회로 가는 게 현실적인 정답인 것 같아요. 안보문제만 해도 어느 쪽 정책이 맞다고 할 수 있을까요? 주변 상황에 따라가야 하는데, 우선 가장 중요한 건 북한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장과 분배, 노사 문제 같은 이슈는 10년쯤 단위로 어떤 정책이 도움 되는지 국민에게 물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정책을 계승할 건 하고 수정할 건 수정하면서 이어나가면 되겠죠. 그런데 현실은 이전 정부를 부정하고 내 정권을 정당화하는 데에 집중하는 식이니 아쉽죠. 적폐청산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횡적인 적폐청산에 머물러 싸우지 말고 멀리 내다보는 종적인 적폐청산을 하면 좋겠어요.”
2시간 가까운 인터뷰 동안 그는 한시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학자이자 교육자로 평생을 살아온 그는 마지막 당부로 “성급히 결론 내려 하지 말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상대를 계발함으로써 나를 계발하자”고 했다.
그는 11시에 자고 6시에 깨어난다. 산책과 읽기, 쓰기, 말하기를 반복하는 일상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때론 규칙에 매여 살기 싫지만 혹여 리듬이 깨지면 몸에 반응이 올까 봐 두려워 흐름을 따라간다. 60세가 되니 나를 믿게 됐고 75세까지 내가 성장함을 느꼈고 이후로는 나를 유지해간다는 노교수의 술회가 자꾸 되뇌어진다.
이상문│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