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불결제시장이 격변기를 맞고 있다. 대표적인 현상이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소지하지 않은 채 스마트폰만으로 송금을 하거나 각종 대금을 결제하는 '핀테크' 기술이다. 핀테크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이 결합된 신조어로, 기존의 금융산업이 담당하던 모든 금융 업무를 정보기술(IT)을 통해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종이로 된 화폐가 아예 사라지고, 현금이 곧 디지털 화폐로 전환되는 세상을 상상할 수도 있다.
핀테크가 등장한 배경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다. 당시 금융회사들이 줄도산을 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다가 IT산업과 동거를 시작한 것이다. 이젠 IT산업이 금융산업을 선도하는 역전현상이 일반화됐다. 소비자의 구매 패턴이 변한 것도 핀테크를 가속화한다.
'종이돈이 사라진다'는 가설은 단지 쇼핑이 편리해지는 환경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찍어내는 비용도 줄어들고 기존과 같은 형태의 은행도 사라질 것이다. 더욱 환영할 만한 변화는 핀테크 환경에서는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점검·감시하는 것이 가능해져 '검은 돈'이 사라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핀테크산업이 향후 '돈의 이동을 관리하고, 그에 따라 발생되는 정보를 활용하는' 총체적 산업이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이미 해외에선 핀테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미국의 경우 모바일 결제시장 규모는 2013년 2350억 달러에서 2017년 720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미국의 대표적인 핀테크기업 페이팔(Paypal)은 전 세계 6개국 모바일 결제시장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중국 역시 종이 화폐에서 핀테크시장으로 곧장 넘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최대 온라인 결제 서비스인 알리페이(Alipay)는 국내에서도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계 핀테크 100대 기업에 한국 기업은 없다고 한다. IT기술 강국인 한국에서 핀테크 성장이 더딘 것은 다소 의아하다. 일부 전문가는 한국의 신용카드시장이 안정적으로 정착되어 있기에 핀테크산업이 상대적으로 지체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규제 중심의 한국 금융이 갖는 보수적 태도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금융시장은 대출 용이성 세계 118위, 벤처자본의 이용 가능성 115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우간다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 만큼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것이다.
핀테크시장에서 한국의 돌파구는 무엇일까. 결국 금융 규제를 완화해 다양한 시도가 신속하게 시행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싱가포르 등에선 금융의 영역에도 '금지된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으나, 한국은 여전히 '법령에 열거된 사항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를 하고 있다.
즉, 한국의 금융기업은 '정부가 하라는 것 이외에는 하지 않는'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기회는 있다. 좀 더 재빠르고 유연하게 변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우리 국민들 역시 그 안에서 뛰놀며 새로운 시도를 만들어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부, 기업, 소비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혁신적인 금융개혁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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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미영 (서울대 소비자학과 연구교수) 201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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