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올해의 운세를 한번 적어보고 싶다. 존재하지 않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오래된 버릇이긴 하지만, 가끔은 미래의 삶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그것은 희망찬 무지개 동산일 수도 있지만, 오늘과 다름없거나 오히려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예감이 들면 악성 바이러스가 온몸에 퍼지곤 한다.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백신이 필요한 법이다. 주역의 한 페이지를 읽는다.
"부지비인 불리군자정 대왕소래(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

초아 서대원 씨는 이를 '거부와 막힘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즉 모든 일이 틀어지고 막힐 때 그것은 우주의 시간과 공간의 문제일 뿐,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부지비인은 정말 절묘한 문장이다. 단단하게 자라는 대나무처럼 마디 짓고 넘어가는 단계라고나 할까. 이럴 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크게 성공하는 사람과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생긴다. 즉 군자와 소인이다.
똑같이 어려운 일을 당해도 군자는 더 큰 것을 이루려고 한다. 주역의 다음 문장에서는 운이 막힐수록 더 준비하고 대비하라고 한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견고하고 힘차게 하던 일을 계속하는 길이다. 이것이 바로 길(吉)하다고 설명한다. '진인사 대천명'과 그 결을 같이하는 문장이다.
우리는 지금 정치, 경제, 노동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온갖 난제에 시달리고 있다. 많은 명사들의 이름과 이들과 연결되어 있는 다른 이름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하다. 피아가 광기에 휩싸여 타인을 공격하고 있다. 이것은 주역의 부(否) 단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한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앞이 캄캄한 것이다. 나는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한 각종 문제에 대해 이 작은 글에서 뭐라고 거창하게 제시할 의견이 없다. 다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에 대해서는 한마디를 남길 수 있겠다.
일단 삶의 큰 줄기를 찾아라. 자신과 중요한 일을 연결하고 있는 끈을 절대 놓치면 안 된다. 당신이 작가라면 어려운 순간일수록 '세계의 명작'을 써야 한다. 인생 전체를 더욱 힘차게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바로 그 고통스러운 자리에 깊고 넓게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리고 좀 더 큰 세상을 보자. 예를 들어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문장이다.
"우리 종(種)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인간은 역사상 가장 중대한 결정을 내리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에 따라 지구에 있는 생명체의 진로는 전면적으로 바뀔 것이다. 생명은 40억 년 전 출현하여 자연선택 법칙의 지배를 받아왔다. (중략) 이제 인간은 과학을 통해 자연선택을 지적 설계로 대체하고, 유기체가 아닌 생명을 만들기 시작했다. 과학은 자연선택으로 빚어진 유기적 생명의 시대를 지적 설계에 의해 빚어진 비유기적 생명의 시대로 대체하는 중이다."
주역과 유발 하라리의 글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바로 그것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류와 '나'라는 한 개인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려고 하는 시점에 서 있다는 점이다. 유발 하라리의 말대로 비유기적 생명체(컴퓨터와 로봇 등)의 시대는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행복의 조건은 간단하다. 그저 먹고 입고 사는 것이다. 이것이 순조롭게 돌아갔으면 좋겠다. 올해의 운세는 부로 시작해 길로 마감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나와 당신부터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지혜롭게 살아가자. 호모 사피엔스에게 멸종당한 네안데르탈인처럼 우리의 삶을 비유기적 생명체에게 빼앗기기 전에.
글 · 원재훈 시인 20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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